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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죽어라 물어뜯던 나경원, 자녀 특혜 의혹에는 '아몰랑' 조국 사태로 촉발된 고위공직자 자녀 입시 비리 의혹의 후폭풍이 나경원(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옮겨 붙을 기세다. 검찰이 이미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언론 등에서도 이 문제를 조명하는 기사를 연달아 내보내는 등 나 원내대표의 입장이 갈수록 나처해지는 모양새다. 최근 JTBC는 나경원 딸 입학 당시 면접을 본 이병우 전 성신여대 교수가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는 꼭지를 몇 차례 내보냈다. JTBC는 나경원 딸이 2012년 입학하는 과정에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MBC와 SBS 역시 18일 나경원 아들과 딸이 받고있는 의혹을 다시 한 번 거론했다. 이날 MBC는 연구물 포스터 제1저자 청탁 의혹을 받고 있는 나경원 아들이 또다른 연구 포스터에도 이름을 .. 더보기
세월호 참사 재수사, 실체규명의 핵심은 박근혜와 황교안 세월호 참사는 이전에 있었던 참사들, 이를테면 'KAL기 폭파사건', '성수대교 붕괴', '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경주리조트 붕괴' 등의 사건들과는 확연히 차원이 다른 사건이었다. 사건 그 자체로도 경악할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는 '불가항력'이나, 우발적 범행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인간, 더 정확히는 이 사회의 무능과 무책임이 빚어낸 '인재'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 끔찍하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해경, 승무원 등에게 승객들을 반드시 구조해내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 눈 앞에서 승객들이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이를 보고도 이들이 현장에서 한 일은 거의 없다. 선내 진입은 애초부터 꿈도 꾸지 않았고,.. 더보기
정경심 58일, 나경원 201일..검찰 수사의 살벌한 간극이 의미하는 것 #1. 58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과 관련, 검찰이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이후 구속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2. 201일. 지난 4월 발생한 국회 '패스트트랙 폭력 사건'으로 고소·고발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뤄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한 사람은 검찰이 강제수사에 들어간지 58일만에 구속된 반면, 다른 한 사람(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은 고소·고발된지 무려 201일이 지나서야 -그것도 59명을 대신해- 소환조사를 받았다. 58일과 201일. 검찰은 법과 원칙대로 수사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이 극명하고도 살벌한(?) 차이가 (검찰 수사와 관련해) 이러쿵 저러쿵 뒷말이 쏟아지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오죽하면 정의당 원내.. 더보기
노무현의 '대연정', 문재인의 '국정상설합의체', 그 명암에 대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에서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안했던 '대연정' 관련 일화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이던 2002년 12월26일 민주당 중앙선대위 당직자 연수회에 참석해 "지역대결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더라도 무엇이든 양보할 생각이 있다"며 야당과의 연정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이후로도 노 전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과 연정을 연계시키는 발언을 계속 이어갔다. 2013년 1월18일 TV인터뷰에서는 "어느 지역도 한 정당이 70~80% 이상 석권하지 못하도록 해 지역구도가 극복되면 프랑스식으로 과반수 정치세력이 총리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소신을 드러냈다.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03년 4월2일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지역구도는.. 더보기
문 대통령의 '국정상설합의체' 제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넘어섰다. 문재인 정부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정부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의 퇴행과 역행을 바로잡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촛불의 명령이 문재인 정부의 과제로 주어졌다. 임기 초반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고 거침없이 순항하는 듯 했던 문재인 정부는 그러나 거듭된 인사잡음,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논란, 남북관계 경색, 조국 사태 등이 잇따르며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임기 초 여소야대 국면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 수사, 개헌, 세월호 진상규명, 남북관계 개선, 권력기관 개편 등 외교-안보와 정치-사회 개혁 과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배경은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율 덕분이었다. 그러나 .. 더보기
살인마 전두환을 기억하는 방법 살인마 전두환이 온라인을 후끈 달구고 있다. 치매 질환을 이유로 그간 재판 출석을 거부해 온 전두환이 최근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는 모습이 공개돼 뜨거운 파문이 일고 있는 것. 8일 JTBC는 전두환이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은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가 촬영한 것으로, 전두환이 "광주하고 내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나는 광주학살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하는 장면 등이 담겨있다.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을 비롯해 일반 시민들의 분노가 봇물터지듯 터져나오고 있다. 치매로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다며 재판 출석까지 거부해 온 전두환이 건강한 모습으로 골프장에 나타나 광주 학살까지 부정했으니 공분이 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에 자유한국당을.. 더보기
보수통합? 인적혁신? 한국당 초선들 참, 구질구질합니다 오래된 얘기다. 새로운 세기가 열리고 얼마 뒤인 2000년대 초반 정치 개혁의 바람을 타고 '당내 민주화' 운동이 정치권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정당 개혁은 당시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다. 3김 시대가 저물어가던 그 무렵은 오랫동안 이 땅의 정치를 짓눌러왔던 제왕적 정치 풍토가 김대중-이회창 1인 보스 시대의 종언과 함께 마지막 숨을 고르던 참이었다.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과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서로 약속이나 한듯 '당내 민주화' 바람이 가열차게 일어났다. '천정신'(천정배, 정동영, 신기남)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의 정풍운동과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으로 대표되는 '수요모임'이 당내 정당개혁을 주도했다. 그러나 소장파 의원들의 개혁 바람은 이.. 더보기
한국당 지지율 급락시킨, 당 지도부 '멘붕 3연타' 자유한국당에게는 기득권 정당, 특권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2017년 12월 14일 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온 김성태 전 원내대표의 모두 발언을 보자. 김 전 원내대표는 이날 "그 동안 금수저, 기득권, 웰빙, 대기업, 가진 자들의 정당으로 인식된 한국당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서민, 노동자, 농민이 함께 어울어져서 잘사는 대민을 위해 함께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농단과 탄핵사태를 거치며 당시 한국당은 풍전등화나 다름 없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었다. 민심은 돌아섰고, 당은 사분오열됐다. 개혁의 바로미터인 인적청산과 당 혁신작업도 지지부진에 빠졌다. 얼마 남지 않은 지방선거를 위해 당을 환골탈태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안팎으로 빗발쳤다. 김 전 원내대표의 일성은 이런 가운데 터져나왔다. 한국.. 더보기
만약 황교안이 꿈꾸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언어는 사고의 반영이다. 말은 한 사람의 인격과 품성, 세계관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총선 대비용으로 영입하려던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예비역 육군대장)이 연일 논란의 중심에 오르고 있다. 한국당은 지난달 31일 박 전 대장이 포함된 인재 영입대상자 8명을 발표했다. 황 대표의 첫 번째 인재영입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 건 당연지사.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당 안팎의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다. 원래 황 대표의 1차 영입 명단에는 '공관병 갑질' 논란의 당사자인 박 전 대장을 비롯해 이명박-박근혜 언론탄압의 상징적 인물 이진숙 전 MBC 보도본부장, 신보라 한국당 의원 비서 남편인 백경훈 청년이여는미래 대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의 국내 영향 가능성을 일축한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 더보기
8살 아들이 집을 나갔다 아들이 집을 나갔다. 둘째인 아들은 이제 8살, 초등학교 3학년이다. 그런 아들이 생애 처음 어제 외박을 했다. 첫째 딸은 5학년 때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하다- 처음으로 집을 나갔는데 이 놈은 그보다 두 해나 더 빨리 집을 나갔다. 사내라 그런가? 생각해보니 소싯적 내가 처음 집을 나간 건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집안 분위기가 워낙 엄했을 뿐더러 그땐 학생 신분으로 외박을 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 외박했을 때의 느낌을. 집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짜릿했고, 그 때문에 아주 들떠 있었다. 그 후 외박이 잦아졌다. 처음이 어려웠지 한 번 경험해 보자 다음 번엔 아주 쉬웠다. 중간고사다, 모의고사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자주 밖으로 나돌았다. 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