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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언덕의 天-地-人

8살 아들이 집을 나갔다

ⓒ 구글이미지 검색

 

아들이 집을 나갔다. 둘째인 아들은 이제 8살, 초등학교 3학년이다. 그런 아들이 생애 처음 어제 외박을 했다. 첫째 딸은 5학년 때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하다- 처음으로 집을 나갔는데 이 놈은 그보다 두 해나 더 빨리 집을 나갔다. 사내라 그런가? 

생각해보니 소싯적 내가 처음 집을 나간 건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집안 분위기가 워낙 엄했을 뿐더러 그땐 학생 신분으로 외박을 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 외박했을 때의 느낌을. 집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짜릿했고, 그 때문에 아주 들떠 있었다.

그 후 외박이 잦아졌다. 처음이 어려웠지 한 번 경험해 보자 다음 번엔 아주 쉬웠다. 중간고사다, 모의고사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자주 밖으로 나돌았다. 술, 담배는 하지 않았지만 친구집, 당구장, 독서실 등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고리타분한 가르침과 훈계, 당시로는 이해하기 힘든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해방된 순간, 눈 앞에 별천지가 펼쳐졌다. 신세계였다. 집에서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나를 흥분케 했고, 전율하게 만들었다. 그 맛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나도 아들처럼 하루라도 더 어렸을 때 집을 나갔을 텐데.

그렇다고 공부를 등한시하지는 않았다. 독서실에서 친구들과 짤짤이를 할 때도 영어단어를 외웠고, 시험 전날 친구집에 모여 고스톱을 칠 때도 부러 광을 팔면서 암기할 것들을 쭈욱 훑고는 했다. 그렇게 싸돌아 다니고도 2~3학년 내내 내신 1등급을 유지할 수 있었던 나름의 비결이다.

성적이 떨어지면 어렵사리 얻어낸 자유를 다시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친구들도 이런 날 신기해했다. 밤새 같이 놀아도 성적이 좋게 나오는 나를 별종이라 여기는 듯 했다. 그 시절, 한데 어울려 밤길 깨나 휘젓고 다녔던 그 친구들은 지금도 '베프'로 남아있다.

살아보니 십 년, 이 십년, 삼 십년이 하루 같다.  어른이 되기만을 목놓아 기다리던 소년은 어느새 반백의 장년이 됐다.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그리고 겨울. 인생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아득한, 그러나 한편으론 아련한 내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가을 바람을 타고 집 앞을 이리저리 뒹둘고 있다.  

 

무섭다며 한방 중에 엄마-아빠 방으로 쪼르르 달려오는 아들이, 저거 저거 언제 사람되나 싶던 아들이 어제 외박을 했다. 'sleep over'를 기다리며 몇 날 몇 일을 해맑게 웃던 아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 모습 속에는 셀레는 마음 주체할 수 없던 30년 전의 내가 있다.

엄마-아빠가 세상의 전부였던 아들이 이제 또 다른 세상에 한 걸음 다가가려 하고 있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도 세상과 부딪히면서 소년으로, 청년으로, 그리고 남자로 성장해 갈 테다. 때로 힘들고, 때로 어려울지라도 당당히 맞서기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넉넉히 품어주기를. 치열하게 사랑하기를...  

 

세상 밖으로 첫 발을 내딛은 아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