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탄핵당한 날, 박근혜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재석의원 299명 중 '찬성 234명, 반대 56명, 기권 2명, 무효 7명'에서 확인할 수 있듯 국회는 압도적으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이는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촛불민심에 휩쓸려 분위기가 탄핵 가결로 급속히 기울자 상당수의 '샤이 친박'이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방증이다. 


당초 탄핵안 가결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관심은 얼마나 많은 찬성표가 나올 것인가에 집중됐다. 새누리당 친박계의 이탈표에 따라 향후 정치 지형이 크게 요동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애초 친박계는 이탈표가 많지 않을 것이라 공언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상당수의 친박계가 탄핵 찬성에 동참한 것이다. 이로써 새누리당의 내부 분열은 불가피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새누리당 최대 계파인 친박진영은 사실상 붕괴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탄핵이 가결되자 국민의 관심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통과된 만큼 박 대통령의 심경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외려 직무 정지 직전 다시 한번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임을 시사했을 뿐이다.

탄핵 가결 이후 박 대통령은 국무위원 간담회를 소집했다. 오후 5시에 소집된 간담회는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소회를 밝히는 자리가 됐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각 부처 장관, 청와대 참모진에게 준비해온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밝힌 소회 속에는 국민이 듣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 한 문장도 담겨있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이날 소회는 촛불민심에 기름을 부었던 1~3차 대국민담화의 재판이었다. 국무위원 간담회를 사칭한 사실상의 4차 대국민담화라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박 대통령 이날 간담회 자리를 빌어 억울함을 다시 호소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추진해온 국정과제들까지도 진정성을 의심 받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밝힘으로써 여전히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고 있음을 드러내 보였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일당과 공모해 자유시장 질서의 숨통을 조여왔음이 여실히 드러났는데도 여전히 딴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 특유의 적반하장과 궤변도 여전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고 계신 국민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죄송스러운 마음 뿐"이라며 "공직자들이 마음을 잘 추스리고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무총리와 장관들께서 잘 독려해 주시고, 국정현안과 민생안정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정공백이 없도록 국무위원들이 최선을 다해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국정 혼란을 유발시킨 당사자는 다름 아닌 박 대통령이다. 국민들의 심경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민심에 따라 당장 물러나는 것이 순리에 맞다. 국민이 느끼는 참담함은 이 와중에도 권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대통령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사태의 책임을 지고 지금이라도 하야 선언을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다. 절대다수 국민의 퇴진요구와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 압도적인 탄핵안 가결에도 전혀 미동조차 없다. 자신에 대한 탄핵이 결정되는 날 보란듯이 인사권을 행사하고, 직무가 정지되기 직전 국무위원을 소집해 여전히 최고통수권자의 지위를 놓지 않겠다는 결의를 내비친 것만 봐도 이는 명확하다.

궤변은 계속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헌재의 탄핵 심판과 특검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나갈 것"이라며 국민이 요구하는 즉각적 퇴진은 없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범죄의 피의자인 박 대통령이 마치 피해자라도 된 양 여전히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위법행위 때문에 탄핵당했다. 탄핵소추안에 적시된 탄핵사유 중 헌법 위반 사례만 꼽아도 열손가락으로는 어림도 없다. 여기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기금 모금 과정, 공무상비밀 누설 등 법률 위배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박 대통령을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라 적시한 검찰이 공소장 내용의 99%를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한 것만 봐도 죄질의 명확함과 위중함은 이내 드러난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심판이 끝날 때까지 자진 사퇴없이 버티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박 대통령의 아바타라 불리는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와 보수일변도인 헌재의 탄핵 심판에 마지막 승부수를 걸어보겠다는 심산이다. 박 대통령은 직무 복귀에 대한 희망, 곧 권력 유지에 대한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직무 복귀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간절한 희망은 역설적으로 국민을 깊은 절망으로 이끈다. 국민을 배신한 통치자를 국민의 힘으로 탄핵시킨 역사적인 시민혁명의 의미가 한순간에 퇴색퇴는 탓이다. 흔들리던 정치권을 압박해 탄핵 대열에 합류시킨 것도 국민이요, 국민 위에 군림하던 통치자를 굴복시킨 것도 국민이었다. 이는 저항권을 행사하지 않은 가운데 이뤄낸,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눈부신 성과다.

박 대통령의 희망인 직무 복귀는 그러나 이처럼 국민의 힘으로 일궈낸 빛나는 성과를 일거에 붕괴시키는 의미가 있다. 이는 낡은 관성과 통념의 구체제를 탈피하고 개혁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스템과 사회 구조를 재건하려는 국민의 열망에 시커먼 재를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이 합법적으로 박 대통령을 탄핵한 날, 놀랍게도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어쩌면 박 대통령은 탄핵 가결로 한껏 들떠있는 국민을 향해 섬뜩한 경고를 날린 것인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이상 그의 꿈은 여전히 살아있다. 이는 국민이 좌절하고 절망하게 될 가능성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이 입증한 '박근혜 탄핵'의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이 보이는 정치·시사 블로그 ▶▶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