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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새누리의 '짝퉁 보수뎐'

ⓒ 오마이뉴스


새누리당 친박계와 비박계 사이의 내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서로 간 도를 넘는 비방은 물론이고 고소까지 이뤄지는 등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죽기 살기 식의 이전투구가 펼쳐지고 있어 분당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치열한 기세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먼저 칼을 빼든 쪽은 새누리당 최대 계파인 친박계였다. 그들은 13일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보수연합)' 창립 총회를 열고 대열 정비에 나섰다. 총 35명의 의원이 참석한 이날 창립 총회에서 보수연합은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과 이인제 전 의원, 김관영 경북도지사를 공동대표로 선출했다.

보수연합은 창립선언문에서 "국민과 당을 분열시키는 배신의 정치, 분열의 행태를 타파하겠다"며 "재창당 수준의 완전히 새로운 보수 정당을 만드는데 매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비박계를 향해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보수연합은 이어 "사회 전반에 만연한 좌파 세력의 허구성에 대항해 보수 세력 대연합을 실현하고 정권 재창출에 앞장서겠다"는 뜻을 천명하기도 했다.

비박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친박계가 13일 보수연합을 창립하고 대대적인 세몰이에 나서자 비박계 역시 대응 마련에 골몰하는 모양새다. 비박계는 먼저 비상시국회의를 해체하고 친박 이탈세력을 규합해 찬박계의 공세에 맞서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탈당과 신당 창당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향후 진로를 모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


비박계를 이끌고 있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친박계를 "정치적 노예"라 규정하면서 "지금 새누리당으로는 어떤 변신을 해도 국민이 진정성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 가짜 보수를 걷어내고 신보수와 중도가 손을 잡고 국가 재건에 나서야 한다"며 친박계를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망친 주범으로 규정했다. 여의치 않을 경우 탈당해 중도 보수 신당 창당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친박계와 비박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골육상잔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이미 서로 "당을 떠나라"며 악에 바친 설전을 주고받은 그들은 당의 존립과 패권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막말과 원색적인 비방이 오가고 출당 명단에, 고소전까지 진행되는 것을 보면 친박계와 비박계의 결별은 시간문제다.

서로를 물어뜯지 못해 안달이 난 친박계와 비박계. 도무지 비슷한 점을 찾아보기 힘든 이 둘 사이에 그래도 공통점은 하나 있다. 치열한 패권 싸움의 와중에 제대로 된 '보수 정당'을 만들겠다고 한 목소리로 핏대를 올리고 있는 모습이 바로 그렇다.

친박계와 비박계 공히 지난 수십 년간 새누리당(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 포함)이 쌓아온 보수당으로서의 지분을 손놓고 포기할 수는 없었을 터다. 그렇게 보면 이 싸움은 새누리당 내부의 계파와 패권 싸움을 넘어 과연 누가 이 나라 보수의 적자인가를 두고 벌이는 한판 대결이나 다름 없다. 


ⓒ 오마이뉴스


그런데 가만, 이 싸움은 어딘지 기이하다. 보수 세력을 누가 대표할 것인가를 두고 펼쳐지는 이 대결에 정작 진짜 '보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 대연합을 공언한 친박계는 과연 보수인가? 가짜 보수를 걷어내자고 주장하는 비박계는 정말 보수인가?

이쯤에서 보수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보수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다양하고 분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신이 믿는 가치와 전통을 지키고 유지하려는 경향이라 정의하면 크게 틀림이 없을 듯하다. 다시 말해 보수는 현재 있는 것들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지키려는 태도를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이 고민이야말로 보수의 '보수다움'을 가장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척도다. 지난 2010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가 쓴 칼럼 <'보수',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배워라>는 보수와 그리고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비교적 손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 중 한 구절을 옮겨본다.

"통상 정치철학상 보수는 개인의 자유와 도덕성을 강조하고, 전통, 시장, 법, 애국의 가치를 중시한다. 이러한 보수의 관점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소중한 지침을 제공한다"

조국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보수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법치, 자유와 평등, 인권과 자율, 자유시장경제, 전통과 문화 등을 수호하고 계승 발전시켜 나가려는 태도가 바로 보수다. 


이 기준으로 바라보면 새누리당이 지금 대국민 '쇼'를 펼치고 있다는 걸 대번에 알 수 있다. 그것도 대단히 꼴사나운, 소가 웃을 촌극 말이다. 우리는 안다. 자칭 보수정당이라는 새누리당이 그동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얼마나 유린해왔는지를. 자유와 평등, 인권과 자율을 어떻게 침해하고 말살해 왔는지를. 자유시장경제와 질서를 어떻게 망가트려 왔는지를. 도덕성과 공정을 짓밟고, 전통과 문화를 얼마나 왜곡해 왔는지를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다.


우리는 또 안다. 진짜 보수는 절대로 새누리당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누리당이 진짜 보수였다면 국정원 사건, 세월호 참사,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이 나라가 이리 쑥대밭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수백만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박근혜 퇴진', '새누리당 해체'를 외칠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친박계와 비박계가 벌이는 보수 쟁탈전은 황당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이 나라 보수의 품격을 제대로 말아먹은 당사자들이 서로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는 적임자라고 우기고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을까. 이 모습은 마치 누가 누가 더 바보인가를 겨루는 '바보들의 행진'과 다를 바가 없다. 


친박계의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은 2002년 대선 당시 기업들로부터 무려 800여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불법대선자금을 갈취했고, 2008년에도 30여억원에 달하는 공천헌금을 걷어들여 두 번씩이나 실형을 선고받았던 부패 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비박계를 이끌고 있는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 2014년 10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2015년 예산안 시정연설이 있던 날 무릎을 꿇고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는 세월호 유족의 간절함을 매몰차게 외면했다. 이 모습 그 어디에서 보수의 가치와 품격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욱이 저 당에는 저와 같은 철학과 인식으로 무장한 의원들이 부지기수다)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따뜻함이 결여된 사상과 이념은 지극히 공허하고 건조하다. 새누리당은 '보수'를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저들에게는 민주주의와 법치, 자유와 평등, 인권과 자율, 도덕성과 공정성,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보수의 품격과 가치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친박계와 비박계 간의 보수 쟁탈전이 '짝퉁 보수뎐'에 불과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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