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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습니다

ⓒ 오마이뉴스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릅니다. 이제는 무뎌질 만도 한데 가슴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곤 나즉히 속삭여 옵니다. 아니라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아직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바쁜 세상살이에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문득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뭉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코 끝이 찡긋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이내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립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딸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바보처럼 또 그렇게 울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딸 아이가 울고 있는 이유를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어쩌면 우리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그날을 기억하고, 이렇게 헤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미스터리한 행방과 관련된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와 관련해 말들이 참 많았습니다. 굿판을 벌였다는 의혹부터 성형시술 의혹과 마약 투약설, 그리고 입에 담기 민망한 낯뜨거운 추문에 이르기까지 온갖 설들이 유령처럼 저잣거리에 떠돌았습니다.

이를 두고 청와대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라 일축했지만 한번 퍼진 풍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청와대는 오보와 괴담을 바로잡겠다며 청와대 게시판에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코너를 신설해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습니다. 한마디로 세간에 떠돌고 있는 의혹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청와대가 세간의 의혹을 부정하기만 했을 뿐, 박 대통령이 그 시각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청와대가 밝힌 대통령의 7시간에 정작 대통령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빼곡한 일정이 적혀있는 문자들만 층층히 나열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이 알고 싶어했던 건 숫자와 문자를 적어놓은 무의미한 기록지가 아닙니다. 대통령의 구체적 모습과 행위를 확인할 수 있는 실제적인 증거자료입니다. 이를테면 지난 6일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된 '대통령이 올림 머리를 하느라 90분 가량(청와대 주장 20분)을 소비했다'와 같은 그런 자료 말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해 승객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을 때 국가수반이자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한가하게 머리 손질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엽기적이고 기괴스럽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버선발, 아니 맨발으로라도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중대본)에 나가 상황을 파악하고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승객의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절체절명의 찰나에 태평하게 머리 손질을 받고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머리 손질을 받았던 그 시각 세월호는 선수만 남긴 채 침몰 중이었고, 배 안에 갖힌 300명이 넘는 승객들이 정부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 오마이뉴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박 대통령이 머리 손질을 한 시각입니다. 박 대통령은 오후 3시 중대본에 방문 준비 지시를 내리고, 3시 22분 경 머리 손질을 받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중대본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시각 박 대통령은 중대본으로 바로 달려가지 않고 올림 머리를 하는데 황금같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습니다. 한 편의 잔혹극이 따로 없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입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박 대통령의 미스터리한 7시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청와대가 밝힌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 중 이제 겨우 20분이 드러났을 뿐입니다. 의문이 가시지 않는 최순실의 대리처방 의혹, 박 대통령의 안티에이징 진료 의혹, 청와대의 향정신성 의약품과 마약류 구매 의혹, 박 대통령에게 처방된 태반·백옥·감초 주사, 앞 뒤 말이 맞지않는 청와대의 어설픈 해명 뒤에 또 어떤 경악스러운 일들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고영희씨는 지난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머리 손질 논란에 대해 "너 미쳤구나. 무엇을 감추기 위해서 또 쇼를 하나. 그날 그 이른 시간 저는 눈을 떴을 때 진짜 눈꼽도 안 떼고 저는 학교로 뛰어올라갔었거든요. 그런 생각부터. 연출을 하기 위해서 올림 머리를 했다? 진짜 다 쥐어뜯어버리고 싶었어요"라며 치를 떨었습니다.

고영희씨는 박 대통령이 일부러 민방위복에 맞춰 머리를 부스스하게 연출했다는 앵커의 멘트에 "이 나라의 엄마라면, 내 자식이 죽어가는데 진짜 머리를 할 수 있을까"라면서도 "그 뒤에 얼마나 더 큰 진실이 감춰져 있길래, 우리는 그날, 전원 구조했다는 말에 내 새끼 찾으러 간다고 그렇게 뛰어갔는데, 진도로. 자기는 그 시간에 쇼를 하기 위해서"라고 절규하며 애써 참고있던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박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는 사랑하는 가족을 허망하게 떠나보낸 유족들의 '한'과 맞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동시에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박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 속에는 진실규명을 갈망하는 유족들의 울분과 분노, 눈물과 고통이 오롯이 녹아있으며,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 이성과 비이성, 상식과 몰상식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먼 훗날 우리의 아이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많은 것들을 물어올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에 대해 명확히 답을 해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따위의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운 대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 진실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박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는 그 진실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사고 당일의 행적을 떳떳히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며, 유족들을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참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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