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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촛불이 더 뜨겁게 타올라야 하는 이유

ⓒ 오마이뉴스


정치권이 분주해졌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자신의 퇴진 일정을 국회가 결정해달라 요구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요청에 급물살을 타던 탄핵소추안 처리는 일견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야 3당이 긴급 대표 회담을 통해 예정대로 오는 2일 탄핵안 처리 의사를 내비쳤지만 실제 강행할지는 미지수다. 탄핵안 처리에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 비박계의 이탈 조짐이 역력한 탓이다. 이 때문에 2일 처리가 힘들어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야권이 8일까지 여야 협상을 통해 박 대통령의 퇴진 일정을 조율하자는 비박계의 입장을 고려해 9일 처리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야권의 고민은 박 대통령이 꺼내든 간교한 꼼수(혹은 묘수)에 대응할 다음 수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당장 야권이 2일 탄핵안을 강행한다 해도 비박계의 동요로 처리를 낙관할 수 없는 입장이다. 만약 탄핵안이 부결되면 이를 주도한 여당은 물론 야당 또한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 박 대통령을 퇴진시킬 합법적 수단이 사라지게 됨은 물론 탄핵 부결에 따라 정국은 예측불가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야권이 전열을 정비하고 탄핵 의지를 재확인했음에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이유다.

박 대통령의 담화가 촉발한 충격파로 정치권이 쑥대밭이 된 가운데 시민들의 분노는 외려 더욱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사과와 반성은 커녕 검찰의 수사결과를 전면 부정하면서 탄핵을 모면하려는 정치적 술수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3차 대국민담화 관련 기사에는 네티즌들의 비난 댓글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고, SNS에서도 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의견들이 봇물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평일 촛불집회 인원도 기존보다 늘어났다. 박 대통령의 담화에 요동치는 정치권과는 달리 시민사회의 탄핵 의지는 꿈쩍도 않고 있는 것이다.

기실 박 대통령의 담화는 논란이 될 이유가 별로 없는 문제였다. 민주주의와 헌법가치를 부정하는 독선과 독단, 오만으로 가득찬 박 대통령의 '마이웨이'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까닭이다. 이번 사태의 근원이 전적으로 박 대통령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치권이 호들갑을 떨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사태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자. 애초 박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면 국정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터다. 그러나 그에게는 헌법 가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었다. 어디 이뿐인가. 국가지도자로서의 기본적인 철학과 가치관마저 의심받고 있다. 도덕적 권위 역시 사라진지 오래다.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 권한행사의 의미 자체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게는 이마저도 기대난망이다. 그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일말의 죄의식도 부끄러움도 발견하기 힘들다. 검찰 조사를 성실히 받겠다고 국민과 약속했으면서 혐의가 드러나자 언제 그랬냐는듯 수사를 거부해 버린다. 200만 촛불민심에 드러난 민의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 국민의 뜻과는 정반대의 행보만 고집하고 있다. 나라가 절단나든 말든, 국정이 늪에 빠지든 말든 대통령으로서의 지위를 끝까지 놓지 않겠다며 정국을 깊은 수렁 속으로 끌고가고 있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아수라장이 된 작금의 현실은 1987년 6월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당시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던 장기군사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 수백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호헌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를 외치며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에 맹렬히 저항했다. 그 결과가 역사적인 '6.29 선언'이며, 87년 체제의 완성이다. 

만약 당시 시민들이 전두환의 야만적 폭력 앞에 굴복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86년 6월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이 권력의 오만과 폭주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변혁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에 200만 촛불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 시국은 당시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사회 변동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권력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것도, 권력의 시녀였던 검찰의 각성을 유도해낸 것도, 꿈쩍도 않던 정치권을 움직여 탄핵 정국을 만든 것도 모두 시민들의 힘이었다. 시민들이 분노하지 않았다면, 정치권을 압박하지 않았다면, 지역과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 사회보편적 가치의 회복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이 모두는 불가능했다.

박 대통령의 담화 내용을 두고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공이 국회로 넘어갔다고 진단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공은 국회로 넘어간 것이 아니다. 국회는 단지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일 뿐, 이 싸움은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유린한 무도한 권력과 불의와 부정에 저항하는 시민사회 사이의 한판 대결이다. 

하나의 촛불이 100만, 200만 촛불로 번져가자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하나 둘 바뀌어가고 있다. 이는 시민의 힘이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본질적 동력임을 입증해준다. 시민들이 끝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질곡과 모순, 부조리와 적폐를 시민의 손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가 광장에서 더 크고 더 뜨겁게 '박근혜 퇴진'을 외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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