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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근혜의 개헌 꼼수, 무력화시키는 방법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이날 박 대통령이 담화에 할애한 시간은 총 4분 10초. 그는 이번에도 기자와의 질의 답변은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입장을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내용 역시 지난 1~2차 대국민담화 내용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제기된 의혹을 부정하는 자기 변명과 책임 회피가 난무했다.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잇따르는 이유다.


이날 박 대통령의 담화 내용 중 특히 논란이 됐던 부분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된 대목이었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언뜻 퇴진 의사를 밝힌 것처럼 보이는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은 그러나 그 내용을 뜯어보면 곳곳에 권력 유지를 위한 간교한 술수가 숨겨져 있다.

먼저 사흘 앞으로 다가온 탄핵 상정을 늦추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자신의 거취를 일임하겠다는 것은 탄핵소추 상정을 앞둔 국회의 혼란을 유도하겠다는 심산이다. 이를 반영하듯 새누리당 비박계는 대통령의 담화 내용에 동요하는 모양새다. 어찌됐든 대통령이 물러나겠다고 밝힌만큼 탄핵까지 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심정적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야당 측에 탄핵 일정의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고 나섰다. 이에 급물살을 타던 2일 탄핵안 처리가 어려워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 대통령이 퇴진 시점을 여야 합의에 맡긴 것도 대단히 정략적이다. 여야의 첨예한 정치공학적 입장을 고려하면 정치권이 합의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합의에 이른다는 보장도 없다. 정치권이 퇴진시기와 방법에 당리당략적으로 접근할수록 박 대통령은 그에 따른 반사이득을 챙기며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야권이 박 대통령의 담화 내용을 '시간끌기용 꼼수'라 규정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하는 점은 박 대통령이 자신의 거취 문제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 '개헌' 문제와 결부시켰다는 사실이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시키기 위한 방법은 개헌 밖에는 없다. 따라서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개헌 의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치권이 개헌 문제로 요동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개헌은 정치권의 헤게모니와 이해타산이 집결되어 있는 화약고나 다름이 없다. 내년 대선시계와 맞물리면 그 파급력을 가늠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런 까닭에 단기간에 정치권의 합의가 도출될 수 없는 화두이며, 이에 대한 국민의 입장도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따라서 개헌 문제가 부각되면 박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국민적 관심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얻게 되면서 자연스레 국면 전환의 기회를 엿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담화는 이와 같은 고도의 정치적 노림수가 숨겨져 있다. 조건없는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의 명령에 박 대통령이 퇴진을 가장한 간악한 술책을 들고 나온 셈이다. 그것도 백일 하에 드러나고 있는 범죄 혐의를 전면 부정하면서 말이다. 



ⓒ 오마이뉴스



박 대통령의 4분 10초짜리 담화는 한 마디로 '나는 식물 대통령입니다'라는 낯뜨거운 자기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거취를 국회가 알아서 정해달라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저열한 정치적 술수는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 대통령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최순실 일가에게 고스란히 헌납한 박 대통령답게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를 다시 드러내 보이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거취 문제를 국회에 전적으로 일임한 이상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왔다. 목불인견에 가까운 박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이 확인된 이상 국회가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의 임기를 정해주면 그 뿐이다. 법대로 해달라는 대통령의 요구에 맞춰 국회는 그에 합당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와 관련해 사실상 개헌을 요구한 박 대통령의 바람대로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 18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회의 탄핵소추가 여의치 않다면 임기단축 개헌 등 국민탄핵의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원포인트 개헌 형식의 국민투표'를 통해 박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 그 골자다. 방법도 어렵지 않다. 여야 합의로 대통령의 임기를 규정한 헌법 70조와 관련해 '19대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2016년 12월 31일까지로 한다' 등의 구체적 기한이 담긴 부칙을 수정하기만 하면 된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김해원 교수가 주장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원 포인트 헌법개정' 역시 그와 비슷한 맥락이다. 김 교수는 "퇴진을 거부하고 있는 대통령을 평화적이고 합헌적으로, 그리고 주권자인 국민의 손으로 물러나게끔 하는 방법이 있다"며 "이 헌법 공포 당시의 대통령은 이 헌법 시행과 동시에 임기가 만료된 것으로 본다"는 조항을 넣는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한 바 있다.

탄핵소추 절차와 마찬가지로 국회 재적 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 '원 포인트 개헌'은 지리한 절차적 과정이 수반되는 탄핵소추보다 시간적·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또한 탄핵 절차와 병행해 추진할 수 있으며, 탄핵소추 투표와 달리 기명 투표이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에게 결과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게다가 '원 포인트 개헌'은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므로 직접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가장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이다.

옛말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고 하지 않던가. 박 대통령이 자신의 거취를 국회에 위탁한 이상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즉각적으로 퇴진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머뭇거릴 이유도, 그렇다고 동요할 이유도 없다. 국회는 탄핵소추 절차와는 별도로 '원 포인트 개헌'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법 절차에 따라 퇴진하기를 바라는 박 대통령의 뜻에 부합하는 일이며, 하루라도 빨리 국정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국민의 간절한 바람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수백만 촛불에 담겨있는 국민의 준엄한 뜻을 직시해야 한다. 만약 국회가 당리당략과 자중지란에 빠져 국민의 뜻을 받들지 않는다면 촛불은 광화문이 아닌 여의도로 향할 것이다. 국회는 박 대통령의 제안대로 법 절차에 따른 퇴진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 그것이 수백만 촛불에 담긴 국민의 뜻이며 추상과도 같은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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