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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미국으로부터 날아든 안보이슈가 정국을 혼란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 진원지다. 지난달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 10억달러를 한국이 지불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7월 사드배치 합의 당시 밝힌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정부는 사드 운용과 유지 비용은 미국측이 부담하고, 우리나라는 부지와 기반시설을 제공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지난달 28일 열린 대선후보 5차 TV토론에서 이 문제를 두고 격론이 불거졌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이구동성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나아가 두 후보는 정부의 설익은 사드배치 결정을 비판하며 차기 정부로 이 문제를 넘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비용 문제는 이미 한미 양국이 합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안 후보는 양국이 체결한 합의안대로 사드문제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고, 유 후보는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에게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며 사드 비용을 우리나라가 부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지난달 30일 청와대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하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전보좌관 사이의 전화통화 사실을 공개했다. 미국이 사드비용을 부담한다는 기존의 협의를 재확인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발표로 일단락되는 줄 알았던 사드비용 논란은 하루 만에 재점화됐다. 이번에는 김 실장과 통화 이후 '폭스뉴스 선데이'와 인터뷰를 한 맥매스터 보좌관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미 대통령의 말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며 "내가 한국 측에 말한 것은 어떤 재협상이 있기 전까지 기존 협정이 유효하다는 것이었으며 우리는 우리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드 관련문제와 미 국방에 관련된 문제는 재협상될 것이며 이는 다른 동맹국들에도 적용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드문제는 물론이고 한미 양국 사이의 국방 문제 역시 재협상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이다.
맥매스터 보좌관의 인터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재협상'을 언급한 대목이다. 그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비용 문제는 재협상이 있기 전까지 유효한 한시적인 조건임을 분명히 했다. 한미 양국 사이의 사드관련 재협상이 이뤄지면 기존 합의가 무의미해 진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했다. 우리 정부와 사드배치에 찬성하고 있는 대선후보들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은 사드 관련 재협상에 나설 뜻이 명확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재협상이 비단 사드비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재협상을 언급하며 사드관련은 물론이고 미 국방에 관련된 문제를 동시에 거론했다. 이는 미국이 자국의 국방 문제와 관련된 부분 역시 우리 정부와 재협상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맥매스터 보좌관이 밝힌 재협상의 의미가 단순히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한국의 국방비 자체를 올리려는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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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은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지금 국방비를 GDP 2.4%를 쓰고 있는데 이것을 4%까지 올리리고 하는 것은 옛날 조지 부시,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 계속 한국에 요구사항이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미국이 유럽에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동맹에 대한 책임분담 이야기를 지금하고 똑같이 했습니다. 그러면 맥마스터가 얘기한 건 뭐냐 하면 사드 비용 한국이 안 내도 좋다. 그러나 방위비 분담금하고 한국의 국방비 자체를 문제삼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김 의원은 이 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이 천명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미국의 움직임이 단순히 방위비 분담금의 인상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우리가 동맹비용이라고 할 때 방위비 분담금은 오히려 가장 규모가 작은 분야입니다. 미국에 1년에 1조 내지 2조 가량 무기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고요. 그 다음에 미국의 기지조성에 100억달러, 10조 원이 넘는 돈을 썼거든요. 이렇게 큰 덩어리들이 있는데 1년에 1조 원이 채 못되는 방위비 분담금 하나만 가지고 미국이 대통령과 국가안보보좌관이 나서서 저런다? 그것도 사드를 빌미로 몇 천억이 올리려고? 이건 아니거든요. 이걸 우리가 정확히 좀 알아야겠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종합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비용 발언과 맥매스터 보좌관의 언론 인터뷰는 자국 우선주의의 국정철학과 경제·안보 기조가 반영된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추론해볼 수 있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트럼프의 경제·안보관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관련 문제를 거론하면서 한미 FTA 협정을 재협상하거나 폐기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다.
황당한 것은 사드배치와 관련해 정부와 범보수진영 대선후보들이 보여주고 있는 어이없는 행태다. 사드비용 논란이 한국과의 재협상을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내려는 미국의 정치적 행위라는 사실이 뻔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정부는 "사드에 대한 합의 내용은 변함이 없다"는 답변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고, 범보수진영 대선후보들은 사드비용 문제는 정부간 합의된 사항이기 때문에 미국이 부담할 것이라는 순진한 소리를 늘어놓기에 급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사드배치 결정으로 인해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국론은 분열됐고, 사드배치 지역으로 결정된 성주군 일대는 마을 전체가 초토화되다 시피 했다. 중국과의 외교 마찰로 중국시장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한국 여행 금지 조치로 관광업계가 직격탄을 맞았고, 유통업계와 서비스업계 역시 사드 후폭풍에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성능 검증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사드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사드비용까지 한국 정부가 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을 지핀 이번 논란의 핵심은 사드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범보수 대선후보들의 주장처럼 사드 비용을 미국이 부담한다 하더라도, 미국이 방위금 분담금을 올리거나 국방비 인상을 통해 책임분담 비용을 대폭 인상하게 되면 국가적 손실 규모가 비약적으로 증폭된다는 사실이다. 시쳇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범보수진영은 '역시나' 요지부동이다. 미국 대통령이 양국의 기본 합의를 뒤집는 외교적 결례를 범하고, 한국 정부와 한국인을 대놓고 무시하는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여도 그들의 '사드예찬'은 전혀 변함이 없다. 한미동맹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그들의 마음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동맹'과 '종속'의 차이 정도는 분별할 수 있었으면 한다. 국가와 국민으로서의 주권, 그리고 자존감이라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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