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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12월28일 한일 양국이 합의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선후보 5명의 입장은 대동소이하다. 대선후보들은 파기와 재협상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진보·보수 사이의 진영 문제가 아닌 인권과 민족의 문제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일본의 법적 책임과 공식 사과가 빠져있는 합의는 무효라며 재협상을 통해 국민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합의를 도출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를 반영해 합의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며 재협상에 무게를 뒀다.
유승민 후보도 재협상은 당연한 것이며, 일본이 이를 거부할 경우 10억엔을 돌려주고 합의를 파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합의 파기를 공식 선언하고, 새 정부 출범 이후 국정조사를 통해 합의를 둘러싼 논란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합의 당시 여당 소속이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협상 파기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홍 후보는 한국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 합의를 '한일 간의 뒷거래'라고 비판하며 집권하면 합의를 파기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처럼 5명의 대선후보 모두 위안부 문제 합의가 국민 의사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입장이 배제된, 정서적으로도 원칙적으로도 잘못된 협정이라는 데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이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위안부 문제 합의는 재협상 내지는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대선후보들이 한 목소리로 위안부 문제 합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이유는 당시 합의가 과정과 절차, 내용 면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합의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사전 협의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 1993년 고노 담화문에 명시돼 있던 '강제성'이라는 표현을 합의문에서 빼는 대신 소녀상 이전 문제를 포함시켰다. 심지어 정부는 합의문에 '최종적 및 불가역적'이란 표현을 적시해 일본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반면 우리가 얻은 실익은 거의 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 앞으로 송금된 10억엔과 한미일 사이의 외교 협력체제가 강화(?)된 것을 제외하면 내세울 것이 별로 없다.
위안부 문제 합의가 실패한 협상이라는 것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일본의 태도에서도 확인된다. 일본은 합의 이후에도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적 책임 역시 부정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커녕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일본 외무상의 입에서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합의는 피해자의 요구를 반영한 최상의 결과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같은 정부의 기조는 새정부 출범을 앞 둔 지금까지도 불변이다. 굴욕적이고 졸속적인 협상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정부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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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보고서'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보고서는 위안부 문제 합의가 박근혜 정부의 노력에 의한 외교적 성과라고 규정하는 한편 일본 정부가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고 정부예산으로 '사실상'의 배상을 실시했다며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보고서의 내용과는 달리 합의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태도는 아직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합의의 내용 역시 부정적 평가 일색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물론이고 여야 대선후보들까지 나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도, 그들이 앞다퉈 재협상과 파기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일본 정부가 사죄와 반성, 배상을 했다는 내용 역시 사실과 다르다.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는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여전히 부정하고 있으며, 진정성있는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배상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는 10억엔의 성격을 배상이 아닌 '치유금'이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이쯤되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 정부가 앞장 서서 일본 정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 당사자가 인정하지 않는 합의, 가해자의 사죄와 반성·법적인 책임과 배상이 빠져있는 합의, 국민정서에 역행하는 합의를 체결한 정부가 심지어 가해자인 일본 정부를 두둔하기에 급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6년 3월7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심의해 발표하면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다는 한일 합의 발표는 피해자 중심의 문제 해결 방식이 아니다"라며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진실·정의 그리고 희생자에 대한 배상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비단 국내에서만 제기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사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왜곡해온 일본 정부의 반역사적이고 반인륜적 행태는 세계 곳곳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인식과 태도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에 기초해 보면, 우리 정부는 행태는 국민을 '멘붕'에 빠트리기에 충분할만큼 상식을 벗어나 있다. 그것에 아니라면 대선을 채 일주일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그것도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재협상과 파기 요구가 가열되는 시기에 논란이 될만한 보고서를 발간할 이유가 하등 없다.
이런 정부를 가리켜 저잣거리에서는 '어느 나라 정부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떠돌고 있다. 극단의 불신과 불만이 뒤섞인 자조적인 반문일 것이다. 정부는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존엄과 인권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피해자의 입장보다, 국민의 요구보다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이 정부는 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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