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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적이다. 아니 노골적이라고 해야 할까. 26일 새벽 경북 성주골프장에 사드 장비가 전격 반입됐다. 이로써 대선 전 사드 배치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던 군 당국의 설명은 이번에도 거짓으로 판명났다. 지난 17일만 해도 "현재 진행되는 상황으로 봐서는 단기간 내 마무리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던 국방부였다.
그러나 국방부의 말과는 달리 사드 장비는 대선 전, 그것도 사람들의 이목이 뜸한 새벽에 성주골프장 안으로 반입됐다. 이날 주한미군이 반입시킨 장비는 발사대 6기와 X-밴드 사격통제레이더, 요격미사일 등이 포함된 사드의 핵심 장비들이다. 지난달 초 사드 발사대 2기를 들여온 이후 지금껏 사드 배치와 관련해 철저히 함구해왔던 군 당국이 또 다시 뒷통수를 친 것이다.
"5월 초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다음 대통령이 이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맞다. 어떠한 정부의 결정도 수주 내지 수개월 정도 걸리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 그들이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고, 그것은 다음 대통령이 내려야 할 결정인 것이 맞다."
지난 16일 펜스 미국 부통령 방한 시 동행했던 외교정책 보좌관이 저렇게 말할 때까지만 해도 사드 배치는 대선 이후에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대통령이 궐위된 비상 상황인데다, 사드 배치에 따른 환경영향평가와 기지 공사 작업 등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대북압박에 나서고 있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미국이 사드 배치 시기를 조율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예상이 한미 양국의 기습적인 사드 배치로 일순간에 뒤집어졌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사드 배치 논란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사드의 실효성 논란에서부터 X-밴드 레이더의 위해성 논란, 대중국 외교 갈등과 급등하는 한반도의 안보 리스크, 비용 및 환경 문제 등 해소되지 않은 논란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정부과 군 당국은 사드 배치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귀울이지 않았다.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임에도 아직까지 주민설명회 한 번 개최하지 않은 그들이다.
파장을 고려해 황급히 진화되기는 했지만, 사드 배치는 다음 대통령이 결정하는 게 맞다는 미 외교정책 보좌관의 인식은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이라고 봐야 한다. 대통령이 궐위된 비상 시국임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민의 생존권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니만큼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선출된 이후 차기 정부에서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선택은 그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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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는 왜 대선 경쟁이 한창인 이 시점에 기습적으로 사드 장비 반입을 강행한 것일까.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대선 흐름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드 배치와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서로 맞물려 있는 탓이다.
현재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다음 정부에서 사드 배치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경우 지난달 8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회 비준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다. 최근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누구보다 사드 배치 반대 의지가 확고하다. 정의당 역시 국회 비준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보수표를 의식해 사드 배치 반대 당론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국민의당도 대선 이후 입장이 어떻게 뒤바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사드 배치 문제는 자칫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사드 배치 의지가 확고한 현 정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황 권한대행이 대선 이후 차기 정부가 사드 배치 문제를 되돌릴 수 없도록 이른바 '알박기'에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대통령 권한을 일시적으로 대리하고 있는 황 권한대행에게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사드 배치를 결정할 권한이 있느냐는 점이다. 국민의 투표로 당선된 선출직 대통령과 그 직무를 대리할 뿐인 권한대행은 권한 행사의 정당성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헌법학자들이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가 잠정적인 현상 유지에 있다고 해석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첨예한 논란을 빚고 있는 사드 배치 문제는 단순한 의제가 아니다. 남북 관계는 물론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패권이 달려있는,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정파를 초월한 다각도의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 사회구성원 사이의 합의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황 권한대행은 우리나라의 경제·외교·안보·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사드 배치 문제를 충분한 논의도 검증도, 공론화의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버렸다. 그것도 대선이 불과 2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황 권한대행의 '알박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까지도 그는 여러 분야의 인사권을 남발하며 범시민사회의 빈축을 샀다. 머지 않아 떠날 그가 쉽게 지워지지 않을 얼룩을 남기고 있다. 문제는 이 얼룩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크나큰 부담으로 남겨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불타는 애국심에 기대기엔, 사드 배치의 리스크가 너무나 크고 깊어 보인다. 곳곳이, 사방이 지뢰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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