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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홍준표에 딱 걸린 3자 단일화의 숨은 속내

ⓒ 오마이뉴스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국민의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 사이의 '3자 단일화'를 대선후보들이 공개적으로 부인했다. 25일 밤 열린 JTBC주최 대선후보 3차 TV토론회 자리에서다. 3차 TV토론에서 대선후보들이 3자 단일화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바른정당의 제안으로 재점화됐던 '반문연대'의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해졌다.

이날 단일화 문제를 꺼내든 것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다. 문 후보는 토론의 말미에 후보들에게 3자 단일화에 대한 의향을 물었다. 이에 논란의 당사자 격인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무슨 이유로 물으시는지 모르지만, 저는 단일화하지 않는다"며 끝까지 완주할 뜻을 내비쳤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그럴 일 없다. 선거 전 그런 연대는, 거짓말하지 않고 백 번도 넘게 말했다"고 밝히며 단일화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와중에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굳세어라, 유승민"이라고 외치며 "유 후보가 뜻한대로 수구 보수를 밀어내고 따뜻한 건전 보수 세력을 세우는데 열심히 주도적으로 하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단일화 질문과 관련해 가장 눈길을 끌었던 사람은 홍준표 한국당 후보였다. 홍 후보는 "그런 걸 왜 물어요. 나는 생각도 없는데"라고 손사래를 치며, "바른정당이 자기네 존립이 문제 되니까 한 번 살아보려고 하는 건데"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토론 태도와 자질 문제 등으로 여러 차례 논란을 야기시켰던 홍 후보이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정확하게 사안을 꽤뚫어 보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말이 맞다. 바른정당은 지금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중이다. 3자 단일화 제안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들의 절박함의 발로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그렇게 해서 쥐어 짜낸 방법이 고작 자기들 손으로 뽑은 후보의 뒷목을 잡고 흔드는 정치공학적 연대라는 점이다. 

24일 열린 의총에서 바른정당은 5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3자 단일화'안을 도출해냈다. 이를 주도한 것은 친 김무성계 의원들이다. 그들은  3자 단일화의 당위로 크게 두 가지를 내세웠다. 어떻게든 친문패권주의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요, 현재의 유 후보로는 대선에서 가망이 전혀 없다는 것이 그 둘이다. 그들의 주장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

바른정당은 국민정책평가단 40%, 당원투표 30%, 일반국민 여론조사 30%를 반영하는 경선룰에 의거해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유 후보는 이 과정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원과 그를 지지하는 일반국민의 신임을 얻었고, 마침내 바른정당의 대선후보로 공식 추대됐다. 유 후보를 중심으로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정치적 약속을 당원 및 일반국민들과  맺은 것이다.

그런데 3자 단일화는 바른정당이 당원 및 일반국민들과 맺은 이 약속을 송두리째 파기시키겠다는 뜻이다. 유 후보가 제시한 정치적 목표와 정책에 동의한 당원과 일반국민들의 뜻을 배신하고, 그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것이다.



ⓒ 오마이뉴스


정당은 동일한 가치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정치결사체다. 그런데 바른정당이 추진하려는 3자 단일화는 정당의 존재 이유와 근본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국민의당·한국당·바른정당의 화학적 결합이 비슷한 철학과 노선을 가진 조직 사이의 정책연대가 아닌, 단순히 특정인에 반대하기 위해 결집하는 '안티테제'로서의 연대이기 때문이다. 


유 후보의 낮은 지지율을 문제 삼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비겁하며 조악하다. 유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되기 이전부터 바른정당의 정당 지지율이 바닥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바른정당은 따뜻하고 건강한 보수, 개혁적 보수를 만들겠다며 새누리당(현 한국당)을 박차고 나온 비박계가 창당한 정당이다.


그러나 바른정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과거 새누리당 시절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들은 분당 이후 투표권을 만 18세로 하향 조정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새누리당과 함께 반대하는가 하면, 개혁입법의 하나인 공수처 신설 법안과 방송관련법 개정안 등에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에 집착하며 낡은 보수의 구태를 답습한 것도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바른정당이 무너진 보수진영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의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의 통치철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새누리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데 실패했다. 새로운 보수의 길을 보여주는 대신 구태 행보를 답습하며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당원 및 일반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자신들이 선출한 대선후보를 흔드는 장면이야말로 가히 그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바른정당이 유 후보를 끌어내리려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문제다. 바른정당으로서는 대선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만약 이 흐름대로 지리멸렬하게 유 후보가 대선을 완주할 경우 바른정당의 존립기반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 가뜩이나 당세와 조직이 열세인 바른정당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욱 불투명해진다는 뜻이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선거결과에 선거보조금 보전 문제도 걸려있고, 이대로라면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 또한 기대난망이다. 


그러나 이를 십분 이해한다 해도 바른정당의 3자 단일화 제안은 정치공학에 매몰된 정략적 발상이라는 비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정치의 기본이자 생명과도 같은 대의명분이 그들에게 없는 탓이다. 바른정당이 국정농단 사태로 궤멸위기에 빠진 보수진영을 되살리기 위해 새누리당과 갈라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은 선거가 힘들어지자 다시 적폐세력에 손을 내밀며 정치적 야합을 시도하고 있다. 정당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저버리는 것은 물론 어처구니 없는 자기부정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홍 후보가 정확히 꽤뚫어 본, '눈 가리고 아웅'하는 바른정당의 속내와 저의를 국민들이 모를 리가 없다. 안 후보와 홍 후보가 3자 단일화 제안을 단칼에 잘라버린 이상, 바른정당은 꿩도 잃고 매도 잃은 군색한 처지에 내몰리게 됐다. 한 번 살아 보려고 궁리 끝에 잡은 줄이 썩은 동아줄이다. 3차 단일화 제안으로 바른정당은 명분도 실익도 모두 다 잃었다. 보수의 가치와 비전을 재정립하겠다는 그들의 외침이 허울 뿐인 눈속임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꼴이나 다름이 없게 됐다. 염치가 있다면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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