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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일주일 앞둔 시점, 세간의 모든 이목은 대선후보들에게 향해 있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을 통해 중계되고, SNS를 통해 공유된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온통 대선 관련 이슈들이 넘쳐난다. 상호 비방전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네거티브가 횡행하고, 후보 진영 간의 고소·고발 소식도 끊이질 않는다. 오랫동안 되풀이되고 있는 낯익은 이 장면들은 이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대한민국 정치사는 올곧은 정치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정책과 공약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상대의 약점과 결점을 공략하고 악의적인 허위사실과 비방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술수와 모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신과 신념 없이 권력의 향배를 쫒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철새 정치, 정당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계파주의와 패권주의 역시 대한민국의 정치를 후퇴시키는 주범 가운데 하나로 지목받는다.
2일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막장 저질극이 다시 한번 재연됐다. 보수 개혁을 위해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바른정당 소속 의원 13명이 홍준표 한국당 대선후보의 지지를 선언하며 집단 탈당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친박 패권세력은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망각했다. 정치는 책임지는 것인데 기득권에 매달려 반성과 쇄신을 거부한 새누리당은 더 이상 공당이 아니다"라며 새누리당(현 한국당)을 박차고 나온 이들의 결기는 불과 석달여 만에 무너졌다.
바른정당을 창당하며 천명했던 '보수 개혁'의 당위는 이제 '보수 대통합'으로 감쪽같이 탈바꿈 됐다. 대척점에 있는 서로 다른 두 명제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현란한 '크로스 오버'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지난달 25일 4차 대선후보 TV토론 당시 "바른정당 자기네 존립이 문제 되니까 한 번 살아보려고 하는 건데"라며 3자 단일화의 실체를 꽤뚫어본 홍 후보의 혜안이 옳았다.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절규이자 몸부림, 자기부정이 만들어낸 역설. 정치사에 길이 남을 웃지 못할 촌극이다.
때아닌 집단 탈당 소식에 정치권은 비난 일색이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3당은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마늘과 쑥을 먹다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간 호랑이 꼴(박광온 민주당 선대위 공보단장)", "보수 재결집이라는 궁색한 명분이 안타깝다(손금주 국민의당 선대위 수석대변인)", "줏대도 없고 용기도 없는 경박한 정치 군상들의 생존 몸부림(정의당 한창민 대변인)". 야권의 논평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했고, 신랄했다.
한국당 역시 마찬가지다. "벼룩에도 낯짝이 있다(서청원 의원)", "정치가 이런 것인지 씁쓸하다(유기준 의원)", "그분들의 복당이 이뤄지면 14년간 정들었던 한국당을 떠날 것(한선교 의원)", "나갈 때는 자기들 마음대로 나갔지만 들어오는 것은 마음대로 안 된다(김진태 의원)"며 친박계 의원들은 복당을 타진하고 있는 탈당 의원들을 거세게 비난했다.
창당 98일 만에 위기에 봉착한 바른정당은 침통한 가운데 수습에 매진하고 있다. 유승민 후보는 이날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마지막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이순신 장군 생각이 난다.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았다.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손 잡아주면 이 개혁 보수의 길을 계속 가겠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김무성·정병국 공동선대위원장 등 당 지도부와 원외위원장들 역시 이날 열린 중앙선대위-원외위원장 연석회의를 통해 유 후보와 함께 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오신환 대변인은 "모두가 끝까지 힘을 모아서 유 후보의 승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5월9일 끝까지 가기로 결의했다"고 연석회의 결과를 전했다. 소속 의원들의 집단 탈당에도 불구하고 당의 결속과 화합에 전력하며 마지막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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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심각한 위기에 빠진 유 후보에 대한 후원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하루 50여 건 안팎이던 후원이 300여 건으로 6배나 뛰었다. 온라인과 SNS 상에서 유 후보를 응원하는 댓글이 줄을 잇는가 하면, 바른정당에 가입하는 당원 숫자는 평소보다 10배 가량 늘었다. 약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대중들의 심리인 이른바 'Underdog' 현상이다.
반면 바른정당을 탈당한 13명의 의원들은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다. 기고만장해진 한국당내에서는 저들을 선별해 받아들이겠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중들의 시선은 그보다 더 매몰차다. 정치적 도의와 신의는 커녕 염치와 체면마저 저버린 그들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철학과 소신, 원칙과 신념 없이 정치적 유불리만 쫓는 저질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과 냉소, 분노가 분출하고 있는 것일 터다.
승부는 이미 판가름이 난 것 같다. 바보가 아닌 이상 반세기가 넘도록 신물나게 봐왔던 구태 정치의 실체를 대중들이 몰라볼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반응을 보더라도 이 막장극의 승자는 명확해 보인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자고 하면 살 것이다'는 옛말 그대로다.
그렇다고 바른정당을 탈당한 13명의 의원들의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대실착을 범했지만, 적어도 이날 하루만큼은 그들이 대한민국 정치의 주인공이었다. 창당 이후 뜨지 못해 애간장 깨나 태웠던 그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날만큼은 달랐다.
주류 언론이 탈당 소식을 앞다퉈 대서특필했고, 온라인과 SNS에서는 그들의 과거 언행들이 회자되며 큰 화제가 됐다. 어디 이뿐인가. 포탈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10위 랭킹이 그들의 이름으로 도배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지금껏 그 어떤 정치 집단도 해내지 못한 신기원을 연 셈이다.
저들의 행위는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 눈 뜨고는 못볼 이 저질 정치극은 역설적으로 정치 개혁과 혁신을 위한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태 정치의 사례로 이보다 더 좋은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렇다. 저들 13인의 이름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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