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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근혜 퇴진 6차 촛불집회, 민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 중앙일보


정치권은 흔들렸지만 국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외려 대통령의 꼼수 정치에 진저리가 난 시민들은 더 뜨겁게 광장에 모여 '박근혜 탄핵'과 '새누리당 해체'를 외쳐댔다. 3일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만 서울 170만명, 전국 232만명(주최측 추산)에 달한다. 이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의 100만명은 물론 역대 최고를 기록했던 지난달 26일의 5차 촛불집회 인원 190만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 압도적인 숫자는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가 시민들의 공감을 전혀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대통령 발 '외풍'에 동요한 건 민심의 준엄함을 읽지 못한 정치권이었을 뿐 정작 시민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민들의 즉각적인 퇴진 요구에도 대통령은 그동안 변명과 거짓말, 정치적 술수를 동원해 권력 유지에 골몰해 왔던 참이었다. 특히 탄핵을 모면하기 위해 대통령이 꺼내든 '꼼수'는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부추기는 동인이 됐다. 


이날 촛불집회는 단지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집회의 분위기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1~5차 촛불집회가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 등이 결합된 축제의 무대였다면, 이날의 집회는 무거운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보다 엄숙하게 진행됐다. 시민들의 구호도 '박근혜 구속', '복종은 끝났다' 등 한층 격해지고 강렬해졌다. 게다가 강력한 저항과 투쟁을 상징하는 횃불마저 등장했다. 이는 대규모 평화시위 기조가 향후 정치권의 태도에 따라서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전조다.

당초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에 담긴 퇴진 의사를 구실로 '4월퇴진, 6월 조기대선'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이를 토대로 야당과 정치적 협상을 통해 사태를 수습한다는 복안이었다. 친박계가 주도한 이 전략은 탄핵에 앞장서던 비박계의 약점을 예리하게 파고들며 일견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애시당초 피는 속을 수 없는 법, 비박계는 친박계가 날린 '독수'에 급속히 흔들렸고 급기야 야당과의 탄핵 공조를 깨며 예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이는 시민들의 분노의 강도와 밀도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오판이었다. 새누리당은, 친박 비박 가릴 것 없이, 대통령이 '질서있는 퇴진'의 모양새만 갖추면 시민들의 분노가 가라앉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단지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으로 이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그들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하며 합리적이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헌법을 위반하고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의 퇴진이 전부가 아니다. 시민들의 요구는 대통령의 퇴진 이후 대한민국을 어떻게 새롭게 건설할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조리와 모순, 사회적 불평등과 불합리 등을 어떻게 해소하고 치유할 것인가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퇴진은 이 시대적 과제를 위한 출발이지 끝이 아니다. 시민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박근혜' 이후다.


ⓒ오마이뉴스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과 함께 '새누리당 해체'를 요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대통령과 함께 이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공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사자인 새누리당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혹은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이 의회에 권력을 위임한 것은 행정부를 일방적 독주를 견제하라는 취지에서다. 시민들을 위한 법을 만들고 제도를 정비하고, 그것들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라고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어땠을까. 그들은 재벌·기득권을 위한 법을 만들고 제도는 완화하면서도 노동자와 서민, 사회적 약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노동개혁법안 추진에 사활을 걸었다.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후퇴시키는 각종 법안과 정책들을 양산해온 것도 그들이다. 대국민 약속을 하루 아침에 뒤집어 엎는가 하면 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급기야 헌법 가치와 법치 수호를 최우선해야 할 대통령의 헌법 파괴 행위를 방조하고 방기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것만으로도 새누리당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새누리당은 피의자인 대통령을 비호하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호위무사인 '친박'은 국민의 뒷통수를 때리는 권모술수로 '대통령 구명운동'에 앞장서고 있고, 초록은 동색인 '비박'은 박쥐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주권자를 능멸하는 새누리당의 행태에 시민들이 분노가 치솟는 건 당연지사다. 시민들은 이번 6차 촛불집회에서 여의도에 있는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새누리당 해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미 탄핵을 반대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던 터였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휴대전화에 항의문자가 쇄도하는가 하면, 의원실을 향해 달걀 세례를 퍼붓는 시민도 있다.

어디 이뿐인가. 새누리당을 비난하는 벽서가 나붙는가 하면, 시민들이 직접 국회의원들에게 탄핵을 촉구하고 의원들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도 개설됐다. 이 사이트에 하루 만에 쏟아진 탄핵 청원만도 40만 건이 넘는다.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과 이런 대통령을 비호하고 방조하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새누리당에 대한 분노가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6차 촛불시위에 횃불이 등장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그동안 촛불집회의 양상은 '평화·비폭력·질서'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수백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에 연행자가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은 시민들이 무서울 정도로 침착함과 냉정함, 그리고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이에 외신 역시 대한민국 사회의 역동성과 질서정연함을 극찬하고 있다.

문제는 이후다.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역주행이 계속될 경우 집회 상황은 바뀔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본디 시민사회의 역동성은 예측과 통제가 어려운 폭발력을 동시에 갖고 있는 탓이다. 이 변동성은 대규모 촛불집회의 양날의 검이다. 그런 면에서 횃불은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보내는 시민들의 강력한 경고인 셈이다. 참을만큼 참았으니 말로 할 때 이제 그만 시민들의 요구를 들으라는 최후통첩인 것이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어떤 방법으로도 시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통령의 1~3차 대국민 기만 담화와 새누리당이 들고나온 '질서있는 퇴진' 시나리오는 시민들의 요구에는 발 끝만큼도 미치지 못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시민들의 요구는 '박근혜 퇴진'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대통령의 퇴진'과 '새누리당의 해체'는 단지 대한민국의 재건을 위한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다.

민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시민들의 요구를 즉각 수용해야 한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지금처럼 계속해서 시민들의 요구를 짓밟는다면 그들 앞에 기다리는 건 처절한 응징과 혹독한 심판밖에는 없다. 역사에 예외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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