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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15일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 변호사는 이 자리에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박 대통령과 관련해 아주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헌법상 현직 대통령은 내란, 외환죄 이외에는 불소추 특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서면조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사시기 역시 검찰이 모든 의혹을 충분히 조사해서 사실관계를 확정한 후가 합리적이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변호사의 발언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가 박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이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펼쳐질 법리적 공방에서 그의 발언은 곧 박 대통령의 주장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 변호사의 발언은 박 대통령의 국민 기만과 우롱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 4일 2차 대국민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철저한 진상과 책임규명을 약속하며 스스로도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유 변호사의 기자회견으로 박 대통령의 담화가 새빨간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유 변호사의 발언과 '성실히'라는 어휘 사이에는 수십억 광년은 족히 되는 엄청난 괴리가 존재한다. 국민들의 억장이 또 다시 무너지는 이유다.
애시당초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박 대통령이 아니었다.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에 대표적인 정치검찰이라 평가받는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을, 법률대리인에 자신과 친분이 많은 친박 원외 인사를 기용한 것만 봐도 이는 명확해진다. 박 대통령을 향해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올 기미가 보이자 그에 앞서 단단히 이중 보호막을 친 것이다. 그러면서도 국민 앞에선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도록 지시했다", "저 역시도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며 대국민 '쇼'를 펼치고 있었던 셈이다.
박 대통령의 기만극은 유 변호사의 기자회견 내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유 변호사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적법성 여부에 문제를 제기했다.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내세워 검찰조사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일 서울대 조국 등 형사법 교수 69명은 성명을 통해 "대통령이 다른 공범과 함께 범죄를 범한 경우, 다른 공범자는 대통령 재직 여부와 관계없이 수사와 소추가 가능하므로, 이들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대통령의 혐의가 밝혀질 때, 대통령에 대한 부분만 수사를 중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법치주의 기본원칙상 대통령이라 해도 대한민국 법 아래에 있다. 법 앞에 성역은 없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재직 중인 대통령이라 할 지라도 수사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특히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자 몸통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수사 없이는 대통령의 법률 위반에 대한 규명이 불가능한 만큼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수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는 한국헌법학회 회장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진박'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정 의원은 그의 저서 <헌법학원론>에서 "시간이 경과하면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우므로 대통령의 재직 중에 행해진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은 언제나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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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변호사가 서면조사의 필요성과 조사시기에 대해 언급한 것 역시 사안의 중대성으로 볼 때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 증거만으로도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의 몸통이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관건은 최씨가 헌법을 초월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도록 방조한 박 대통령이 이 과정에 어디까지 개입했느냐의 여부다. 현재 박 대통령에게 드리워진 혐의만 해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공무상기밀누설죄', '직권남용', '강요죄', '뇌물죄' 등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면조사를 운운하고 조사시기를 흘리는 것은 국민을 희롱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고려해달라는 장면에서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모멸감마저 느낀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자국 국민 수백명이 희생당하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행적이 논란이 되는 것부터가 비상식적인 일일 터다. 박 대통령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대면보고와 대책회의를 단 한차례도 하지 않았다는 점, 뒤늦게 중대본에 나타나 횡설수설했다는 점에 비춰본다면 경내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청와대의 해명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만약 박 대통령이 경내에 있었으면서 저렇게 행동했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유 변호사의 주장은 7시간 이야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켰던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행태와 맥을 같이 한다. 세월로 참사는 수백명의 국민들이 정부의 무능과 태만 속에 희생된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그 시각 경내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당시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사건수습과정과 맞물려 반드시 밝혀져야 하는 사안이다. 박 대통령이 국민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으로서의 헌법적 책임을 다했는지의 여부가 그 속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이토록 중요한 사안의 사실관계의 공개조차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의 7시간과 관련된 루머들이 저잣거리에 떠도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현재 희대의 국기문란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단순한 의혹제기의 수준을 넘어 박 대통령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이번 게이트와 관련된 인물들 중 최씨,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차은택씨 등이 줄줄이 구속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 등 박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알고 있는 핵심 인물들도 수사 중에 있다. 이번 사건의 몸통이라 불리는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의 예외가 될 수 없는 까닭이다.
박 대통령이 수사에 성실히 임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다수 국민들의 한결같은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유 변호사를 내세워 대통령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버렸다. 아직도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퇴진을 명령한 상황에서조차 대통령으로서의 권리와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운운하고 있으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권리와 지위만 누리겠다는 뻔뻔함에 치가 떨린다.
이제 그만 내려오라는 국민의 명령에도 박 대통령은 끝까지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초등학생들도 아는 역사의 진리를 이 나라의 대통령이 모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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