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목마'는 트로이 전쟁을 끝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의 목마다. 오랜 전쟁에도 꿈쩍하지 않던 트로이를
무너트리기 위해 그리스는 커다란 목마 속에 군인을 숨겨놓고 퇴각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리스가 물러가자 트로이는 전쟁에서 이겼다는
생각에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그러나 그날 밤 목마 속에 숨어있던 군인들은 성문을 열어 그리스군이 성
안으로 침투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마침내 트로이를 함락시킨다.
바른미래당 소속
이상돈·박주현·장정숙 의원의 거취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트로이 목마'를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국민의당이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으로 분화되면서 이 세 사람은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철학과 노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바른미래당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당법상 비례대표는 자진 탈당을 하게 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한다. 민평당이 안철수 전 대표에게 합당에 반대하는 비례대표 의원들의 출당을 요구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그 길 외에는 비례대표가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이들의 출당 요구에 "비례대표 의원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라며 단호히 반대해왔다. 국민의당을 선택한 국민의 뜻이 비례대표에 녹아있기 때문에 출당시킬 권리가 당에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반론도 거셌다. 정체성과 가치관 등이 현격하게 다른 바른정당과의 합당 자체가 국민의당을 원내 3당으로 만들어 준 총선 민의에
반하는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국민의당 창당 당시 안 전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도의원의 제명을 부탁한
사실이 알려지며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안 대표 역시 과거에 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의 제명을 부탁한 적이 있는 만큼 출당시킬 권리가 없다는 주장은 자가당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안팎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에 대한 출당을 끝내 거부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합당 이후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세 사람을 출당시켜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기도 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안 전 대표와 이견을 보이는 등 비례대표 의원들의 정치적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을 여러차례 피력해왔기 때문이었다.
이에 박지원 민평당 의원은 지난 15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유 공동대표가 비례대표 3인을 출당시켜 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인터뷰를 하기까지 했다. 당시 박 의원은 "비례대표를 풀어줄 것처럼 얘기했지만 아직 말이 없다"는 김어준 공장장의 질문에, "정치인이 한번 말을 하면 지켜야 된다고 이런 얘기를 그제 또 했다"면서 "유승민 대표는 훌륭한 정치인이다. 풀어주니까"라고 말해 기대감을 한껏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창당 이후 유 공동대표가 입장을 바꿔 출당 반대로 돌아서면서 비례대표 3인에 대한 출당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유 공동대표로서는 안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 인사들의 비례대표 출당 반대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회 의사결정을 둘러싼 치열한 의석수 싸움도 유 공동대표의 마음을 바꾸는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바른미래당과 민평당이 서로 경쟁하듯 캐스팅보트를 자처하면서 국회 주도권 싸움이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 오마이뉴스
국민의당이 바른미래당과 민평당으로 나눠지면서 국회 의석수를 둘러싼 치열한 기싸움이 펼쳐지고 있는 상태다. 현재 범여권으로 묶을 수 있는 의석수는 민주당 121석, 민평당 14석, 정의당 6석, 민중당 1석, 정세균 국회의장 1석 등 최대 143석이다. 반면 범야권은 자유한국당 116석, 바른미래당 30석, 애국당 1석, 무소속 이정현 의원 1석까지 모두 148석(법정 구속된 이우현·최경환 의원 포함)에 이른다. 표면적으로 범야권이 국회 주도권을 갖게 되는 형국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국회 의사결정과 관련해 굉장히 복잡한 경우의 수가 전개되고 있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비례대표 3인을 범여권으로 묶을 경우 전세는 뒤바뀌게 된다. 국민의당 소속이었다가 무소속으로 남은
손금주·이용호 의원의 선택도 고려해야 한다.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한국당 권석창·이군현 의원의 대법원 판결도 지켜봐야 할
변수다. 여기에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여야 의원들까지 범주에 넣을 경우 경우의 수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회 주도권을
둘러싼 복잡난해한 정치지형이 비례대표 3인의 출당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비례대표 3인은 현재 바른미래당에 노골적인 '반기'를 표출하고 있다. 출당이 가로막히자 보란듯이 막나가고(?) 있는 중이다. 19일에는 "바른미래당 교섭단체 참여를 거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데 이어, 20일에는 이들이 민평당의 요직을 맡기로 했다는 충격적인 언론보도까지 나왔다. 이날 <JTBC 뉴스>는 이들 세 사람이 각각 당 정책연구원장(이상돈 의원)과 지방선거대책본부장(박주현·장정숙 의원)을 맡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정당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황당한 장면이 연출되는 셈이 된다.
조직과 세,
인물과 지역 기반 등 많은 면에서 열세에 놓여있는 바른미래당이 지방선거에서 약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이 한마음 한뜻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은 내부 갈등에 취약한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출발했다. 이질적 노선과 철학, 가치관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합의의 과정이 생략된 채 급박하게 합당이 이루어진 탓이다. 정강정책, 외교·안보 등에서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그로부터 기인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비례대표를 둘러싼 극심한 불협화음으로 분란의 가능성까지 농후해졌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정당의 시스템 자체가 심각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박주선 공동대표
등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세 사람을 강하게 비판하며 압박하고 있지만, 이미 틀어질대로 틀어진 관계가 봉합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해
보인다. 당 일각에서 이들을 출당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당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실제 이들 비례대표 3인은 자신들을 출당시켜주지 않는 당을 향해 대놓고 '무력시위'를 함으로써 일각의 우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있다. 통합의 컨벤션 효과를 통해 지지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는 바른미래당으로는 난감하기가 이를 데가 없게 된 것이다. 이들의 존재가 당의 화합과 결속을 가로 막고,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을 향한 비례대표 3인의 내부 총질을 이미 시작된 상태다. 바른미래당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견고했던 트로이성을 한순간에 무너트린 '트로이 목마'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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