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2일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통보해오자, 이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범여권은 일제히 환영의 입장을 표명한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보수야당은 특히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사건 등을 주도했다고 의심받고 있는 김영철 부위원장의 과거 이력을 문제삼으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천안함 폭침 이후 당시 이명박 정부 주도로 꾸려진 진상조사단과 보수언론은 사건을 주도한 배후 인물로 당시 정찰총국장이었던 김영철을 지목해온 터였다.
김영철이 천안암 폭침을 주도한 핵심인물이라는 직접적 증거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이와 관련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천안함 도발 당시 국방부가 구체적인 사람에 대한 책임소재에 대해 구체적인 확인을 하기 어렵다고 답변한 바 있다"며 김영철 '폭침 주도설'에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러나 보수야당은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을 주도했다고 확신하는 모양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해 김영철의 방남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강력 촉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김영철은 당시 대남 정찰총국 책임자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과 국내 목함지뢰 도발을 주도했다"며 "김영철이 한국땅을 밟는다면 긴급체포하거나 사살시킬 대상"이라고 날을 세웠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 역시 김영철의 방남을 거세게 비난했다. 그는 이날 논평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육해공 대북제재를 무력화하고 김여정에게 굽실거리며 3대 세습독재왕조 정통성까지 떠받들어줬다"면서 "이제는 천안함 폭침의 주범인 김영철을 맞이하겠다고 나섰는데 김영철은 감히 대한민국 땅을 밟을 수 없다"고 맹렬히 성토했다.
바른미래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근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굳이 대북제재를 훼손하면서까지 김영철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 방문을 수용하는 정부의 태도는 극히 우려스럽기만 하다"고 지적한 뒤,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을 진전시켜 나가고자 한다면 정부는 제재 대상인 김영철이 아닌 평화 정착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대표단을 선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바른 수순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영철 방남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이 이처럼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 범여권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의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보수야당은 천안함 폭침 등의 배후인물로 지목받고 있는 김영철의 방남을 결코 묵인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정파적 입장에 따라 대북정책과 기조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김영철의 방남이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켠에서는 보수야당의 과거 행태가 드러나며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4년 10월 15일 천안함 폭침을 주도했다던 김영철이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군사회담의 북측 협상대표였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 오마이뉴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22일 보수야당의 김영철 방남 반대 논리를 반박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김 대변인은 논평에서 "김영철은 지난 2014년 10월 남북군사회담에 북측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박근혜 시절에는 만나도 되는 사람을 지금은 만날 수 없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당시 새누리당(현 한국당) 권은희 대변인의 논평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권 대변인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을 즈음해 열린 남북장성급 군사회담과 관련한 논평에서 "비록 현재 남북대화가 대화와 도발의 국면을 오가는 상황이긴 하지만 대화의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매우 바람직하다. 남북대화가 앞으로도 꾸준히 이뤄지길 기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김영철 방남을 결사 반대하는 보수야당의 행태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천안함 폭침과 관련한 보수야당의 이중적 행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2011년 공개된 이명박 정부의 대북비밀 접촉이야말로 그들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비밀 접촉을 가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천안함 폭침과 관련해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을 만들어달라"고 애걸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거다. 당시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위해 돈봉투까지 건넸다고 폭로하며 온 사회를 깜짝 놀래킨 바 있다.
당시 비밀 접촉이 남남갈등을 증폭시켜 대북정책 기조를 흔들어보려는 북한의 전략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해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폭격 이후 대북 강경기조를 천명하던 이명박 정부가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인 어설픈 외교는 국내 뿐 아니라 외신에서도 비중있게 보도될 만큼 국제적 망신을 샀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폭침 등에 북한 북한의 진성성 있는 사과 없이는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혀온 터라 논란은 한동안 계속됐다.
보수야당의 행태가 대개 이렇다. 어제 오늘이 다르고, 앞뒤 역시 맞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보수야당의 김영철 방남 반대는 결국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끝없이 지속되고 있는 '내로남불'의 재판이나 다름이 없다.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북한 구애에 전력을 다했으면서 정작 평창동계올림픽은 '평양올림픽'이라 공세를 펴고 있는 것 같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세웠으면서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에 벌떼처럼 달려드는 것과 같이, 민주당의 사드 방중 외교를 매국행위라 맹비난하더니 미국에 핵 구걸단을 보낸 것과 같이, 언론의 공정성을 무너트린 장본인이면서 공영방송 정상화 움직임에 거품을 무는 것 같이 말이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가 의문시되던 상황이었음을 기억한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올림픽은 고사하고 일각에서는 전쟁 가능성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올림픽을 기화로 극적으로 화해 무드가 형성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북한은 개막식에 김영남과 김여정 등 최고위급 인사를 파견함으로써 대화와 소통의 간절한 의지를 드러냈고,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나타냈다. 북한은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서도 최대의 성의와 양보를 보이면서 모처럼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외신들도 이와 같은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에 주목하며 평창올림픽이 남북 대화와 화해의 물꼬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김영철 방문도 이와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은 개막식에 이어 폐막식에도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함으로써 올림픽 이후에도 남북 대화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피력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발판으로 북미대화까지 이끌어가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우리 정부 역시 남북 화해 분위기를 통해 상호존중과 호혜의 정신을 되살리고 한반도 평화정착에 다다르는 역사적 전기를 마련해야 마땅할 터다. 이번 기회가 남북 모두에게 있어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변곡점인 것이다.
그러나 유독 보수야당과 보수언론만 딴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올림픽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특유의 색깔론과 억지 주장으로 물을 흐려 놓더니 끝까지 분탕질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그것도 앞뒤 말이 전혀 맞지 않는 황당한 논리를 펴면서 말이다.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할 뿐 정치적으로 풀어볼 생각은 아예 없는 모양이다. 국익보다, 남북 평화보다 당리당략이 더 중요해 보이는 저들의 후안무치한 자가당착이 그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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