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
저명한 대학교수이자 다양한 강연 활동으로 사회적 명망이 높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건 지난 2011년 무렵이었다. 그해 10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 전 대표는 정치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50%에 가까운 지지를 얻으며 서울시장 후보 1순위로 떠오르게 된다.
안 전 대표는 정치개혁과 쇄신을 이끌 새로운 대안이자 강력한 대체제로 대중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명박 정권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국정운영, 기성정치권과 정치인들의 구태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대중들은 안 전 대표가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를 희망했다. 그런 안 전 대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 건 당시 지지율이 5%도 안 되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자리를 양보하면서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양보'를 통해 안 전 대표는 대번에 대선후보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2012년 대한민국을 폭풍처럼 휘감았던 '안철수 현상'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시작됐다. 기성정치에 염증이 나있던 대중들에게 안 전 대표는 낡은 정치를 혁신할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안 전 대표는 '새정치'를 앞세워 전국구 정치스타로 발돋음하게 된다.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던 대중의 염원은 신드롬에 가까운 광풍을 불러일으켰고 2012년 대선 정국을 요동치게 만든다. 닳고 닳은 기성정치를 획기적으로 바꾸길 원하는 대중들의 간절한 열망이 안 전 대표에게 투영되어 봇물처럼 터져나온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안 전 대표의 정치실험이 성공을 거두려면 무엇보다 기성정치와의 차별성을 부각시켰어야 했다. 새 것의 효용가치는 전적으로 기존의 것보다 얼마나 더 좋은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안 전 대표는 그렇게 하질 못했다. 안철수 현상의 출발점이었던 새정치의 실체는 지극히 모호했고 추상적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변색되어 갔고 '기성정치화'돼 갔다.
안철수 현상이 새로운 정치의 구현을 기대하는 대중의 열망으로 탄생한 이상 기성정치의 답습은 곧 처절한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중이 원했던 건 기성정치의 구태를 극복하는 대안정당이지 기성정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201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성정치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거대양당 체제를 비난하는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 대중의 정치 혐오와 불신에 편승해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애써왔을 뿐이다. 정치적 철학과 노선이 시류에 따라 바뀌기도 했다. 애초 중도진보에서 출발한 안 전 대표의 정치노선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우클릭해 가더니 바른미래당 창당으로 확실하게 보수로 돌아섰다. 한때 중도진보 진영의 유력 정치인이었던 그는 이제 중도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자리이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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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전 대표의 정치노선 변경은 대선을 염두해 둔 계산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진보진영으로부터의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해지자 보수표를 의식해 외연확장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이다. 안 전 대표가 갑작스럽게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추진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 당 대표로 선출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의 입장을 바꾸고 통합에 나서 그 배경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동서화합과 외연확대의 당위만으로는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채 졸속적으로 이루어진 통합을 온전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 바른미래당 창당을 두고 지방선거를 앞둔 이합집산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안 전 대표는 정치에 입문한 이후 탈당과 창당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2012년 대선 이후 '안철수 신당'을 창당하려 했다가 여의치 않자 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고, 2016년 총선을 앞두고는 국민의당을 전격 창당했다. 그리고 지방선거가 열리는 2018년에는 바른미래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 정치권의 화학적 결합. 이 역시 그동안 기성정치에서 숱하게 봐왔던 장면이다.
바른미래당 창당 이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현재 휴식기를 갖고 있다. 창당의 또 다른 한 축인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박주선 의원과 함께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로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그러나 안 전 대표의 숨고르기가 오래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정치권에서는 안 전 대표가 지방선거에서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서울시장 출마는 그 중 하나로 거론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양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바람을 불어넣어 줄 인물이 절실한 데다가,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 안 전 대표만한 인물이 또 없기 때문이다. 박주선 공동대표는14일 MBC라디오 '양지열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현재로선 가능성이 50%는 넘었다"며 안 전 대표의 출마에 무게를 실었다. 안 전 대표 역시 당과 당원이 원하면 출마하겠다고 밝혀온 만큼 출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문제는 당선 가능성이다. 당안팎에서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솔솔' 풍겨나오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새해를 즈음해 언론사가 내놓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 전 대표는 3선에 도전하는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 큰 격차로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안 전 대표는 출마의사를 접은 유 공동대표는 물론이고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게도 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만드는 초라한 결과다.
바른미래당 창당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진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김치국부터 마시는 겪'이라며, 설사 출마한다 해도 "구청장도 되기 어려울 것"이라 혹평한 바 있다. 동지에서 '견원지간'이 돼 버린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감안한다 해도 허투로 흘려들을 수 없는 뼈있는 일침이다.
2018년의 안 전 대표와, 2011년 무렵의 안 전 대표 사이에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안철수 현상'이라고 회자될 정도로 어마무시했던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본인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있다. 당시와 현재의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을 단순비교 하더라도 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그 기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안철수'에 환호하고 열광하던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그리고 '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서울시장 출마가, 부산시장 출마가, 선대본부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인지도 모른다. '안철수'의 정치적 미래가 바로 여기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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