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사퇴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엮어 전방위적인 대여공세에 나서고 있습니다. 두 사건을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헌정농단 사건'으로 규정하며 총공세를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당은 17일 '대한민국 헌정수호 자유한국당 투쟁본부' 발대식을 개최하고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와 특검 수용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입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이날 오후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한국당 중앙위원회 한마음 필승대회에서 "이 문제는 우리 당이 국회 문을 걸고 밝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지 않으면 4월 임시국회를 열지 않겠다는 것으로, 정치공세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입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 역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독단과 전횡,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으로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는 문 대통령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며 문재인 대통령을 정조준한 것입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국민과 국회를 무시하는 관제개헌으로 대한민국 공동체의 헌법적 이념과 가치 질서를 부정하고 헌정 질서마저 혼란하게 하고 있다"며 "한국당은 이대로 좌시할 수 없다. 유린당하는 대한민국 헌정을 이대로 두고볼 수 없다. 분연히 일어나 투쟁을 선언한다"고 투쟁의지를 불태웠습니다.
한국당은 이날 오후에는 '전 금융감독원장 김기식의 뇌물수수, 업무상 횡령 등 범죄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과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 및 김경수 의원 등 연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 오마이뉴스
일단 국면은 한국당에게 유리해 보입니다. 정부여당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김기식 전 원장이 낙마한 것은 청와대가 자초한 측면이 강합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검증은 엄격하고 철두철미하게 이루어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관행이라는 이유로 피감기관이 지원한 국회의원의 해외출장 문제에 안이하게 대처했습니다. 선관위가 위법이라고 유권 해석을 내린 기부금 문제 역시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인사검증을 담당했던 조국 민정수석은 물론이고 최종인사권자인 문 대통령 역시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김기식 전 원장의 낙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 기준이 철저하게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김기식 전 원장이 국민의 인사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야당의 정치공세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부분을 집중 공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김기식 전 원장 낙마에 야당이 마냥 기뻐하기에는 여론의 조짐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국회의원에게도 김기식 원장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솟구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격하고 깐깐해진 고위공직 인사 기준을 행정부뿐만이 아니라 국회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문제 제기입니다.
김기식 전 원장이 사퇴한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선관위의 위법 사항 내용에 따른 국회의원 전원 위법 사실 여부 전수 조사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해당 청원은 게시된 지 만 하루 만에 무려 19만명이 넘는 국민이 동참할만큼 뜨거운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피감기관 예산에 의한 국회의원 해외출장 문제가 비단 김기식 전 원장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은 앞서 청와대가 발표한 19대와 20대 국회의 사례만 보더라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청와대가 민주당의 도움을 받아 수천 개의 피감기관 중 16곳을 무작위로 뽑아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20대 국회에서 한국당 94차례, 민주당 65차례 등 총 167차례에 걸쳐 해외출장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습니다. 김기식 원장의 도덕성에 십자포화를 퍼부은 야당을 향해서도 여론이 싸늘한 이유입니다.
선관위가 정치자금법 위반이라 결론을 내린 기부금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역시 국회의원 전체에 대해 전수조사가 이뤄질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입니다. 이는 단지 기부금의 액수 문제로 끝날 사안이 아닙니다. 당장 정치후원금이 적법하게 쓰여졌는지, 임기 말 남은 후원금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등이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론 악화로 전수조사 요구가 빗발칠 경우 국회 전체가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이게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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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사건이 야당에게 마냥 호재인지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현재 야당은 이 사건을 국정원 댓글 사건에 비교하며 맹공을 펼치고 있는 중입니다. 사이버 상에서 여론을 조작했다는 점에서 일견 두 사건은 양상이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건은 본질적으로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여론을 조작한 주체가 각각 국가기관과 민간인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한국당 등 야당은 '드루킹' 사건을 국정원 댓글 사건과 동일시 시키며 헌정질서를 유린시킨 국기문란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정원·군 사이버사령부·기무사 등의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댓글조작과 민간인의 댓글조작 행위를 동치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날개가 있으므로 파리는 새라는 주장이나 하등 다를 바 없습니다. 견강부회에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한국당은 특검과 관련해서도 과거 국정원 사건 당시와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정원 사건에 대해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자 2014년 초 당시 야권과 범시민사회는 특검을 통해 의혹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야권의 요구는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한국당)의 결사 반대에 막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2014년 2월 10일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특검이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면서 야권의 특검 요구를 반대했습니다. 심지어 황우여 대표는 특검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야권의 정치공세"라며 "사법부 흔들기를 멈추고 민생과 경제에 보탬이 되는 2월 국회를 성공적으로 마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원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 도입에는 한사코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한국당은, 그러나 민간인에 의한 댓글조작 의혹에는 특검을 해야 한다며 전혀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댓글조작의 주체와 죄질의 정도, 사안의 중대성 등을 감안하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중적 태도입니다.
당시 새누리당이 내세운 논리는 지금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한국당의 특검 주장은 검찰과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을 압박하기 위한 지나친 정치공세라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6월 개헌, 국민투표법 개정, 청년·지역 살리기 추경 등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사안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역시 1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5월에는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상황이 숨가쁘게 펼쳐지고 있는 막중한 시기입니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가 안보와 외교', '민생과 경제'에 보탬이 되는 4월 국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정국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여야는 벌써 몇 주째 대통령 개헌안 발의와 김기식 전 국정원장 논란, '드루킹' 사건 등으로 치열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야당은 이것이 전적으로 정부여당의 책임이라며 공세를 펴는 중입니다.
물론 야당의 주장도 나름의 일리는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개헌안은 발의하기 전에 국회와 조금더 허심탄회하게 대화에 나섰더라면, 청와대가 보다 꼼꼼하고 면밀하게 인사검증을 했더라면, 의혹을 살만한 처신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사이버 여론 조작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 힘썼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국정 난맥이 오롯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책임인지는 따져볼 일입니다. 주지한 것처럼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공약을 파기시킨 것은 한국당 등 보수야당입니다. 1년이 넘도록 개헌특위를 공회전시키며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책임 역시 야당에게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런가 하면 청와대가 발표한 것처럼 전·현직을 막론하고 피감기관 예산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야당 국회의원의 숫자도 상당합니다. 김기식 전 원장의 사퇴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정치자금법 위반 역시 전수조사가 이뤄질 경우 적지 않은 의원들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드루킹' 사건을 헌정유린이라고 주장하는 보수야당의 공세 또한 사건을 지나치게 '침소봉대' 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애초 댓글조작 의혹에 대한 수사의뢰를 민주당이 했다는 점에서 야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무엇보다 국정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무력화해 온 보수야당이 특검을 운운하는 것부터가 자가당착이요 적반하장이나 다름 없습니다.
천막농성에 이어 장외투쟁까지 고려하고 있는 한국당과 점점 비판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바른미래당을 향해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쉽게 말해 보수야당은 뭐가 그리 떳떳하냐는 반문입니다. 물 만난 고기마냥 공세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는 그들에게 과연 비판의 자격이 있느냐는 지적입니다. 국민들은 냉정하게 따져묻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정말 떳떳하고 당당합니까? 보수야당이 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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