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소속 당원의 온라인 여론 조작 의혹으로 정국이 시끄럽습니다. 경찰은 14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문재인 정부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고 추천수를 조작한 김모 씨 등 3명을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3명은 한꺼번에 여러 댓글이나 추천을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메크로'를 이용, 포털사이트에 문재인 정부 비판 댓글을 달고 다량의 공감 버튼을 클릭하는 방식으로 여론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문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것은 이들이 민주당에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입니다. 이들은 경찰에 보수세력이 비방 댓글을 단 것처럼 꾸미기 위해 댓글 조작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모 씨가 김경수 민주당 의원과 보안 메신저 프로그램인 '텔레그램'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까지 알려져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입니다.
당장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강력한 비난 성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드디어 여론조작, 여론장악의 실체가 드러났다"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민주당 현역의원까지 관여된 댓글조작 사건의 뿌리까지 밝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전희경 대변인은 이어 "문재인 정권의 출범에는 인터넷 댓글을 필두로 한 포털의 영향력이 지대했다"고 꼬집으며 "그 실체가 사실은 추악한 셀프 여론조작을 통한 여론장악이었다면 정권의 도덕성은 회복 불가능한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맹비난했습니다.
바른미래당 역시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권성주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전 정권들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공격은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 댓글 공작사건에서 시작됐다"며 "이전 정권에 대한 공격을 통해 일어선 문재인 정부의 존립기반이 소멸하고 있다"고 각을 세웠습니다.
민주평화당 역시 비판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장정숙 평화당 대변인은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며 "민주당 소속 현역의원까지 연루돼 있다고 하니 수사 기관은 다른 사례가 없는지 철저하게 밝혀내고 엄벌에 처해 다시는 정치권에 이같은 작태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당시 횡행했던 온라인 여론조작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행해졌다는 점에서, 그것도 민주당 소속 당원에 의해 벌어졌다는 점에서 적지않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과정에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의원이 관여돼 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어 파문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민주당 당원에 의한 인터넷 여론조작 의혹은 자세히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먼저 범행의 동기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보수세력이 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댓글을 조작했다고 실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입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70% 가까이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당 역시 50% 안팎의 고공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이 이처럼 안정적으로 고르게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여론을 조작할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보수의 민낯은 이미 드러날대로 드러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층을 가장해 여론을 조작하려 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설령 보수세력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해도 그것이 정부여당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번 사건을 정권 차원의 문제로 비화시키고 있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행태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김모 씨는 2016년부터 매달 1000원의 당비를 납부하고 있는 민주당의 권리당원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야당은 이 사실을 집중 부각시키며 전선을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로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사설 국정원이군요. 보수 욕먹이려고 보수로 위장한 걸 보면 국정원 빰칩니다. 댓글 배후 조종은 민주당 국회의원, 행동부대는 민주당 핵심당원. 국정원 댓글 사건에 민주당은 국정원 해체하라고 그랬죠? 이쯤되면 민주당 해체선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특검가야됩니다. 집권당의 범죄니까요"라고 적으며 '민주당 해체'를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사건의 배후에 민주당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야당의 공세는 근거가 있는 것일까요? 민주당의 권리당원 숫자만 해도 2017년 11월 기준으로 150만명이 넘습니다. 경찰에 적발된 김모 씨 등은 민주당의 권리당원 150만명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매달 1000원의 당비를 납부해 온 김모 씨가 민주당의 핵심당원이라는 설정도 억지스럽습니다.
김모 씨 등의 범행 동기와 배후 등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야당과 보수언론이 전방위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김경수 의원과의 연관성도 어디까지나 의혹에 불과합니다. 이와 관련해 김경수 의원은 14일 오후 9시 30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의혹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김경수 의원은 "사건과 무관한 저에 대해 허위 내용이 흘러 나오고 충분한 확인 없이 보도가 되는 것은 대단히 악의적인 명예훼손"이라며 "특히 수백 건의 문자를 주고받았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른 악의적 보도이므로 강력하게 법적으로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인 사건의 경위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김모 씨가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돕겠다고 연락해 온 다수 인물 중 한 사람이며, 대선 이후 인사와 관련해 무리한 청탁을 부탁해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김모 씨가 이 때문에 배신감을 느껴 '반 문재인 정부'로 돌아섰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경수 의원은 "(김모 씨가) 매크로 관련 불법행위에 관련돼 있다는 것은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접했다"면서 "그런데도 마치 제가 그 사건의 배후에라도 있는 것처럼 허위 사실이 유통되고 무책임하게 확인도 없이 실명으로 보도까지 나간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관련 의혹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입니다.
이처럼 이번 사건은 석연찮은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범행 동기부터 사건의 배후에 이르기까지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사건의 진상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야당과 보수언론은 김경수 의원이 이번 사건의 배후라고 확신하는 분위기입니다. 나아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 댓글 조작 의혹을 경찰에 처음 수사 의뢰한 당사자가 민주당이었다는 점에서 야당과 보수언론의 문제 제기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아쉬울 것이 별로 없는 민주당이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건의 본질과 관련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포털사이트에서 정부 비방 댓글을 조작한 사람은 이들 3명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 중앙일보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14일 <JTBC 뉴스>에 출연해 아주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습니다. 최민희 의원은 "민주당이 지난 평창올림픽 기간 중에 가짜 뉴스 대책단을 만들어서 신고를 2만 건 정도 받았다. 그것을 추려서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그리고 고발한 것 중에 3명 정도가 민주당원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고발당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 중에 3명 정도가 민주당원이었다. 이건 되게 특이한 사실"이라고 의아해 했습니다.
최민희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포털사이트 댓글 공작은 광범위하고 폭넓게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경찰에 붙잡힌 김모 씨 등은 그들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누가 얼마나 댓글 조작에 개입한 것인지 구체적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을 한쪽으로 몰고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침소봉대'(針小棒大)에 불과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건을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의 댓글 공작과 같은 선상에서 취급하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정략적 의도라고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전모가 명확히 밝혀진 국정원·군 사이버사·기무사 등 국가기관의 조직적 댓글 공작과 아직 실체조차 드러나지 않은 이번 사건은 비교 대상 자체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여당 시절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개입한 '국정원 사건'의 실체 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전력이 있습니다. 2012년 대선 당시에는 박근혜 후보를 위해 불법 선거운동을 해오던 이른바 '십알단'의 오피스텔 임차비용을 새누리당 선대위 관계자가 부담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누가 누구를 비난할 상황이 아닌 것입니다.
정의당은 정치권의 치열한 공방을 예견한 듯이 "이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삼을 것이 아니라 댓글 조작을 제도적으로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여야가 정쟁을 이어가기 보다는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입니다.
한국당 등 보수야당이 새겨들어야 할 고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적발된 3인이 민주당이 경찰에 고발을 의뢰한 사례 중 극히 일부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수야당이 정부여당을 향해 날린 부메랑이 어쩌면 그들 자신에게 되돌아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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