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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의원 전수조사 반대? 도둑이 제 발 저린 한국당

결과적으로, 청와대의 '김기식 구하기'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처절하고 처참한 실패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한지 보름만에 역대 최단기 퇴진이라는 불명예를 기록한 채 씁쓸히 퇴장했다. 

청와대는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청와대가 김기식 전 원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그가 문재인 정부의 중요 국정과제 중 하나인 금융개혁을 추진할 최적임자였다는 사실과 논란이 된 의혹들이 국회의 묵시적 관행이었다는 사실이다. 

김기식 전 원장은 참여연대 시절부터 다져진 정책 능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19대 국회 당시 정무위원회에서 맹활약을 했다. 크라우드펀딩법, 대부업법, 공익신고자 보호법,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김영란법 등 김기식 전 원장의 손을 거쳐간 굵직굵직힌 법안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금융계의 저승사자'라 불렀다. 

청와대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채용비리, 부당대출, 횡령·배임, 대주주 부당지원, 분식회계, 신용정보 무단 열람 등 각종 불공정 관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금융계를 쇄신할 적임자로 김기식 전 원장만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청와대는 참여연대 시절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재벌과 금융분야에 대한 개혁성을 높이 평가했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19대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사실이 알려지며 상황이 급반전했다. 누구보다 청렴하고 개혁적인 인물로 알려진 그였기에 외유성 출장 의혹은 김기식 전 원장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언론 역시 피감기관 예산에 의한 외유성 해외출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김기식 전 원장의 과거 국회 발언을 보도하며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의혹들도 불거져 나왔다. 김기식 전 원장의 주도로 결성된 '더미래 연구소'와 관련된 의혹이었다. 더미래 연구소가 고액 강연 프로그램을 운영한 사실이 드러나는가 하면, 일감 몰아주기 의혹도 제기됐다. 김기식 전 원장이 국회의원 임기 종료를 앞두고 정치후원금 5000만원을 셀프 기부한 것이 거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야당과 언론의 의혹 제기가 거세지자 청와대는 고심 끝에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김기식 전 원장 의혹과 관련해 제3의 기관인 선관위를 통해 공식적인 법률적 판단을 받아보자는 취지였다. 청와대는 선관위에 의뢰한 4가지 사안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하다고 판명이 날 경우 김기식 전 원장을 해임시키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청와대가 정면돌파를 강행한 것은 김기식 전 원장에게 제기된 의혹들이 당시 국회의 보편적 관행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청와대는 19·20대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사례를 공개하며 "김기식 금감원장이 업무를 이행하지 못할 정도로 도덕성이 훼손되었거나 일반적인 국회의원의 평균적 도덕감각을 밑돌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는 청와대가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인식했다는 방증이다.  

법률적인 부분도 충분한 내부 검토를 거쳤을 것으로 보인다. 기부금 의혹 역시 당시 선관위가 김기식 전 원장이 제출한 회계보고서를 적법하다고 판정했기 때문에 문제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선관위는 김기식 전 원장의 임기말 후원금에 대해 "종전의 범위를 현저히 초과하는 금액을 납부하는 것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유권해석을 의뢰한 청와대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선관위의 위법 결정은 청와대의 '김기식 구하기' 작전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리는 명징한 선언이었다. 야당의 격렬한 반발과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기식 전 원장을 밀어붙였던 청와대의 체면이 구겨진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기세가 오른 야당은 인사검증 책임자인 조국 민정수석의 사퇴 촉구는 물론이고 김기식 전 원장 의혹과 관련해 특검 법안까지 발의했다. 시쳇말로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젓겠다는 것. 


ⓒ 오마이뉴스


그러나 야당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가 싶던 국면은 또 다른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김기식 전 원장 사퇴 논란의 불똥이 국회로 옮겨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피감기관 예산에 의한 해외출장과 임기말 정치후원금 기부 행위 등이 김기식 전 원장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이 기회에 정치권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김기식 전 원장이 자진사퇴한 직후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선관위의 위법사항 내용에 따른 국회의원 전원 위법사실 여부 전수조사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국민들의 폭발적인 관심 속에 게시된 지 이틀 만에 20만명이 넘는 추천을 받았다. 청와대의 공식답변 기준을 초단기간에 훌쩍 넘어선 것이다. 

이는 김기식 전 원장에게 적용된 도덕적 기준을 국회의원 전체로 확대시켜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야당이 제기한 관련 의혹을 객관적으로 조명해보고 이참에 보다 엄격하고 공정한 제도적 기준을 마련해 보자는 취지다. 

이와 관련 정세균 국회의장은 16일 페이스북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피감기관 지원에 의한 국외출장의 적절성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독립적인 심사기구를 설치하고, 국회의원의 국외출장에 대한 백서제작을 통해 그 내용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여야 교섭단체간 협의를 거쳐 전수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전수조사에 대한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의식한 발언이다.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도 국회의원 전수조사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흥미로운 것은 김기식 전 원장의 낙마를 앞장서서 주도했던 한국당만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18일 JTBC 뉴스룸 '여야 원내대표 긴급토론회'에 출연해 "청와대가 나서서 국회의원 해외출장을 사찰하는 것은 삼권분립이 있는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전수조사의 필요성을 일축했다.


ⓒ 오마이뉴스


국회의원 전수조사가 청와대의 음모이며 입법부를 탄압하기 위한 불법 사찰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김기식 전 원장의 도덕성을 걸고 넘어졌으면서 정작 국회의원 전수조사는 회피하는 한국당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실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17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한국당의 반발을 "도둑놈이니까 사찰이라고 겁먹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수조사에 반대하는 한국당의 행태에 대해 "한국당이 사찰이라고, 전수조사하는 거. 주장을 하잖아요. 이건 자기들이 도둑놈이라는 고백이에요. 왜? 국민 세금으로 간 거 자기들이 스스로 까야죠. 국민 세금으로 가는 거 국민이 알고자 하는 건데. 국민이 사찰하나요, 국회의원을? (국회의원 전수조사는) 당연히 알 권리"라며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한국당을 향해 비난 여론이 솟구치고 있는 것도 결국은 같은 이치다. 전수조사의 목적은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제도를 개선하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국회의원의 위법 행위는 물론이고 제도적 허점까지 전면적으로 조사해 투명한 시스템을 정착시키자는 취지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김기식 전 원장을 향해서는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하더니 정작 전수조사 요구에는 손사래를 치고 있다.

한국당은 국회의원 전수조사가 '입법부 모독'이자 '불법 사찰', '삼권분립 부정'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정치권 모두가 전수조사에 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전혀 없다. 외려 한국당의 반대는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만든다. 한국당이 떳떳하다면 전수조사 요구를 마다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김기식 전 원장 논란이 '김기식' 한 사람에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터다. 전수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해지고 있는 이유다. 한국당은 자신들을 향한 따가운 눈총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비판을 받아서는 국민을 설득할 수도, 공감을 받을 수도 없다. 국회의원 전수조사 요구를 계속해서 거부한다면 역풍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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