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했던 '국민-바른 통합' 열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는 지난 9일과 10일 연쇄 회동을 갖고 통합 관련 논의를 이어갔다. 국민의당 통합 반대파의 거센 반발과 바른정당 김세연 의원·남경필 경기도지사의 탈당 등으로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통합 움직임에 고삐를 바짝 당긴 것이다.
양당 대표가 긴밀히 공조에 나서면서 통합 시계는 다시 빨라지는 모양새다. 실제 두 사람의 회동 이후 통합과 관련해 사뭇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안 대표는 11일 전당대회준비위원회 설치를 위한 당무위를 소집시켰다. 이는 중립파가 제안했던 중재안을 거부하고 전대를 감행하겠다는 뜻이다. 앞서 중립파는 안 대표의 2선 후퇴와 호남계 공동대표 임명을 골자로 하는 중재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파국을 막기 위한 중립파의 중재 작업은 결국 안 대표의 의지에 가로 막혀 무산됐다. 안 대표는 11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참여기업 연구소를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당대회부터 통합 절차나 시기는 늦추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통합 행보를 멈추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안 대표는 이날 당사에서 열린 신임 지역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서도 "전국 선거를 앞두고 외연확대에 실패한 정당은 예외 없이 모두 사라졌다. 왜 사라졌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우리는 그 길을 밟지 않을 것"이라며 통합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이어 당안팎의 우려를 의식한 듯 "우리가 중심을 분명히 하면서 외연확대를 통해 거듭나 정말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영속하는 정당이 되려는 것"이라고 통합의 당위를 설명하기도 했다. 누가 뭐라 하든, 통합의 길을 가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바른정당 역시 김세연 의원과 남경필 지사의 탈당으로 크게 휘청거렸던 당내 분위기를 추스리고 통합을 위한 내부 결속에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유 대표가 안 대표와 이틀 연속 회동에 나건 것도 이같은 당내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안 대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왔던 유 대표가 보다 적극적으로 통합 행보에 나서야 흔들리는 당심을 하나로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일부 인사들의 추가 탈당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 지속적으로 당내 인사들과 만나 설득 작업을 벌여온 터였다. 그 결과 탈당을 심각하게 고심 중이던 이학재 의원을 잔류시켰고, 부수적으로 두자리수 의석까지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이 의원까지 탈당했을 경우 통합의 내부 동력이 상실됨은 물론이고 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한 고비를 넘긴 셈이다.
유 대표는 통합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한결 유연해진 태도를 보였다. 11일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가 끝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 대표는 국민의당 전대 전 통합 선언 가능성에 대해 "안 대표와 상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그런가 하면 "통합 선언에 합의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합의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통합 결정과 시기는 국민의당 내부 사정에 달려 있다던 입장에서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는 두 대표 간 연쇄 회동 과정에서 통합 관련 논의가 상당 부분 진척이 있었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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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안철수·유승민 대표가 적극적인 통합 행보를 보이자 반대파들의 반발 수위도 한층 격렬해지고 있다. 통합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모임인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운동본부)는 앞서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보수 야합이라 규정하고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통합을 강행할 경우 '개혁신당'(가칭)을 창당하겠다고 천명한 운동본부는 통합의 분수령이 될 전대를 무산시키기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는 상태다.
운동본부 주관으로 11일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전남 당원 간담회장은 안 대표와 통합 찬성파를 비난하는 성토의 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날 의원들은 "안철수 없는 국민의당을 만들어 내자"(장병완 의원), "지난 몇개월 동안 안 대표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봐왔다"(조배숙 의원), "안 대표가 가려는 합당의 길은 반역사, 반민심, 반개혁, 반문재인의 적폐 연대일 뿐"(천정배 의원), "안 대표는 국민의당에 주저 앉고 남던지, 혼자 알아서 유 대표와 합당하든지 하라"(정동영 의원) 등의 비판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호남 의원들의 맏형 격인 박지원 의원도 거들고 나섰다. 그는 "산에 나무도 무리로 서 있고, 사막의 동물들도 무리끼리 간다. 더이상은 못 기다린다. 안 대표가 함께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과하고 햇볕정책의 가치관을 버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그게 싫으면 유승민과 함께 자유한국당으로 가면 된다. 우리는 개혁신당을 반드시 창건하겠다"며 안 대표를 향해 맹공을 펼쳤다.
통합을 둘러싼 당내 갈등과 불신이 이처럼 극을 향해 치닫는 양상이다. 안 대표가 중립파의 중재안을 거부하면서 국민의당 내홍이 봉합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설사 극적으로 타협이 이뤄진다 해도 감정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관측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바른정당과의 통합 찬반 갈등으로 국민의당의 분당 가능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세간의 관심은 개혁신당에 참여할 의원들의 숫자에 쏠리고 있다. 운동본부 측은 현재 반대 의견을 표명한 의원만 18명에 이르고 있고, 중립파 의원들의 상당수가 분당에 반대하는 호남지역 의원들인 만큼 원내교섭단체 구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는 통합을 강행할 경우 적어도 20명 가까운 의원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될 경우 통합의 효과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운동본부 측의 통합 반대 논리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정체성과 노선이 확연하게 다를 뿐더러,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가 될 것이 뻔한 통합을 왜 추진하느냐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안 대표는 '외연확대'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내세우고 있다. 제3당이 외연 확장에 실패하면 결국 소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 대표의 일관된 생각이다.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통합 문제로 촉발된 국민의당 내홍이 결국 '치킨 게임'으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가운데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주장들이 '강대강'으로 부딪히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안 대표가 주도하는 '통합열차'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분당열차' 역시 점점 가속이 붙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양보도, 타협도 없는 외나무 다리 혈투의 결말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터다.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는 국민의당 통합 사태를 보면서 비극을 예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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