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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황교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

ⓒ 오마이뉴스


자유한국당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언행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던 경험을 앞세워 보수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황 전 총리가 최근 '설화'로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어왔던 비정치인 출신의 한계라는 평가와 함께 황 전 총리의 정무 감각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 전 총리는 최근 '배박'(배신한 박근혜) 논란에 휩싸이며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황 전 총리에 대해 서운함을 토로하면서다.

유 변호사는 지난 7일 TV조선 '시사쇼 이것이 정치다'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된 2017년 3월 31일부터 수차례에 걸쳐 교도소 측에 대통령의 허리가 안 좋으니 책상과 의자를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다"며 "전직 대통령 예우를 해달라고 했지만,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 변호사는 "당시 황 대통령 권한대행이 보고를 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7월 21일 책상과 의자가 반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병사용 침대라도 넣어달라고 했고 그것은 교도소에서 조치가 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어 "대통령 수인번호는 이미 인터넷에 떠돈다"며 "자기를 법무부 장관으로, 그리고 국무총리로 발탁한 분이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데 수인번호를 모른다는 말에 모든 것이 함축돼 있다고 본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유 변호사의 인터뷰는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박 전 대통령이 황 전 총리의 면회 신청을 수차례나 거절한 사실이 드러난 데다, 황 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박 전 대통령을 예우해 주지 않은 일화가 알려지자 당내에서 '배박'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자칫 대세론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 황 전 총리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9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전격 방문했을 뿐 아니라 이 자리에서 아주 놀랄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기간 연장을 불허했던 내막에 관한 내용이었다.

황 전 총리는 이날 “대통령께서 어려움을 당하신 것을 보고 최대한 잘 도와드리자, 그렇게 했다”며 “(박영수 특검이 요구한) 수사기한 연장을 불허했다. 훨씬 큰 일들을 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당시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거부했던 이유가 박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서였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배박'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이 발언은, 그러나 또 다른 논란을 야기시켰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1일 논평을 통해 “공안검사와 법무부장관, 국무총리, 대통령의 권한대행까지 수행한 사람이, 적폐청산을 원하는 국민들의 법 감정과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이 오직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서였다니 그 참담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며 “황 전 총리가 박근혜 국정농단의 공범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특검 수사시간 불허가 박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는 건 스스로 권력 남용을 자인하는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방조 책임에도 자유롭지 못한 황 전 총리는 국민에게 석고대죄부터 해야 한다”고 강력 규탄했다.


ⓒ 오마이뉴스


소나기 피하려다 우박 맞은 꼴이다. 당시 특검은 70일이라는 짧은 수사 기간으로 인해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최순실 재산, 이화여대와 삼성과의 연관성, SK와 롯데 등 재벌들의 뇌물죄 수사는 아예 손도 대지 못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정농단 의혹과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도 밝혀내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수사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특검 연장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배경이다.

그러나 당시 황 전 총리는 장기간 수사로 특검 설치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었고, 사회 갈등과 대선에 끼칠 악영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특검 연장을 승인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특검 연장 거부가 박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서였다는 황 전 총리의 발언은 당시 발표가 거짓이었다는 의미로, 국민이 위임한 공적 권력을 사사로이 행사했다는 자기고백이나 마찬가지다. 

황 전 총리의 정무감각에 의문부호가 붙는 것 바로 그 때문이다. 발언의 진위 여부는 논외로 친다 해도, 자신의 발언이 초래할 정치적 파장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황 전 총리의 정무 능력은 논쟁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배박'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소환한 일화가 외려 부메랑이 됐기 때문이다. 정무 감각이 결여된 정치인의 부적절한 언행이 정치·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황 전 총리는 앞서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가진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잘못된 통계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 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제시한 ‘실업자 100만' 통계가 자신이 재임하는 기간 중에 벌어진 일로 드러나면서 체면을 구긴 것이다.

이와 관련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다음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100만 실업시대 때문에 나라가 망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그렇게 나라를 망가뜨린 사람입니다! 그 이야기를 한 거예요"라고 황 전 총리를 신랄히 꼬집기도 했다.

풍부한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보수진영의 희망으로 떠오른 황 전 총리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선후보 선도호 1위에 오르는 등 당 안팎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황교안 대세론'이 회자될만큼 한국당 당권 경쟁에서도 가장 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전망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특히 '셀프 디스' 해프닝과 '배박' 논란 과정에서 드러나듯 황 전 총리에게서 정무적 판단 능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정무 감각은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중요한 현안이나 정책 등과 관련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할 때 요구되는 능력이 바로 정무 감각이기 때문이다.

황 전 총리의 정치 여정이 녹록치 않아 보이는 이유일 터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황 전 총리의 정치 도전  성공 여부는 어쩌면 '정무 감각'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검증이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하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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