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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면 O, 아니라면 X를 들어주십시오"
19일 TV조선이 주최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자 토론회'. 황교안·오세훈·김진태(기호 순) 후보는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질문에 상반된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오 후보가 'O'를 들어 올린 반면 김·황 후보는 'X'표를 들어 올린 것.
특히 주목을 끌었던 것은 황 후보였다. 그동안 탄핵 관련 질문이 나올 때마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던 황 후보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 돈 한 푼 받은 거 입증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과연 탄핵이 타당한 것인가 이 부분에 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황 후보는 이어 "사법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와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객관적인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정치적 책임을 묻고 탄핵을 결정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사실상 탄핵 부정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2·27 전당대회에서 황 후보는 당권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 지난 2월 14일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의 말을 인용 "홍준표를 돕던 현역 의원들이 전부 보따리 싸서 황교안한테 가 버렸다"고 여의도 분위기를 전한 바 있다. 황 후보를 향한 줄서기가 이미 시작됐다는 의미로, 일각에서 제기되는 '황교안 대세론'의 실체를 가늠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런 면에서 당 대표가 유력한 황 후보의 탄핵 부정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탄핵 부정이 한국당 내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태극기 부대'의 일관된 주장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는 노선과 가치의 재정립을 통해 보수 재건에 나서겠다던 '김병준 비대위'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한국당의 과거 회귀를 보여주는 단면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당은 '태극기 부대의, 태극기 부대에 의한, 태극기 부대를 위한' 행태가 도드라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당이 지지층 강화를 위해 끌어안은 태극기 부대가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 가을이었다. 한국당 지도부가 보수통합 대상에 태극기 부대를 포함시킬 뜻을 밝히면서다.
그 무렵 전원책 조직강화특별위원은 "태극기부대는 극우가 아닌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그룹"이라며 "그분들을 보수세력에서 제외할 것이냐 한다면 그건 아니다"고 했고, 김용태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뭉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보수진영을 정당이라는 하나의 틀 속에 가두기보다 각 세력이 기본적인 철학을 공유하고 이슈에 따라 협력하는 네트워킹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태극기 부대가 통합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한국당에는 태극기 부대의 입당 러쉬가 일어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김 후보의 전당대회 출마가 가시화된 지난해 말 대한애국당 등으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 등에 따르면, 태극기 부대로 추정되는 8000여 명이 이 무렵 조직적으로 입당 원서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전체 선거인단(37만8000여명)의 2% 수준에 불과하지만 강한 결집력을 바탕으로 당내에 상당한 입김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당은 '5·18 망언'으로 도마 위에 오른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징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중앙윤리위원회를 소집했다. 당초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기계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윤리위는 태극기 부대가 거세게 반발하자 장소를 바꿔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징계 수위를 결정하지 못한 윤리위는 다음날 다시 모여 이종명 의원을 제명하고, 전당대회 후보 등록을 마친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해서는 징계를 유예하는 안을 확정·발표했다. 거센 역풍을 부른 징계안이 나온 배경에 태극기 부대의 이름이 거론된다. 윤리위가 태극기 세력의 눈치를 살피느라 반쪽 징계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거칠 것 없는 태극기 부대의 위세는 전당대회가 본격화되면서 더욱 극명해지고 있다. 지난 18일 열린 대구·경북 합동연설회는 태극기 부대의 고성과 야유, 폭언과 욕설 등으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김 위원장은 단상에 오르기 전부터 “빨갱이는 물러나라”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단상에 오른 이후에는 노골적인 야유에 인사말을 중단해야 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오 후보가 연설하는 도중에도 야유와 고성은 끊이질 않았다. 갖은 파행으로 얼룩진 이날 연설회는 사실상 태극기 부대가 '좌지우지' 했다는 평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국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김무성 의원은 19일 기자들과 만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과격한 사람들이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된다”고 쓴소리를 날렸고, 황영철 의원 역시 같은날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5·18과 관련된 잘못된 언급들, 행보로 인해서 건강한 보수들이 자유한국당에게 오려던 마음이 다시 멈춰섰다"며 안타까워 했다. 최근 태극기 부대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당의 우경화 움직임에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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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심각한 문제는 당 대표가 유력한 황 후보가 태극기 부대의 극단적 움직임에 동조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15일 열린 첫 TV 토론에서 황 후보는 태극기 부대를 “나라에 헌신한 분들”이라 한 데 이어,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부정하는 발언까지 했다. 만만찮은 세를 과시하고 있는 태극기 부대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그러나 "탄핵 무효", "문재인 빨갱이" 등을 외쳐대는 태극기 부대의 급진·폭력적 행태는 보수진영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될 만큼 다수 국민의 보편적 인식과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다. 합리적 보수와는 거리가 먼 태극기 부대의 '극우적' 행태가 보수통합은 물론 외연확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최근 '5.18 망언' 등으로 한국당이 극우 우경화 조짐을 보이자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 시대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역사적·비이성적 행태에 합리적 보수층이 등을 돌린 결과라는 해석이다.
태극기 부대를 껴안으려는 듯 보이는 황 후보의 정치 행보가 무모해 보이는 것은 이같은 흐름과 무관치 않다. '반동주의'(구체제로 돌아가려는 정치 이념)로 회귀하려는 정치인(세력)이 다수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대와 발목잡기로 일관하던 한국당은 역사적인 1~2차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위장평화쇼”라 폄하하는 수구냉전적 행태를 고집한 끝에 6·13 지방선거에서 궤멸적인 참패를 당한 바 있다.
태극기 부대에 연신 추파를 던지고 있는 황 후보가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터다. 시대착오적 색깔론이,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반동·수구적 행태가 설 자리는 단언컨대 없다. 황 후보가 당권을 노리고 있는 바로 그 당이야말로 이 명징한 진리를 입증하는 산증인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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