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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공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임명하자 자유한국당이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며 시작된 국회 파행이 설 연휴가 끝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나경원 자유한국당·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7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친 비공개 회동을 통해 국회 정상화를 시도했지만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은 개점휴업 상태인 2월 임시국회 정상화를 위해 이날 국회에서 모여 논의를 이어갔지만 만남은 아무 소득 없이 끝이 났다.
문제는 1월에 이어 2월까지 여야 대치가 계속되면서 처리해야 할 민생·개혁 법안들이 무더기로 쌓여가고 있다는 것. 잇따른 파행에 여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가운데, 특히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고 있는 한국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조 상임위원을 임명한 이후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국회 본관 앞에서 대규모 규탄대회를 열었고, 의원들을 오전 오후 2개조로 나눠 릴레이 단식농성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간의 반응은 싸늘하다. 명분도 약할 뿐더러 걸핏하면 국회를 멈춰 세우는 한국당의 습관적인 보이콧 행태에 대중의 피로감이 두루 퍼져있는 탓이다.
한국당은 민주당이 발간한 19대 대선백서에 공명선거특보로 이름이 올라 있는 인사를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한 것은 명백한 정치 중립 위반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나 원내대표는 지난달 24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선관위 70년 역사상 정권 코드인사가 임명된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사상 유례없는 일을 강행하려 한다"며 "조해주 선관위원 임명을 강행하면 2월 국회는 없다"고 각을 세운 바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선관위원 중립성 논란이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2009년 임명된 강경근 전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은 2007년 대선 당시 '나라선진화·공작정치분쇄 국민연합' 부의장을 역임하며 이명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임명된 최윤희·김용호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역시 중립성 시비가 일었던 인사다. 2014년 임명된 최 상임위원은 한나라당(현 한국당) 윤리위원회 출신이며, 김 상임위원 역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를 지낸 바 있다.
이는 "선관위 70년 역사상 정권 코드인사가 임명된 적이 없다"던 나 원내대표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조 상임위원의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한국당을 향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과거 자신들의 행태는 까맣게 잊은 채 보이콧에 나서는 것은 명분이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한국당의 보이콧이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 빈도수가 너무 잦다는 데에 있다. 20대 국회 출범 이후 한국당이 국회 의사일정을 보이콧한 경우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관련해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한국당이) 2~3개월 마다 습관적으로 국회 보이콧을 선언해 왔다"며 "20대 국회에 들어서만 벌써 16번째"라고 꼬집기도 했다. 시쳇말로 툭하면 의사일정을 거부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한국당은 여당이던 지난 2016년 7월 15일 당시 야당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예비비 지출 승인 표결 처리에 반발해 보이콧을 선언한 것을 시작으로 매 회기마다 보이콧을 강행하며 국회 파행을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6년 9월에는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빌미 삼아 보이콧에 나서기도 했다. 정 의장이 개회사에서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된 논란을 언급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촉구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7년 2월에는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부당노동행위 의혹이 일던 삼성전자와 MBC, 이랜드파크 등에 대한 청문회 개최를 의결하자 그에 반발해 보이콧을 감행했는가 하면, 여야의 공수가 바뀐 그해 6월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을 걸고 넘어지며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한국당의 보이콧 사례는 부지기수다. 2017년 7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임명, 2017년 9월 법원의 김장겸 MBC 사장 체포동의안 영장 발부, 2017년 10월 방통위의 방문진 보궐이사 선임, 2017년 12월 정 의장의 국회 예산안 처리, 2018년 2월 민주당의 권성동 법사위원장 사퇴 요구, 2018년 4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임명, 2018년 11월 조명래 환경부 장관 임명에 반발해 의사일정을 거부하는 등 끊임없이 보이콧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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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러하니 2~3개월에 한번 꼴로 보이콧을 했다는 이정미 대표의 지적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터다. 한국당을 가리켜 습관적으로 보이콧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당이 보이콧을 통해 소기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국당의 보이콧은 성과 없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살펴본 것처럼 명분이 지극히 희박한 데다가 보이콧을 너무 자주 남발했기 때문이다. 보이콧은 주로 세가 약한 쪽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고도의 정치행위다.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는 초강수이니만큼 명분 확보는 필수적이다. 자칫 민생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역풍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당의 보이콧은 바로 이 부분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노출된다. 한국당은 권력을 잡고 있던 여당일 때나, 정권이 바뀐 야당일 때나 보이콧을 일삼고 있다. 성토장이나 다름이 없던 지난달 27일 규탄대회에서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를 "독재·독선정권"이라 맹폭했다. 여당 시절이던 지난 2017년 2월 "야당의 독선과 독주를 막기 위해 보이콧하겠다"(정우택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고 했던 한국당이 야당이 된 이후 같은 이유로 보이콧을 하는 건 코미디다.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몽니'를 부리는 행태로밖에는 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한국당이 국회 의사일정을 거부하는 사이 각종 민생·개혁 법안들의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이번 임시국회만 해도 유치원 3법, 미세먼지, 카풀 대책, 체육계 성폭력 근절, 소상공인·자영업 기본법 등의 민생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의 개혁법안 등이 줄줄이 쌓여있는 상태다. 여야가 1월 안으로 처리하기로 합의한 선거제 개혁, 공수처 설치 등의 정치·사법개혁법안 역시 언제 처리될지 기대난망이다.
주지하다시피 국회 공전은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런 면에서 여당인 민주당에게도 국회 파행의 책임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터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세간의 비판은 주로 한국당에게 집중되고 있다. 시시비비를 떠나 거듭된 보이콧으로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는 당사자가 한국당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들은 억울할지 모르나 현실은 그렇게 비친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달 25일 또다시 보이콧에 나선 한국당을 향해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걸 한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문 의장은 이날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야당은 여당이 국회 보이콧을 하려고 하면 달려들어서 무조건 열라고 하고, 국회를 열어서 자기네들만이라도 앉아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한다”며 “그래야 국민들이 ‘야당은 일을 하려는데 여당이 안하는거구나 ’ 생각할 거 아닌가"라고 쏘아 붙였다.
출구전략을 고심하고 있을 한국당이 새겨들어야 할 충고가 아닐까 한다. 강력한 '투쟁' 수단이자 무기인 보이콧이 '투정'이나 '몽니'로 비쳐서는 여론의 호응과 지지를 받을 수 없을 뿐더러 결코 성공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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