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합의로 시행되어 왔던 학교급식을 하루아침에 중단시킴으로써 자녀를 둔 30~40대 경남도민의 분노게이지를 한없이 끌어 올리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어제(30일) 다시 한번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며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욕먹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입니다"라고 언급해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해당 기사에는 무려 10,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저 이례적인 댓글의 숫자는 홍준표 지사의 발언이 얼마나 논쟁적인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방법의
효율성과 효과 여부를 떠나 논쟁적 이슈를 통해 보수층과 지지층의 결집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 차기 대권주자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겠다는
그의 계산은 꽤나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이번 학교급식
중단으로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hot'한 정치인으로 부각되었고, 보수의 아이콘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의 계략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로 나타나게
될지는 여전히 안개 속이긴 합니다만)
그는 어제 페이스북을 통해 비교적 장문의 글을 남겼습니다. 그의 글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선민(選民)의 우민(愚民)에 대한 지도편달'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일반시민보다 특별한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지도자에게 시민은 어디까지나 계몽과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될 뿐입니다. 어제의 글은 도지사로서 자신의 신념과 정책결정 과정은 잘못된 것이 없는데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어리석거나 정치공학 차원에서 달리 해석하고 있다는 논리로 가득합니다.
아마도
그는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맹신하고 있거나 적어도 이를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홍준표 지사의 인식이 플라톤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철학적 혹은 학문적으로 의미가 있을 지는 몰라도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와는 결코 어울리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소수의 현명한 엘리트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독재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자신이
정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좌파
, 우파나 보수, 진보가 아닌 국가의 이익, 국민의 이익 즉 국익에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지도자가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국정을 운영하면 국가와 국민에게 어떤 해악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통해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홍준표
지사의 말처럼 지도자는 진영과 정파를 떠나 국민의 이익, 나아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진주의료원 폐업과 학교급식 중단이 진영논리를 벗어나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두루 살핀 결정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국가와 국민이 필자가 알고 있는 그것과 같은 개념인지의 여부도
불투명하기만 합니다. 만약 동일하다면 그의 결정에 따른 국민의 거센 반발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서로 다르다면 이 둘이 한 공간에서 머무를 이유가 무색해집니다.
그는 도민의 생명과 건강, 아이들의 급식문제가 달려있는
중차대한 이슈를 자신의 거수기인 도의회를 동원해 독단적으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것입니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확신이 있더라도 여러 경로와 채널을 통해 도민의 의견을 확인하는 과정이 없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고 학교급식을 중단시켰다고 받아들인다 해도, 그것이 국민의 이익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몰염치한 짓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홍준표
지사가 언급한 "욕먹는 리더십"은 철저히 자기자신에게 맞추어진 전략적 표현입니다. 욕을 먹든 안먹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리더십(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비록 우매한
시민들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자신의 신념은 틀리지 않다는 자기확신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옳고 사람들이 틀렸다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극치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시민들이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홍준표 지사가 "욕먹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가 욕먹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너 진짜 맞는 수가 있다"는 소리를 듣거나 아니면 모 기자처럼 '1억원 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당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그런 인생을 살아온 인물입니다.
"욕먹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두가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해당 발언의 당사자가 스스로 왜 욕을 먹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을 할 수 있고, 그를 통해 리더십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사람들이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그 사람에게 리더십 자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홍준표 지사에게는 이 두 가지가 모두 결여되어 있습니다.
홍준표
지사의 "욕먹는 리더십"
발언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과 욕을 퍼부어 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에게는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는 리더십과 리더로서의 인격과 품성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딴에는 작심하고 비유했을 "욕먹는 리더십"에서 '리더십'이 없으니, 사람들로부터 '욕만 먹는' 것입니다.
"욕먹는 리더십"이 공감을 이끌어 내려면 먼저 홍준표 지사에게
그에 걸맞는 리더십과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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