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부모가 되어 봐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합니다. 어릴 적 부모님 속 꽤나 썩였던 못난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저 말의 의미를 부모가 되어서야 실감하게 됩니다. 아이 셋을 키워보니 알겠습니다. 왜 우리 부모들이 저와 같은 말을 했는지, 왜 당시에는 저 말의 의미를 깊이 깨닫지 못했는지를 말입니다.
어제(2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젖게 만드는
처절하고 애잔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 공식 발표 전까지 배•보상 절차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단체 삭발식을 거행한 것입니다. 삭발식에는 단원고 희생학생 부모들과 일반인 희생자 가족, 일반인 생존자와 단원고 생존 학생 가족 등 모두 52명이 함께 했습니다.
4•16참사가족협의회와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삭발식에 앞서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은 특별법의 취지를 무시한 쓰레기였다. 진상규명을 오히려 방해하기 위한 시행령안이었다"며 "정부가 뜬금없이 배•보상 기준을 발표하며 4억이니, 7억이니 하늠 금액을 지껄여대는 비열한 짓을 저질렀다. 참으로 무례한 정부"라고 치를 떨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황망하게 떠나보내고 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저들은 참 많은 일들을 해야만 했습니다. 진실규명을 위해 대통령과 정부여당에게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고,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목숨을
건 단식을 하기도 했고, 고통스런 순례의 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가슴을 후벼파는 악담과 손가락질, 차가운 냉대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들은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닌 채로 장장 1년의 시간을 버텨왔습니다. 어떻게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분노를 삼키고, 한을 억누르며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저들이 삭발식까지하는 광경을 목도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삭발식을 지켜봐왔지만 이번만큼
가슴 저미는 광경은 일찌기 보지를 못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들을 삭발식까지 하도록 만든 것일까요.
이날 삭발식을 거행하며 희생자 가족들과 생존자, 생존자 가족들은 정부에 지난 3월 27일
입법예고한 특별법 시행령안을 폐기할 것과, 세월호 선체 인양이 공식 발표될 때까지 배•보상 절차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4•16참사가족협의회와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가 문제삼고 있는 특별법 시행령안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시행령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특조위 업무의 주도권을
파견 공무원이 갖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조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업무를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에 해수부 파견 공무원을 임명하도록 했고, 조사업무의 핵심을 담당하는 조사1과장도 일반직 공무원으로 채워넣었습니다. 이는 조사의 대상이 되어야 할 해수부가 조사를 하게 되는 기형적인 형태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해 구성된 특조위가 정부의 허수아비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진상규명의 업무를 담당해야 할 조사1과장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에 관한 정부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를 해야 하고, 조사2과장의
역할 역시 '세월호 참사의
구조구난 작업에 대한 정부 조사자료 분석과 조사' 업무를 보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진상규명을 정부가 정해 놓은 가이드라인 내에서만 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되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이밖에도 진상규명을 위한 업무의 지휘권한을 상임위원 5명 가운데 새누리당 추천의 조대환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갖고 이석태 특위위원장과 나머지 4명의 상임위원들에게는 지휘권한이 없는 점, 특조위의 인원을 120명에서 90명으로 줄인 점, 특조위 내에 파견 공무원(42명) 너무
많다는 점 등도 진상규명이 목적인 특별법의 취지를 무색케 만들고 있습니다. 결국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은 '정부의, 정부에 의한, 정부를 위한' 시행령안인 셈입니다.
가족대책위가 삭발식을 거행한 것은 정부가 추진
중인 배•보상 절차도 크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돈'만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훼손시키고 진의를 왜곡시키기에 효과적인 수단이 또 없습니다. 상대방의 반발과 저항을 무력화시키기에 '돈'은
최고의 맞춤카드입니다. 인간을 한없이 비열하고 치졸하게 만드는 자본의 적나라한 민낯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정부의 배•보상 절차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과정과 절차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선체 인양 결정도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는데
배•보상 문제를 꺼내는 것은 과정과 절차를 무시한 정략적 술수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사이, 그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를 '돈'으로
이간질시키면서 세월호 국면을 정부의 의도대로 이끌어 가겠다는 심산인 것입니다.
정부의 배•보상에 대한 구체적인 발표가 있자마자 보수언론과 일베 등에서는 '역시나' 유가족들을 향한 인식공격과 조롱, 비아냥이 끊임없이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교통사고에 너무 많은 보상금이 아니냐"는 말부터 "결국 보상금 더 타먹으려던 유족들은
좋겠다"는 말까지 온갖 저열한 흉기들이 마구 투척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다시 국론이 양분되는 것, 바로 정부가 원하는 그림대로 흘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진상규명이 목적인
특조위의 손발은 다 묶어놓고, 유가족과 국민들 사이는 '돈'으로 갈라 놓겠다는 정부의 행태는 마치 잔인하기 그지없는 한편의 잔혹동화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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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중들의 피로감을 유발시켜 세월호 1주년의 추모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나아가 세월호 참사를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겠다는 정부의 계산대로 정국이 흘러갈지는 의문입니다. 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부모들의 마음이겠죠. 아이가 밤새 끙끙 앓기라도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 우리 부모들의 마음입니다. 하물며 세월호 참사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아이들이 눈 앞에서 그리 허망하게 사라지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세상 어느 부모와 가족들이 가만히 있는단 말입니까. 이런 와중에 보상금이 어쩌구 저쩌구 운운하는
자들이 있다면 인륜과 천륜의 본질적인 의미조차 모르는 파렴치한이거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자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겁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명언처럼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유가족들이 "이제 그만"을 외칠 때까지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합니다. 정부가 계속해서 이를 무시하고 지금처럼 유가족과
국민들의 뜻을 거스른다면 안으로 안으로 삭이고 있는 유가족들의 분노는 다음은 정부를 향해 터져나올 것입니다. 불의와 몰상식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성난
민심과 함께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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