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일)는 만우절이었습니다. 만우절은 거짓말을 해도 가볍게 웃어 넘길 수 있는, 일년 중
유일한 날입니다. 공식적인 국가 공휴일은 아닙니다만
세계 여러나라에서 이 날을 기념하고 즐기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악의적으로 거짓말을 해서는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자칫 사안에 따라 법에 의해 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만우절에 119나 112로 장난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많아 경찰 관계자들이 큰 골머리를 썩기도 했습니다.
만우절에 자주 벌어졌던 이 해프닝은 이후 장난전화에 대한 처벌기준이 강화되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인지 만우절 허위신고가 크게 줄었다는 소식입니다. 경찰의
지속적인 홍보와 처벌기준 강화가 크게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고, 단순한 호기심과 장난에서 비롯된 허위신고가
다른 시민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자각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전에 비해 만우절의 풍경이 많이 바뀐 듯 합니다. 과거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황당한 거짓말들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 중 지난 2003년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역대급 거짓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시 MBC는 빌게이츠 회장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긴급속보로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CNN 웹사이트에 올라온 만우절 거짓말을 MBC 측이 확인절차 없이 방송에 내보낸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코스피 지수가 순식간에 급락하는 등
주식시장이 크게 요동치는 파문이 일어났습니다. 만우절 거짓말이 한 국가의 주식시장을 들었다 놓은 황당하고
아찔한 순간입니다. 십 수년이 지난 오늘 이 희대의 해프닝을 그나마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어서 퍽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필자는 어제 이와 유사한 장면을 목격하고 극심한 감정의 흔들림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소식을 마침내 듣게 되었다는 희열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또 다시 황망한 허탈감을 맛봐야 했습니다. 언론의 오보인지 아니면 정부의 연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십 수년이 지난 어느날 이 해프닝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다름 아닌 세월호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한
언론은 정부가 마침내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기로 결정했다는 반간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기사를 접하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세월호 선체 인양 소식은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고 있는 유가족들은 물론이고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일반시민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기로 결정한 정부의 결단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뒤 정부가 해당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는 해명자료를 배포했기 때문입니다. 해양수산부는 어제 "정부가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기로 사실상 결론을 내렸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공식발표했습니다. 정부의 발표로 선체 인양의 꿈에 부풀어 있던 유가족들과 기대감에 젖어 있던 시민들은 크게
낙담해야 했습니다.
이날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에서 지난해
11월 11일 발표한 대로 '선체처리를 해역여건,
선체상태 등에 대한 기술적 검토와 실종자 가족•전문가 등의 의견수렴 및 공론화 과정을
거쳐 중대본에서 결정하겠다'는 당초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며
"현재 세월호 선체 처리 기술검토TF의 민간전문가 중심으로 기술검토가 진행
중에 있는 단계이며, 선체를 인양하기로 결론을 내린 바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언론의 선체 인양 결정 발표와 정부의 해명 보도자료가 하필이면 만우절에 일어난 것이 참으로 얄궃기만 합니다.
만우절에
일어난 세월호 선체 인양을 둘러싼 해프닝은 언급한대로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해당 언론사가 오보를 냈을 가능성과 정부가 관련사실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언론사의 오보라기 보다는 정부가 연막작전을 펴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더 커 보입니다. 단순히 언론사의 오보로 보기에는 기사의 내용이 매우 사실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기사는
여권 고위관계자와 정부 고위 관계자의 인터뷰 내용을 함께 실었습니다. 그들은 "정부가 인양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와 국민여론 등을 종합해 인양을 위한 막바지
실무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인양 방식과 예산 등 세부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여권과 정부 고위관계자의 확인까지 거쳐 내보낸 기사라면 사실 관계가 이미 명확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해당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선체 인양 계획 발표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해당기사의 처음과 말미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사는 정부가 빠르면 세월호 참사
1주년인 오는 16일 인양 계획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재보선 변수 때문에 그 이후로 미룰 수도 있다는 예측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사의
말미에는 이런 내용도 나옵니다. 여권 내부에서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고 내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을 경우 내년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하고 있다'며 '정부의 인양 방침 발표로 세월호 관련 논란이 수습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정리해 보면 결국 정부가 선거전략적 차원에서 선체인양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해 집니다.
선체인양을
둘러싸고 정부여당은 그동안 여러차례 말을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여론이 비등해지고, 실종자에 대한 구조작업에 난항을 겪자 수색 종료와 함께
인양 가능성을 거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특별법이 타결되고 실종자 수색이 종료되자 일순간에 손바닥을 뒤집었습니다.
시간과 선체 인양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되고, 인양과정에서 추가 희생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인양을 하지 말자는 쪽으로 선회한 것입니다. 하나의 사안에도 이렇게 수시로 말과 입장이 뒤바뀌니
저들의 변죽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참으로 난망하기만 합니다.
관련글 ▶ 세월호 인양논란에 담긴 불편한 진실 (클릭)
벌써 1년입니다. 침몰의 정확한 원인과
책임소재가 아직까지도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반쪽짜리 특별법은 예상대로
'누더기 특별법'이 되어 버렸고, 특위는 시작도
안했는데 배터리가 방전되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와중에 9명의 실종자는 여전히 차디찬 바다 속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종자의 가족들은 이제는
유가족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기구하고 애절한 소원이 또 어디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풀리지 않는 많은 의혹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한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의혹들과 음모론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정부와 집권여당이 보여주고 있는 이해하기 힘든, 의뭉스러운 행동 때문입니다. 불신은 절대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행태는 비정상적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것들의 연속입니다. 세월호 인양을 둘러싼 언론과 정부간의
이번 해프닝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향한 의혹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선체는 반드시 인양되어야만 합니다.
필자는 세월호 선체 인양과 관련해 이념이나 티끌만큼의 정치공학조차 개입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우리사회가, 못난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며,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세월호 선체 인양을 추진해야 합니다.
행여 이를 정략적 차원에서 이용하려 한다면 국민들의 거센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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