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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토착왜구' 나경원의 감출 수 없는 친일본색

ⓒ 오마이뉴스


진작에 알아봤어야 했다. 때는 바야흐로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BBK 실소유주' 논란이 뜨겁게 확산되고 있을 무렵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과거 광운대 강연 동영상이 공개돼 궁지에 내몰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정치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표현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을 맡고 있던 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다.

그는 "CD에는 'BBK를 설립했다'고만 언급돼 있지 '내가 설립하였다'고 돼 있지 않다"며 "이것을 '내가 설립했다'라고 하는 것은 명백히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 전설의 말장난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0여 년 전 "주어가 없다"는 말로 세상을 '뜨악'하게 만들었던 나 원내대표가 그에 버금가는 황당한 궤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 14일 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의 '반민특위' 발언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던 나 원내대표가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반문특위’다"라는 변명을 내놓아 빈축을 사고 있는 것.

나 원내대표는 23일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22일 독립운동가인 임우철 지사가 국회를 방문해 나 원내대표의 '반민특위' 발언에 항의하는 회견을 열자, 그에 대한 해명글을 남긴 것이다.

먼저 나 원내대표는 "지사께서 연로하신 몸을 이끌고 여의도 국회를 찾으셨다. 바로 저 때문이었다. 저를 꾸중하셨다"며 "어떤 이유에서든, 연로하신 독립운동가께서 직접 국회에 발걸음 하도록 한데 대해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저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만행, 강제 식민지배, 명백한 범죄행위인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비판한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있는 사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사과를 하는 듯 보였던 나 원내대표의 속내는 '반민특위' 발언이 나온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내 드러났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역사공정의 공포정치를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친북,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완화하거나 또는 없애고자 하는 시도"라며 "결국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의 위상을 깎아내리고, 반(反)대한민국 세력을 미화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유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했던 극렬 공산주의자들까지 독립운동가 서훈을 한다고 한다"며 "초중고 내 일본제품에 '전범딱지'를 붙여 아이들에게 쇄국 배타주의를 가르쳐서는 결코 이 나라를 미래로 이끌고 가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비판하려던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역사공정이라는 주장도 폈다. 나 원내대표는 "이처럼 사실과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역사공정을 비판하려고 했던 것"이라며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 색출해 전부 친일 수구로 몰아세우는 이 정부의 '반문특위'"라고 공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나 원내대표의 주장은 불과 며칠 전 귀를 의심케하는 발언으로 공분을 샀던 당사자의 해명이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궁색하다는 비판이다.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분열했다"는 발언에 각계의 질타가 쏟아지자, 나 원내대표가 뒤늦게 '반문특위'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교묘히 말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나 원내대표 발언 속에 역사적 무지와 편견, 편협한 인식이 여전히 묻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나 원내대표는 '일제의 침략과 만행, 강제 식민지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하면서도 또다시 색깔론을 내세우는가 하면, 친일잔재 청산을 '쇄국배타주의'라 비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문제는 나 원내대표의 인식이 구한말 나라를 팔아넘기는데 앞장섰던 '을사오적' 등 친일파들의 논리나 해방 이후 반민특위 활동을 무력화시켰던 이승만 정권과 친일부역세력의 행태와 비교해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구한말 을사오적은 일제의 한반도 침탈 야욕에 저항했던 애국민족운동을 '쇄국주의'로 매도하며 나라를 헌납했고, 이승만 정권과 친일부역세력은 반민족 행위를 했던 부역자를 조사·처벌하기 위해 출범한 반민특위 활동을 조직적·집단적으로 방해해 와해시켰다.

특히 이승만 정권과 친일부역세력은 좌우 이념대립을 이용한 극심한 편가르기와 색깔론을 앞세워 수많은 독립애국지사들을 좌익, 빨깽이로 몰아 죽이는 악행도 서슴치 않았다. '쇄국배타주의', '역사공정', '색깔론'을 들고 나온 나 원내대표의 인식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배경이다.

최근 나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을 향한 공세적 발언과 잦은 말바꾸기로 논쟁의 중심에 서있다. 지난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 대변인"에 비유해 논란에 휩싸이는가 하면, 20일에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나선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선거제도 개혁 합의를 지키지 않은 것을 지적하자 집단퇴장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앞서 자신이 대표연설을 할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거세게 항의하자 '얘기를 듣고 나중에 비판하라'며 날을 세우던 것과는 정반대의 행태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나 원내대표의 '문민특위' 해명 역시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반민특위' 발언으로 비판 여론이 솟구치자 정권 비판으로 전선을 바꿔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나 원내대표는 취임 이후 지난 100일 동안 강경 투쟁노선을 고수해 왔다. 지난 1월, 2월 두 달간 국회 보이콧을 주도한 데 이어, 3월에는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싸움닭'으로 변신해 대여투쟁을 이끌고 있다. 보수 결집과 지지율 상승은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터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명암'이 존재하는 법이다. 나 원내대표의 도를 넘는 언행과 말바꾸기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특히 나 원내대표의 수구적 역사인식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과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정치권을 중심으로 '친일 프레임'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이유를 불문하고 대한민국 정치인이 '친일 논란'에 휩싸이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 개탄스러운 현실을 만든 책임은 역사에 대한 편향된 인식과 몰이해로 논란을 자초한 나 원내대표 자신에게 있다. 세간의 비판을 뼈 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일 터다. 명색이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토착왜구', '아베 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서야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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