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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동영상 모른다? 황교안의 해명이 거짓인 이유

ⓒ 오마이뉴스


'황나땡'(황교안 나오면 땡큐). 2·27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출마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자 당시 여권 내부에서 나왔던 반응이다. 황 전 총리가 출마해 한국당 대표가 될 경우 오히려 여권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황 전 총리와 당권 경쟁을 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당시 비슷한 관측을 내놨다. 그는 지난 1월 30일 페이스북에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이 민주당 입장에서 황교안, 홍준표씨가 당 대표가 되는 게 좋다고 속내를 드러냈다"며 "확장성이 꽉 막힌 당 대표, 소수의 광팬들만 있는 당 대표를 내세우면 2020년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황나땡'을 외쳤던 민주당은 내심 크게 당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황 전 총리가 대표가 되면 '국정농단 프레임' 때문에 고전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한국당은 시쳇말로 잘 나가고 있다. 민주당을 바로 턱밑까지 쫓고 있는 것이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25∼27일 유권자 1514명을 대상으로 조사(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2.5%포인트)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당은 30.8%를 기록해 민주당(37.8%)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때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벌어졌던 지지율 격차가 한자리수로 좁혀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당의 지지율 상승은 2·27 전당대회의 컨벤션효과와 강력한 대여투쟁으로 인한 지지층 결집 때문으로 풀이된다. 보수분열과 한국당 내홍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친박·비박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탄핵 찬반 논란도 사라졌다.

더욱이 황 대표는 현재 차기대권주자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지독한 인물난에 시달려온 보수진영과 한국당이 미래권력으로 불리는 황 대표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한국당이 국정농단 사건 이전의 지지율을 회복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는 데에는 이처럼 황 대표 개인의 역량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말은 달리 해석하면 황 대표가 정치적 위기에 빠지게 될 경우 한국당 역시 크게 흔들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김학의 사건'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고위공직자의 부도덕한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권력형 비리 사건에 황 대표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탓이다.

지난 25일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가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한 '김학의 사건'은 박근혜 정부 1기 내각에 임명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별장 성폭행·성접대 의혹으로 취임 6일만에 불명예 퇴진해 화제가 된 사건이다.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안긴 '김학의 사건'은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검찰 수사가 진행됐지만 모두 무혐의로 결론났다. 일각에서 검·경 수사 과정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지만 당시는 정권 초기인 까닭에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러나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 법. '김학의 사건'을 조사한 과거사위는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박근혜 청와대가 경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정황도 드러났다.

과거사위가 김 전 차관의 뇌물수수 혐의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중희 민정비서관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한 배경이다.

주지하다시피 '김학의 사건'이 불거질 당시 황 대표는 법무부 장관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황 대표의 입장은 초지일관 변함이 없다. "검증 결과 문제가 없었다"고 들었고, "임명된 후 문제 제기가 있어 본인이 사퇴한 게 전부"라며 자신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일이라는 것.

그러나 황 대표의 해명과는 배치되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박 후보자는 27일 2013년 국회 법사위원장 시절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 대표를 만나 김 전 차관의 동영상 CD를 언급하며 임명을 만류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28일에는 황 대표와의 면담 시점(3월13일 오후 4시40분)이 적혀있는 과거 일정표까지 공개했다.

박근혜 정부의 첫 차관 인사발표는 2013년 3월 13일이다. 김 전 차관은 그로부터 이틀 뒤인 3월 15일 취임했다. 박 후보자의 주장대로라면 황 대표가 동영상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틀 동안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 오마이뉴스


박 후보자의 주장에 황 대표는 적극 반박하고 있다. 황 대표는 28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다 "어제도 말했지만 CD를 본 일이 없다"며 "(박 후보자는)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깨끗하게 이야기하는 게 낫다"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다만 황 대표는 당시 법사위원장인 박 후보자와 자주 만났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 "CD를 보고 그것과 관련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황 대표의 해명과는 달리 세간의 의구심은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과거 일정표까지 제시한 박 후보자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인 데다가, 당시 정치권 및 언론계를 중심으로 김 전 차관 관련 의혹에 대해 뒷말들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실제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는 지난 1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은 논란이 벌어지기 이전부터 꽤 알려진 이야기라고 밝힌 바 있다. 황 대표의 경기고 1년 선배인 김 전 차관이 장관에 지명되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주 기자는 "경찰이 이거 안 된다. 명확하다"고 보고를 했는데도 임명이 됐다며 박근혜 청와대를 정조준하기도 했다.

관련해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밝힌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박 의원은 28일 '뉴스공장'에 출연해 자신이 2013년 3월 초 경찰 고위 간부에게 관련 영상 CD와 녹음 테이프를 입수해 박영선 의원과 공유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박영선 후보자가 전화로 '황 장관한테 (김 전 차관 관련 동영상) 이야기를 했더니 얼굴이 빨개지더라'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 의원의 이야기 역시 앞서 주 기자와 마찬가지로 박 후보자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다.

반면 황 대표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민생 살리기가 아니라 오직 황교안 죽이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거사위의 재수사 권고에 대해서도 "전형적인 이중 잣대이자 정치공세"라며 성토했다. '김학의 사건'으로부터 자신은 완전히 결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 대표는 성폭행과 권력형 비리 의혹에 휘말린 김 전 차관의 직속 상관이었다. 검찰 수사 과정 역시 석연찮은 정황이 한 둘이 아니다. 백 번 양보해 황 대표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박근혜 청와대의 수사외압과 검찰의 부실·봐주기 수사 정황이 드러난 마당에 주무 장관으로서 최소한 도의적 책임은 느껴야 하지 않을까.

거칠 것 없이 순항하는 듯 했던 황 대표 앞에 '김학의'라는 커다란 암초가 나타났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것은 황 전 총리가 넘어야 할 산이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황 대표는 법무부 장관 재직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통진당 위헌정당 해산심판 당시 헌법재판소 관계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사건의 진행사항과 선고결과에 관한 내용을 정부측 증인이었던 김영환 전 민정수석에게 누설했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 황 대표는 옛 통진 당 소속 의원들로부터 고소를 당한 상태다.

세월호 참사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검찰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도 있다. 해경 123정장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당시 변찬우 광주지검장을 크게 질책하고, 법무부 라인을 통해 대검과 광주지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이밖에도 '국정원 사건' 수사 과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막은 것을 비롯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종용 의혹과 권한대행 시절인 2017년 3월 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령 문건을 지시하고 보고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입각 당시 논란이 됐던 병역 면제, 증여세 탈루, 아파트 투기, 전관예우, 과태료 상습 체납 의혹에 대한 부정적 시각 역시 상당하다.

산 넘어 산이다. 더욱이 박근혜 정권의 조력자였던 황 대표는 국정농단의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본격적인 견제와 검증이 시작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황 대표를 둘러싼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어느 구름에 비올지 모르는 것이 정치고, 여론 역시 언제 요동칠지 모른다.

결국 관건은 얼마나 진실되고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느냐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행동과 태도가 절실하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기억이 안 난다',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게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남 탓 할 처지는 더더욱 아니다. 누구 말마따나,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깨끗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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