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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논쟁은 급기야 극단적 수사를 동반한 정치 공방전으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민주평화당이 반민특위가 국론 분열을 초래했다고 언급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토착왜구"라 비판하자 한국당이 법적조치를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평화당은 "토착왜구의 사실관계 입증에 혼신을 다하겠다"며 맞대응에 나서고 있다.
점입가경이 따로 없는 뜨거운 설전의 진앙지는 나 원내대표다.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친일 행위를 하고도 독립운동자 행세를 하는 가짜 유공자는 가려내겠다고 하는데, 마음에 안 드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 친일 올가미를 씌우는 것이 아닌가",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 또 다시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해달라”고 말한 것이 빌미가 됐다.
발언의 파장은 컸다. 나 원내대표가 국가보훈처의 '친일 독립유공자 가려내기’ 작업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반민특위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폄훼하고 부정하는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에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과 역사학계, 독립유공자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반민특위는 일제에 적극 협력했거나 독립운동가 등을 고문·박해했던 친일부역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설치됐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친일부역세력을 청산하는 대신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았다. 결국 친일부역자 청산과 단죄를 목적으로 출범한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 방해와 친일부역세력의 반발에 가로막혀 1년 만에 좌초되고 만다.
반민특위 때문에 국론이 분열됐다는 나 원내대표의 주장은 이같은 역사적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나 원내대표의 역사인식이 사실 관계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친일부역세력의 친일청산 반대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당이 나 원내대표를 가리켜 "토착왜구"라 비난하고 나선 배경이다.
문정선 평화당 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에서 "괜히, 우연히 자위대 행사에 참석한 게 아니었다"며 "나경원은 토착왜구라고 하는 국민들의 냉소에 스스로 커밍아웃했다"고 꼬집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 대변인은 한국당을 향해서도 "반민특위를 악랄하게 저지해서 친일파를 보위한 자들이 누구인가"라며 "자유한국당은 명실상부한 자유당의 친일정신, 공화당, 민정당의 독재 DNA를 계승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문 대변인의 독설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국민을 분열시킨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친일파들이었다”며 “실패한 반민특위가 나경원과 같은 국적불명의 괴물을 낳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다시 반민특위를 만들어서라도 토착왜구는 청산돼야 한다"며 “토착왜구 나경원을 역사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 원내대표의 역사인식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지적하자 "한일관계가 일본의 보복 문제로 악화되고 있는데 과연 우리 정부는 현명하게 대응하고 있느냐"며 "불필요하게 일본을 자극한 것 아니냐"고 각을 세운 바 있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비판이 쇄도했다. 역사학자인 전우용 교수는 페이스북에 "1909년 12월, 매국단체 일진회는 '안중근이 이토를 사살하여 일본 여론을 자극함으로써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며 '합방청원서'를 발표했다. 이들이 '토착왜구의 원조'"라며 "110년이 지났는데도, '원조의 정신'은 살아있다"고 적어 화제가 됐다. 아베 내각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나 원내대표를 매국단체인 일진회에 빗대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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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 원내대표는 잇따른 설화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10일 여야 5당의 합의를 파기하고 비례제 폐지를 주장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은데 이어, 12일에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습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주십시오"라고 말해 본회의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17일에는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에 합의하자 이를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조정법 등 3대 날치기 악법은 민주당 2중대를 만들고 청와대가 검·경을 장악해 독재를 하겠다는 것으로 이것이 좌파 장기집권 플랜"이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특히 공수처와 관련해서는 "이제는 대통령 직속 수사기관을 하나 더 만들어서 이 정권 비판세력을 완전히 짓누르겠다는 것으로 대한민국판 '게슈타포'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김정은 수석대변인", "의회 쿠데타", "반민특위 국론 분열", "게슈타포" 등 나 원내대표가 입을 열 때마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무리 제1야당 원내대표로서의 입장을 이해한다 해도 도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나 원내대표의 주장 대부분이 궤변에 가까운 정치공세라는 사실이다.
나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하며 인용했던 외신보도는 '블룸버그' 소속 한국기자가 쓴 기사로 밝혀졌다. 기자의 주관적 견해가 반영된 기사 내용을 가감없이 인용한 것과 관련해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외신보도의 신뢰성에 금이 간 셈이다.
여야 4당이 합의한 패스트트랙을 "의회 쿠데타"라고 비판한 것도 자기 얼굴에 침뱉기라는 지적이다. 패스트트랙은 지난 2012년 새누리당(현 한국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해 여야 합의로 처리된 국회선진화법의 내용 가운데 하나다. 지금의 한국당처럼, 국회의원의 3분의 2가 동의하는데 특정 세력이 반대해 법안 처리가 가로막힐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놓은 합법적인 절차인 것이다.
"반민특위 때문에 국론이 분열됐다"는 주장 역시 각계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친일파의 반민족 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립된 반민특위는 친일부역세력의 강력한 저항과 이에 동조한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무력화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국론 분열 역시 반민특위가 아니라 친일 청산을 막기 위한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의 방해 공작 때문이었다는 것이 역사학계 등의 일반적인 평가다.
공수처 도입을 반대하며 나찌 비밀경찰인 "게슈타포"를 거론한 것 역시 어처구니 없다. 고위공직자 비리 척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주목받고 있는 공수처는 대표적 사법개혁과제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정경유착과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 검찰 불신 풍조가 만연해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도입이 시급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찬성하고 있음에도 공수처는 한국당 등 보수야당과 기득권을 놓치 않으려는 검찰의 반대로 번번히 무산돼왔다. 이번에도 같은 양상이다. 한국당은 공수처가 도입되면 야당은 물론 정권에 미운 털이 박힌 고위공직자에 대해 표적 사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검찰총장과 달리 공수처장은 국회의 추천 과정을 거친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중립을 위한 조치다. 이밖에도 공수처의 권한과 규모, 소속 검사의 임기 축소·조정 등 편향성과 비대화 우려를 상쇄시키기 위한 방안들이 마련되고 있다.
만약 공수처의 수사권 오남용이 우려스럽다면 이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를 국회 차원에서 보안해 나가면 될 터다. 그러나 한국당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대책 마련보다 설치 자체를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상태다. 찬성 여론이 80%가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반대를 위한 반대'로밖에는 비쳐지지 않는다.
나 원내대표가 세간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는 언행을 이어가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손해볼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부정책 및 개혁·입법 과제가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좌초될 경우 그 책임은 정부여당에 돌아가게 마련이다. 한국당이 습관적으로 보이콧과 반대 전략을 고수하는 이유일 터다. 선명성을 앞세워 보수결집을 시도하고 내년 총선에서 승부수를 띄워보겠다는 의도다.
실제 5·18 망언 파문과 나 원내대표의 잇따른 막말 논란에도 한국당의 지지율은 외려 상승하고 있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끝난 후 본회의장을 나서던 나 원내대표의 만면에 흐르던 미소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 원내대표가 주도하는 전략의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나베", "자위대녀"라는 비유도 모자라, 급기야 "토착왜구"라는 낯부끄런 수식어까지 등장했다. 세간에 유행하는 말 그대로다. 지금까지 이런 정치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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