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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학의 '나비효과'..황교안과 곽상도는 피해갈 수 있을까

ⓒ 오마이뉴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가 25일 박근혜 정부 시절 벌어졌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수수 혐의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했다.


'김학의 사건'을 조사 중인 과거사위 산하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김 전 차관이 2005년부터 2012년 사이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한 2013년 김 전 차관이 대전고검장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는 과정에서 곽 의원과 이중희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사건을 내사하던 경찰을 질책하거나, 수사지휘라인을 인사 조치 하는 등 직권남용을 했던 정황이 포착됐다며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로 최근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김학의 사건'은 재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검찰과 경찰 지도부가 조직 명운을 걸고 진상을 규명하라"는 지침을 내린 데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22일 대정부질문에서 "공소시효가 남아있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것도 재수사에 힘을 실어준다.

문무일 검찰총장 역시 26일 오전 기자들에게 "자료를 받아보고 빈틈없이 결정을 하도록 하겠다. 국민 여러분께서 의혹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의혹이 해소되는 방향으로 성실히 살펴보겠다"고 밝혀 사실상 재수사 방침을 피력한 바 있다.

애초 검찰은 별장 성폭행·성접대 혐의가 불거진 김 전 차관 사건을 수사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무혐의 처리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의 판단과 달리 김 전 차관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당시 수사과정에서 청와대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재수사를 요구하는 여론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김 전 차관이 22일 심야시간에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을 시도하다 긴급 출국금지되는 일까지 벌어지며 의혹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김 전 차관은 도피성 출국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상식적으로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과거사위는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 뇌물수수 혐의를 우선 수사하도록 권고했지만 세간의 관심은 아무래도 성폭행·성접대 의혹에 쏠리고 있다. 뇌물수수 혐의는 김 전 차관의 비위를 들여다 보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지 애초 이 사건은 별장 성폭행·성접대 의혹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사위 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부분은 지난 2013년 경찰 내사 당시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과거사위는 당시 경찰이 김학의 동영상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들어가자 청와대가 수사에 강한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외압의 당사자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곽 의원과 이 비서관을 지목했다.

과거사위는 "김 전 차관이 대전고검장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는 과정에서 당시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이중희 민정비서관 등이 김 전 차관 범죄혐의를 내사하던 경찰을 질책하거나 그 무렵 경찰청 수사지휘라인을 부당하게 인사조치 하는 방법으로 수사를 방해하거나 사건 실체를 왜곡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박근혜 청와대가 경찰 수사를 막기 위해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했다는 구체적 진술이 당시 경찰 수사 책임자로부터 나와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태다.

23일 KBS '뉴스9'은 동영상 속 주인공이 '김학의 대전고검장'임을 확인한 경찰이 내사에 들어가자 청와대로부터 강한 압력이 내려왔다는 당시 수사 실무책임자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경찰청 수사국 최고 책임자인 김학배 국장이 수사 실무책임자를 불러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수사에 부담을 토로했고, 며칠 뒤엔 청와대 민정수석실 박관천 행정관이 직접 경찰청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을 거론하며 '수사가 부담스럽다'는 말을 전했다는 내용이다. 

보도대로라면 김 전 차관 비위를 내사 중이던 경찰에 박근혜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한 셈이다. 김 전 차관이 물러난 직후 김기용 당시 경찰청장이 사퇴하고, 수사를 담당하던 지휘라인이 전면 교체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경찰 수사로 박근혜 정부 초기 내각 인선에 잡음이 생기자 보복성 인사를 감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당시 김 전 차관의 직속상관이었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현 한국당 대표)과 민정수석이었던 곽 의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일 터다. 황 대표와 곽 의원은 현재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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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3·15 의거 59주년 기념식'을 위해 국립 3·15 민주묘지를 찾은 황 대표는 참배 이후 기자들과 만나 "검증 결과 문제가 없었다고 들어서 임명됐다"며 "임명된 뒤 의혹 제기가 있었고 본인이 사퇴했다. 그게 전부"라고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곽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과거사위의 발표 직후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인사조치' 의혹에 대해 "인사는 정무수석 라인에서 하는 것이고 저는 인사권자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을 질책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김학의 전 차관을 인사검증할 때 성접대 관련 얘기가 있어 경찰을 불러 확인했더니 공식적으로 '그런 게 없다'고 답했다"며 "허위보고를 했다면 질책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허위보고를 한 것에 대해 잘못됐다고 관련자들에게 경위를 확인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행정관을 보내 동영상을 보여달라고 한 것 역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곽 의원은 "고위 공직자에 임명된 사람이 추문이 나오고 문제가 되면 사실관계를 빨리 파악해서 인사조치해야 되는 게 저희들 일"이라며 "의혹이 있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행정관을 보낸 것인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반박과 해명에도 의혹은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다. 금품·향응 제공자인 윤중천을 비롯해 성폭행 피해자의 구체적 진술과 동영상 등 혐의를 입증할 정황 증거가 제시됐음에도 검찰은 계좌추적이나 통화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채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다.

동영상 의혹 등이 포함된 김 전 차관 관련 인사검증 보고서가 민정수석실과 대통령에게 보고되었음에도 임명을 강행한 이유 역시 석연치 않다. '김학의 사건'이 불거질 당시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과 비리 감찰을 담당했던 조응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김 전 차관 관련 의혹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 의원은 25일 복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김학의 전 차관의 성접대 동영상 첩보를 담은 검증 보고서를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의 말대로라면 당시 박근혜 청와대가 김 전 차관의 성폭행·성접대 사실을 인지하고도 임명했다는 얘기가 된다.

김 전 차관의 성폭행·성접대 의혹은 박근혜 정부 초기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날린 낯뜨거운 사건으로 각인돼 있다. 그런 면에서 민정수석실의 첩보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적 인사가 어떻게 법무부 차관에 발탁될 수 있었는지, 당시 수사과정에 어떤 외압이 있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관건이다.

과거사위의 재조사 권고로 김 전 차관 의혹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세간의  관심은 검찰의 칼끝이 어디를 향하느냐다. 부실수사와 외압 의혹의 중심에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 대표와 민정수석으로서 인사검증과 사정라인을 총괄했던 곽 의원이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에 대한 책임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재수사 과정을 통해 드러나겠지만, 어찌됐든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김 전 차관에게 제기된 혐의와 수사외압 의혹을 황 대표와 곽 의원이 '알고 있었다' 해도 문제, '모르고 있었다' 해도 문제라는 사실이다. 전자라면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를 한 셈이고, 후자라면 무능을 스스로 입증한 꼴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관련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두 사람이 '김학의 사건'의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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