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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을 탄핵해야 한다고 본다. 제가 보기에는 한국당 때문에 법관 탄핵도, 공수처 설치도, 검·경수사권 조정도, 자치경찰제 도입도 안 될 것 같다. 한국당이 막아서 안 되는데 어떡하겠느냐. 전적으로 한국당 책임이고, 한국당 때문에 입법이 되지 않는 데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판단해야 한다"
지난 16일 공개된 팟캐스트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자유한국당을 강하게 성토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각종 개혁 입법이 제 1야당인 한국당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유 이사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한국당 내부에서는 "어용 지식인의 깐죽거림에 지나지 않는다"(김정재 한국당 원내대변인), "대통령 뜻에 반대하면 탄핵 대상인가"(윤홍근 한국당 의원) 등의 격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냉정하게 볼 때 유 이사장의 지적이 크게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 상당수의 개혁·민생 입법들이 한국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처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 탄핵,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 경찰제 등 유 이사장이 언급한 것 뿐 아니라 소상공인·자영업 기본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국정원법 등 막혀있는 입법 과제들이 한 둘이 아니다.
특히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최근 패스트트랙과 관련해 주목받고 있는 선거제도 개혁안이다. 시대적 과제로 손꼽히는 선거제도 개혁만 하더라도 한국당은 반대 입장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외려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여야 4당이 추진 중인 선거제도 개혁 패스트트랙을 "의회 쿠데타"라 규정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당은 심지어 지난해 12월 여야 5당 원내대표가 함께 도장 찍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관련 합의 사항도 전격 파기시켜 버렸다. 그러면서 의원수를 10%로 감축해 270석으로 하고 비례대표를 전면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황당무계한 선거제도 개혁안을 내놨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10일 "현재 대통령제하에서는 오히려 의원정수를 10% 줄여서 270석으로 하자는 게 한국당의 안"이라며 "내 손으로 뽑을 수 없는 비례대표를 폐지하고 내 손으로 뽑을 수 있는 의원으로 의원정수를 270석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추진에 맞불 성격으로 내놓은 한국당 안은, 그러나 정치권을 비롯해 법조계와 시민사회 등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비례대표 폐지는 당장 "선거구와 비례대표제는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돼 있는 헌법 제41조 3항과 충돌해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
심상정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은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헌법 41조 3항에 비례대표제의 입법 명령 조항이 있다"며 "나 원내대표가 율사 출신인데 헌법도 잊어버렸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그런가 하면 법조계 내부에서도 비례대표 폐지를 위헌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한국당은 요지부동이다. 비례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고 있는 상황임에도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부정적인 국민 정서를 앞세워 비례대표제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한국당이 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당은 여야 4당이 합의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도 위헌이라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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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원내대표는 11일 국회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2001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보면 지역구 투표로 비례대표 명부를 배정하는 것, 한 개의 표로 비례대표와 지역구 국회의원을 정하는 게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다"며 "연동형 비례대표는 비례대표 명부에 대한 투표율로 전체 지역구 의석수까지 조정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명백한 위헌"이라고 못박았다.
정개특위 한국당 간사를 맡고 있는 정유섭 의원 역시 19일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연동형은 '위헌'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 의원은 "연동형은 2001년도 헌법 재판소 재판에서 지역구 득표로 비례 대표를 결정하는 게 위헌이라고 했다"며 "지역구에 투표한 표의 등가성하고 정당 득표에 투표한 표의 등가성에서 정당 득표가 훨씬 우월한 위치를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요컨대, 표의 등가성이 다르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2001년 헌재 판결을 인용해 연동형은 위헌이라 주장하는 것은 판결의 취지를 오도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시까지만 해도 선거법은 '1인 1표제' 방식이었다. 유권자는 정당이 아닌 지역구 후보에게만 투표를 했다. 헌재 판결은 후보에 대한 투표를 소속 정당에 대한 지지로 해석해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취지였다.
이후 유권자가 후보와 정당에 각각 투표하는 '1인 2표제'로 선거법이 개정됐다. 따라서 연동형이 위헌이라는 한국당의 주장은 헌재의 당시 판결 취지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 후보와 정당에 각각 투표하는 현행 선거제도에서는 비례대표 의석이 지역구 의석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한국당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각계각층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현행 선거제도의 폐해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원내대표 간 합의조차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어 버리고, 말도 안 되는 근거로 '비례대표 폐지', '연동형 위헌'을 주장하는 한국당의 행태만 보더라도 선거제도가 개혁돼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정 의원이 이날 방송에서 "그런데 자유한국당도 전에 연동제 동의하지 않으셨느냐. 왜 지금에 와서 연동제는 위헌이다 이러시는 거냐"는 시청자 질문에 대응하는 자세를 유심히 살펴 보라. 그런 적 없다는 오리발과 질문의 논점을 이탈하는 딴청부리기로 일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연동제 동의를 우리가 했나요? 저는 초지일관 제가 정개특위 들어온 다음부터 지금까지 연동제는 안 된다. 연동제는 이건 맞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했어요"(정 의원)
"정 의원님은 그러셨어요?"(사회자)
"대통령제 하에서 맞지 않는 제도를 왜 자꾸 연동제를 하느냐. 저는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정 의원)
"그러니까 국민의 민심, 이것을 선거에 더 많이 포용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사회자)
"그러니까 저희가 비례제를 늘리자. 그런 거에 대해서 제가 반대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연동형에 대해서는 제가 동의하질 않았습니다. 연동형은 위헌성 있고 초과 의석이 나오고 정당 간의 선거 과정에서 담합과 꼼수가 나오고 대통령제하고 맞지 않기 때문에"(정 의원)
"정 의원 생각은 그러셨다는 거예요?"(사회자)
"그래서 제가 초지일관 연동형에 대해서는 반대를 했어요"(정 의원)
"알겠습니다. 정 의원은 그러셨는데. 그런데 사실은 그 당시 보도된 거 제가 기억하기로도 연동형 비례 대표를 다 동의했던 걸로"(사회자)
"김종민 의원하고 저희가 정개특위를 처음에 시작할 때부터 같이했기 때문에 제 입장은 분명히 했습니다"(정 의원)
"알겠습니다"(사회자)
"정유섭 의원이 반대한 건 제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데 나경원 원내대표께서 5당 원내 대표 협상에서는 ‘연동형 비례 대표제의 도입을 위해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적극 검토는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도장 찍어놓고 한 번도 적극 검토를 안 하셨어요"(김종민 민주당 의원·정개특위 여당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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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핵심은 '연동형에 동의했던 한국당이 왜 이제와서 반대하느냐'였다. 그러나 정 의원은 자신은 초지일관 연동형에 반대해 왔다고 딴소리다. 보다 못한 사회자가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하지 않았느냐'고 거듭 확인해도 '자기는 그런 적 없다'며 질문의 요지를 피해가고 있다. 그러나 시청자가, 국민이 정말 궁금해하는 것은 연동형에 반대하는 정 의원의 신념이 아니라 한국당이 입장을 바꾼 이유다.
주지하다시피 나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여야 원내대표 협상을 통해 올해 1월 말까지 선거제도 개혁안을 합의·처리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그저 말 뿐이었다. 내내 뒷짐지고 있다가 선거구 획정 시한이 다 돼서야 마지못해 자체 개혁안을 제시했을 뿐이다. 그것도 위헌 시비에 휘말린 비례대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안이다.
한국당은 과거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시사한 적이 있다. 지난해 11월 2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민주평화당과 정치개혁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한국정당발전과 선거제도개혁> 토론회에 참석한 김성태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는 "국민의 대표성과 비례성 강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현행 소선거구제의 직격탄을 맞자 당내 일각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차기 총선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비례성을 보장하는 선거제도에 관심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문재인 정부의 실책과 정책적 혼선, 보수 결집 등으로 지지율이 상승하자 한국당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올해 1월 말까지 선거제도 개혁안을 처리하기로 한 여야 합의 역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휴지조각이 됐다.
선거제도 개혁 전향적 검토, 선거제도 합의처리 약속이 하룻밤의 꿈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이면에는 이처럼 한국당의 무책임과 말 바꾸기 행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당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입장을 교묘히 바꾸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하는 정 의원이 정개특위 간사라는 사실부터가 한국당의 속내를 짐작케 한다.
유 이사장의 지적처럼 한국당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이상 선거제도 개혁은 이번에도 무위에 그칠 공산이 크다. 원내 총사령탑인 원내대표가 자신이 직접 사인했던 여야 합의를 하루 아침에 뒤집는 당론을 제시하는 형국이니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답답한 국면이 좀처럼 끝날 줄 모르고 있다.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을 가동한다 해도 한국당이 "의원직 총사퇴"를 시사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역시 극단적 대결정치와 망국적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현행 선거제도가 만들어낸 후과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득권 거대정당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는 현행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정치발전도, 정치혁신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보이콧과 몽니, 반대를 위한 반대로 점철된 20대 국회의 처참한 실상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유권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요구만이 이 질곡을 끝낼 수 있다. 바꾸라고, 이제 그만 기득권을 포기하라고 외치고 또 외쳐야 한다. 정책적 대안이나 비전 제시보다 상대방의 실책으로 이득을 챙기려는 정치 풍토, 선거 때마다 카멜레온처럼 입장을 바꿔가며 유권자를 기만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진저리치는 상황을 이제는 정말 끝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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