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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로는 한 줌도 안 되죠. 그런데 워낙 시간들이 많은 분들이고 그분들은 또 그동안 한 2년간 예행연습들을 많이 해서 지금 전당대회를 거의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데 참 이건 정말 자유한국당의 쥐약이죠, 쥐약. 쥐약 같은 존재인데 그리고 저는 태극기부대, 태극기세력이라는 말도 너무 태극기를 모욕하는 것 같아서 정말 듣기 싫어요. 태극기를 진짜 존중한다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안 되죠"
22일 KBS '오태훈의 시사본부'에 출연한 정두언 전 한나라당 의원이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합동 연설회장에서 태극기부대 존재감이 상당하다. 이게 실제로 표로는 얼마나 반영된다고 보나"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정 전 의원의 발언 중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최근 만만찮은 세를 과시하고 있는 '태극기부대'를 가리켜 자유한국당의 "쥐약"이라 표현한 부분이다. 세간의 우려와 비난을 받는 태극기부대와 엮일수록 한국당에 좋을 것이 없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정 전 의원의 인식은 유권자의 정치 이념과 연계해 보면 설득력이 대단히 높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진보·중도 이념 성향 비율은 각각 '30%·30%·40%'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이유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은 선거 때마다 중도·무당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경주해왔다.
그런데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영향으로 이념 지형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합리적 보수층이 이탈하고 중도·무당층이 진보 쪽으로 옮기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한국당은 대폭락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같은 흐름이 2년 가까이 지속돼 왔다. 민주당은 40%대의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해왔고, 한국당은 10%대 박스권에 갇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정부 여당의 실책과 사건·사고 등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한국당의 지지율이 조금씩 오름세를 타기 시작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9일~31일 전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 따르면, 한국당은 21%의 지지율로 국정농단 사태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당의 지지율 상승은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에 실망해 등을 돌린 합리적 보수층이 돌아오고, 정부 여당의 잇따른 악재에 중도·무당층 일부가 한국당 지지로 돌아선 결과로 보인다. 한국당으로서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그러나 '5·18 망언' 사태와 전당대회에서 드러난 태극기부대의 극우·폭력적 행태가 연일 논란이 되면서 상승세를 타던 한국당 지지율에 제동이 걸렸다. 보편적 상식을 허무는 시대착오적인 색깔론, 국민정서에 배치되는 퇴행적 인식과 태도가 한국당의 발목을 잡은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당권주자들의 인식이다. 오세훈 후보가 유일하게 '중도개혁보수'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가운데 황교안·김진태 후보는 강경 보수의 이미지를 강화시켜 당권에 도전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당이 보수우경화 조짐을 보이면서 오 후보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 당초 황 후보와 당권을 다툴 것으로 예측됐던 오 후보는 태극기부대를 위시한 강경보수층의 집중 공세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태극기부대를 등에 업은 김 후보에 밀려 2위 자리도 위태롭다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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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당권이 유력한 황 후보의 반헌법적인 인식과 태도다. 당 대표 출마 선언 이후 '배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뜻) 논란에 휩싸였던 황 후보는 이후 박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층인 태극기부대를 껴안으려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헌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인식을 잇따라 드러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9일 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황 후보는 "저는 대통령께서 그 어려움을 당하신 것을 보고 최대한 잘 도와드리고자 했다"며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요청했던 수사 기간 연장을 불허한 일화를 소개했다. 당 안팎에서 일고 있던 배박 논란을 의식해 해명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황 후보의 발언은 외려 더 큰 파장을 낳았다. 당시의 특검 연장 요청 거부가 박 전 대통령을 위한 정치적 이유에서였다고 실토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공적 권력 사용에 주관적 감정을 개입한 것으로 비치면서 황 후보는 민주당 등으로부터 "국정농단 공범"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19일 당대표 후보 TV토론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돈 한 푼 받은 거 입증이 되지 않았다. 과연 탄핵이 타당한 것인지 동의할 수 없다"며 "형사사법 절차가 진행되는 중에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있었다.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요컨대, 절차적 하자가 있기 때문에 탄핵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탄핵 부정' 발언의 여진은 컸다. 헌법절차에 따라 국회에서 소추안이 의결되고, 이후 헌법재판소의 심의 과정을 거쳐 재판관 전원일치의 판결로 인용된 탄핵의 정당성을 황 후보가 부정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불소추특권'이 있는 대통령은 내란이나 외환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임기 중 처벌을 받지 않는다. 탄핵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다. 일반적인 사법절차로는 법적 심판을 내리기 어려운 대통령·국무총리·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 등의 고위공직자가 중대한 법 위배를 했을 경우 법률적 절차에 따라 의회가 소추해서 파면 또는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역시 이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탄핵의 절차적 정당성은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문에 잘 드러나 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회의 탄핵소추가결 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위법이 없으며, 다른 적법요건에 어떠한 흠결이 없다"며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라고 적시한 바 있다.
발언 이후 논란이 확산되자 황 후보는 "'탄핵이 적절했나'라는 질문에 O, X로 답하라 했지만, 사실 세모로 답하려 했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황 후보를 향한 세간의 비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황 후보의 문제적 인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최순실씨의 태블릿 PC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며 또다시 논란에 불을 지폈다.
21일 KBS가 주관한 당 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김진태 의원이 '태블릿 PC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느냐'고 묻자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보고 있다"라고 답한 것.
그러나 '태블릿 PC 조작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미 '가짜뉴스'로 판명난 사안이다. 법원 역시 태극기부대와 일베 등 일부 극우세력이 주장해온 조작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 1심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지난 2018년 4월 7일 판결에서 "태블릿 PC에서 발견된 문건을 정호성이 최씨에게 전달한 기간엔 태블릿 PC를 최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최씨 측의 '기획·조작' 주장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책과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태블릿 PC 조작설을 끊임없이 제기해온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 역시 법원에 의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2월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주영 판사는 "자신에 부여된 공적 책임을 외면하고,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사실확인을 위한 절차를 수행하지 않은 채 반복적 허위사실을 보도했다"며 변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이밖에도 태블릿 PC의 주인이 최씨라는 증거는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황 후보는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력이 퍼트리고 있는 가짜뉴스를 공개석상에서 거론하며 다시 한 번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역임했던 인사임을 상기하면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거 유입된 태극기부대가 목소리를 내면서 수구보수적 색채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황 후보가 헌법질서와 민주주의 정신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배경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념적 선명성을 앞세워 당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태극기부대를 끌어안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황 후보의 전략적 선택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가장 큰 문제는 황 후보가 태극기부대의 입맛에 맞는 행보를 이어가면 갈수록 그에 비례해 국정농단과 탄핵의 이미지 역시 뚜렷해진다는 점이다. 이는 현격히 보수우경화 조짐을 드러내보이고 있는 한국당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뭐 언제적 얘기들을 하고 앉아 있는지 미래를 얘기해도 시원치 않은데 참 너무 퇴행적으로 전당대회가 가는 것 같아서 절망적입니다. 이래서 자유한국당 집권하겠어요? 집권은커녕 총선에서도 필패할 것 같은데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수구·반동적 행태는 결국 보편적 상식·가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시대를 거꾸로 돌리려는 퇴행적 행보가 스스로를 옥죄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는 앞서 살펴본 이념 지형과 맞물려 생각해보면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극단적 우경화의 덫에 빠져있는 한국당이 정 전 의원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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