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이른바, '탁현민방지법'을 발의했다. 성 관련 논란 공직자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비례대표)은 지난달 28일 성폭행·성희롱 등 성 관련 비위 공직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법안은 여성가족부 장관이 성차별·성폭력 등의 행위를 했다고 인정되는 공무원에 대해서 소속 장관 또는 임용권자에게 필요한 징계조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징계를 요청받은 장관 또는 임용권자는 그 결과를 반드시 여가부 장관에게 통지해야만 한다. 여성의 권익 증진을 담담하는 주무부처의 수장인 여가부 장관의 권한이 그만큼 강화된 것이다.
윤 의원은 "탁현민 행정관의 언행, 연이은 공무원들의 성범죄로 많은 여성들이 상처와 충격을 받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뚜렷한 대책을 마련해오지 못했다"며 "이러한 이들이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공직자로 임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공직자의 성범죄에 엄중히 책임을 묻는 건 지극히 당연한 처사다. 그런 이유로 공직자의 성 관련 비위에 대해 징계를 강화하는 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윤 의원의 인식에 공감한다. 안태근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시작으로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미투' 운동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잣대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탁현민방지법' 발의를 선의로 이해한다 쳐도, 남성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성차별과 성폭력은 '탁 행정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사안이다. 같은 논리라면 윤 의원은 홍준표 대표나 같은 당 선배·동료 의원들의 낯뜨거운 여성 인식부터 문제를 제기했어야 옳다. 성차별·성폭력에 관한한, 한국당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당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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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한국당의 성 관련 추문의 역사는 길고도 깊다. 최연희 전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 정형근 전 의원의 이른바 '묵주사건', 정우택 의원의 '관찰사 관기 발언', 강용석 전 의원의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김형태 전 의원의 '제수 성추행 의혹', 김무성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논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골프장 캐디 성추행 사건', 심학봉 전 의원의 '성폭행 논란', 홍준표 대표의 '돼지발정제 논란' 등 일일히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성 관련 비위 사례를 한국당 소속 지자체장이나 당 실무자로 확대할 경우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탁현민방지법'을 대표발의한 윤 의원에게 되묻고 싶다. 윤 의원은 자당 내에 만연해 있는 저급한 여성 인식에는 어떤 문제 의식을 지니고 있는가. 윤 의원은 단 한 번이라도 당 내부에 여성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한 적이 있는가. 삐뚫어진 남성 우월주의의 산물인 양성불평등을 '탁 행정관' 개인의 문제로 귀착시키는 저의는 무엇인가.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법안 발의의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정치적 의도를 말하려는 것이다. 젠더 논란의 본질은 남성 권력과 계급에 의한 억압과 착취다. 위계와 서열 문화 속에 도사리고 있는 남성의 사회적 약자(여성)에 대한 폭력과 공격이다. 권위적인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를 특정 개인의 문제로 가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윤 의원은 권력과 계급의 문제를 '탁 행정관' 개인의 문제로 논점을 이탈시켜 버린다. 이렇게 되면 권력과 계급, 지위를 악용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가 여야 사이의 정쟁으로 희석되고 변질되어 버리고 만다. 우리 사회를 뜨겁게 만들고 있는 젠더 논란의 본질이 사라지고 여야의 소모적 논쟁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서 검사의 폭로 이후, 권력과 왜곡된 성문화 뒤에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던 권위주의와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적 폭력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고 있는 중이다. 한번 물꼬가 터지자 그간 꼭꼭 숨겨져있던 남성 권력의 추악함이 가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문화예술계, 학계, 종교계 등 각계각층에서 추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저명 인사들의 성추문은 우리 사회의 조악한 여성 인식과 젠더 감수성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준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간 완악한 남성 '마초주의'의 지배를 받아왔으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이 기회에 왜곡되고 일그러진 성별 권력 관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가열차다. 2차 피해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봇물터지듯 터져나오고 있는 '미투' 운동이 그 방증일 것이다.
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탁현민방지법'이 불쾌한 것은 그 때문이다. '미투' 운동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도드라질 뿐, 남성권력에 저항하는 여성 운동의 본질과는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미투' 운동이 남성권력에 의해 침윤당한 여성 인권을 바로 세우기 위한 '양성평등'의 실현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터다. 여성 인권과 권익 신장. 남성권력만이 장애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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