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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일성 가면' 맹공 펴는 보수야당, 이쯤되면 '보수'가 아니라 '웬수'

평창 동계올림픽이 드디어 막이 올랐다. 9일 진행된 개막식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날 개막식은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한 선수단의 공동입장, 평화를 상징하는 인면조, 달항아리를 형상화한 성화대, 마지막 성화주자로 깜짝 등장한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에 이르기까지 풍성한 볼거리와 감동을 자아냈다는 평가다.

외신들의 호평도 잇따랐다. 외신들은 "극적인 올림픽이 시작됐다"(미국 CNN), "(김연아 선수의 성화 점화는) 매우 멋진 개막행사의 마무리였다"(영국 BBC), "예상 못했던 통합의 모습으로 남북한이 평화를 상징하는 불꽃 아래 나란히 앉아있다"(AP통신)는 등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외신들은 특히 남북한 동시입장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관련 소식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긴장감에 휩싸여있던 남북 관계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극적인 해빙무드를 맞게 되자 외신들의 기대와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했던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파격적 행동이 연일 화제가 됐다. 김일성의 직계가족인 이른바 '백두혈통'의 첫 방남으로 더욱 화제가 됐던 김여정 제1부부장은 2박 3일 동안 가급적 언론 노출을 피하면서도 카메라에 포착될 때는 미소를 짓는 등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개회식에서 보여준 파격이었다. 북한 대표단을 이끌었던 실질적 실세였던 그는 태극기가 게양되며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탈북자 출신 주성하 기자는 11일 페이스북에 "아마 북한 사람이 '적국'인 한국 국기 게양과 국가 제창에 일어선 것은 처음 아닐까 싶다"며 "그건 북에서 정치범으로 몰릴 일이다"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주 기자는 이어 "지금까지 최고존엄이 어떻고, 공화국 존엄이 어떻고 하며 손톱만큼도 양보하지 않고 펄펄 뛰던 북한이 그런 것까지 감수했다니, 이건 북한이 엄청나게 유연해질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면서 "한국의 청와대 고위인사가 평양에 가서 북 인공기 게양과 국가가 울릴 때 기립했다면 어떤 비난 공세에 직면했을지 상상하면 의미가 와닿을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이날 김여정 제1부부장이 선보인 파격은 남북관계를 디딤돌 삼아 북미관계를 개선해보려는 북한의 전략적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의 절박한 대화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같은 속내를 감안한다 해도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위해 상당한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8일과 11일 두 차례 열린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최대한 정치적 색채를 배제한 공연 내용으로 정치적 논란을 피해가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같은 북한의 태도 변화는 보수야당의 행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올림픽 개막 전부터 '평양올림픽' 프레임을 강조하며 '남남갈등'을 부추긴다고 비판을 받았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후에도 정치공세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유치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할 시국에 거짓 선동으로 국론 분열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첫 경기에서 불거진 '김일성 가면' 논란이 그 비근한 예일 것이다.


ⓒ 오마이뉴스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쓰고 하키팀을 응원했다고 <노컷뉴스>가 보도하자 보수야당은 문재인 정부와 북한의 사과를 요구하며 일제히 총공세에 나섰다. 한국당은 전희경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누가 봐도 김일성 얼굴인데 통일부 눈에만 달리 보이냐"며 "북한에 사과 요구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으라. 못하겠다면 북한응원단을 당장 돌려보내라"고 맹비난했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권성주 바른정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가면 속을 알고 대화하나"라며 "가면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알면서도 전 세계인 앞에서 집단으로 들어 보였고, 순진하게 평화를 외치던 우리 자존심은 농락당했다"고 비판했고, 김근철 국민의당 대변인은 "북한응원단의 김일성 가면 응원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국민과 언론이 보기에 김일성 가면으로 인식하면 김일성 가면이다"라는 황당한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보수야당의 주장은 전형적인 마타도어인 것으로 밝혀졌다. 통일부가 북한 측에 관련 내용을 확인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논란의 시발점인 <노컷뉴스>마저 오보라고 사과하며 해당 기사를 삭제한 마당이다. 심지어 탈북자 출신의 한 북한전문가는 11일 채널A에 출연에 "김일성 가면을 실제로 만들어 쓰면 총살감이다"라고 지적하며 논란을 일축하기도 했다.

시쳇말로 헛물을 켜도 제대로 켰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김일성 가면' 논란은 문재인 정부와 관련된 일이라면 앞뒤 가릴 것 없이 무조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보수야당의 맹목적 관성이 만들어낸 웃지못할 촌극이다. 그러나 보수야당은 상관없다는 투다. 정부의 부인과 <노컷뉴스> 측의 오보 인정, 북한전문가의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정치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남북한이 동시입장하자 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각국의 귀빈, 심지어 보수야당의 눈엣가시인 북한의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까지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그 시각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남의 나라 잔치에 와서 해서는 안 될 외교적 결례를 범한 셈이다. 앞서 펜스와 아베는 문 대통령이 주최하는개막식 리셉션장에도 늦게 나타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아베는 9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며 "한미 군사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한미 군사합동훈련은 우리나라의 주권 문제로 아베가 나서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할 사안이 전혀 아니다. 이는 명백한 주권 침해이자 내정 간섭이다. 보수야당이 진짜 '보수'를 자처한다면 '김일성 가면'이 아니라 펜스와 아베의 무례함을 먼저 지적해야 함이 옳다. 이는 보수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국가와 위신과 품격이 달린 문제가 아닌가. 

그러나 보수야당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없다. 오보로 판명난 '김일성 가면' 논란에는 거품을 물고 달려들면서, 국가의 품격을 훼손한 미국과 일본의 외교적 무례와 결례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기회의 박탈과 공정성을 들먹이며 사생결단하듯 걸고 넘어지더니 정작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경기에서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도 그들이었다. 나라가 망할 듯이 난리법석을 펴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행태다. 


주지하다시피 평창올림픽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있는 지구촌 겨울 축제다. 외신들이 평가하고 있는 것처럼 꽉 막혀있던 남북 관계의 물꼬를 열어줄 것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당리당략과 정파적 시각에서 벗어나 국익과 국격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그러나 '우리' 보수야당은 달리 생각하는 모양이다. 평창올림픽의 성공과 한반도 평화 정착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무분별한 정치공세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까지 나서서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나름의 성의를 보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염치가 없으면 '정치'도 없다더니, 이제 보니 보수야당의 모습이 그 짝이다. 이쯤되면 '보수'라 쓰고 '웬수'라 읽어도 무방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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