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선거제도 개편 말 바꾸는 민주당의 오만과 착각

"아시다시피 2015년부터 더불어민주당은 일관되게 선거 제도가 개혁돼야 한다면 연동형 비례대표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해 왔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자당의 이야기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권역별 비례대표제였다라고 하면서 기존의 의견을 번복하는 발언이 나오면서 상당히 저는 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이 됐죠."


ⓒ 오마이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뭇매를 맞고 있다.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해 말을 바꾸면서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2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대선 공약이었던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서 발을 빼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작심 비판한 것이다. 


비판적 목소리는 비단 정의당에서만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역시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민주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정책회의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통령이 총선과 대선에서 약속했던 것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에도 언급하고 여야정상설협의체 합의문에도 명시된 내용"이라며 "민주당과 한국당은 기득권에 집착하지 말고 즉각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동참하길 촉구한다"고 날을 세웠다. 

정동영 평화당 대표 역시 27일 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선거제도 개편에 미온적인 민주당을 질타했다. 정 대표는 "이 정부를 탄생시켜준 국민의 뜻을 망각한 (것으로), 저는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앞서 25일에도 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 등 야3당은 국회 정론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연 바 있다. 

야3당이 이처럼 한목소리로 민주당을 비토하고 있는 데에는 이 대표의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가 지난 16일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 부부 동반 만찬에서 "지금 논의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제1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얻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직능대표나 전문가들을 영입할 기회를 갖기 어려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 대표는 잘못된 보도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후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부정하는 듯한 이 대표의 언행은 계속됐다.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이 대표는 "그동안 민주당이 공약한 것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며 "비례성이 약화되는 것을 보정하는 방안으로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이지 100% 비례대표를 몰아준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혀 야3당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단순다수제인 소선거구제는 민의를 심각하게 왜곡해 대의민주주의의 취지를 거스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야3당은 물론 각계각층에서 선거제도 개편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는 이유다. 반면 소선거구제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를 무너뜨리고, 정당 간의 합리적 정책 경쟁을 유도해 내 결과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강화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 오마이뉴스


민주당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채택해왔다. 지난 2015년 8월 의원총회에서 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시 선관위가 제안했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의결했다. 선관위 안은 전국 단위의 득표율을 권역별로 나눴다는 차이가 있을 뿐,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한다는 점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선관위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2대 1(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후에도 민주당은 연동형에 기반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문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대선은 물론이고 2012년 18대 대선에서도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선거제도 개편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문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선거제도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문 대통령의 의지는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해 배분돼야 한다'고 명시했던 정부 개헌안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20대 총선의 경우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합산득표율은 65% 정도였지만, 두 당의 의석 점유율은 80%가 넘었고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합산득표율은 약 28%였지만 두 당의 의석점유율은 15%가 채 되지 않았다"며 "향후 국회에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국회 구성에 온전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해 주실 것을 희망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선거법 개정 논의는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소선거구제의 직격탄을 맞은 자유한국당이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지금이 선거제도 개편의 적기라는 것이 중론임에도 상황은 좀처럼 달라질 기미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당이 여당이 되고 난 뒤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장, 야3당이 선거제도 개편에 적극적인 입장이지만 정작 이를 주도해야 할 민주당은 이전과는 달라진 행태를 보이고 있다. 

"10년을 해봤자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복지정책 등이 무너지는 데 불과 3~4년밖에 안 걸렸다. 복지 정책을 뿌기내리기 위해선 20년이 아니라 더 오랜 기간 가야 한다...(중략)...우리 당이 아니면 집권해서 개혁 진영의 중심을 잡아나갈 역량이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 우리가 유일한 책임 정당이라고 생각하고 이끌어나가야 한다. 내후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2022년 대선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는 준비를 지금부터 잘 해 나가기 위해 당 현대화 계획을 세워나가고 있다"

지난 25일 '중구난방-더불어민주당의 미래를 생각하는 당원토론회'에 참석했던 이 대표의 발언 중 일부다. 민주당이 변심(?)하게 된 속내가 그의 발언 속에 생생이 묘사돼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게 될 경우 의석수가 줄어들게 돼 손해라는 것이다. 교섭단체에게 일정 정도의 비례대표 의석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터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다수당의 심리가 여지없이 작동하고 있다. 놀랍게도, 소선거구제의 수혜를 톡톡히 누려왔던 한국당이 그동안 선거제도 개편에 소극적이었던 것과 같은 이유다. 

장기집권을 위한 민주당의 '당 현대화' 계획 속에 선거제도 개편 말 바꾸기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대표의 발언 속에 다수당의 횡포에 오랫동안 노출돼 온 대한민국 정치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집권보다 어려운 것이 선거제도 개편이다. 민주당이 재집권 하는 데는 10년이 소요됐지만 소선거구제는 갖가지 폐단에도 불구하고 30년 째 손도 못대고 있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유일한 책임 정당이라는 오만과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권력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 바람 언덕이 1인 미디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