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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도로 '새누리당' 돼 가는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 친박계와 비박계 중진 의원들이 수감 중인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재판 결의안' 마련을 논의했다는 소식이다. 4일 복수의 언론은 비박계 김무성·권성동 의원과 친박계 홍문종·윤상현 의원이 지난달 29일 만나 당내 계파 갈등 극복 방안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재판 촉구 결의안을 추진하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무성 의원과 권성동 의원은 이 자리에서 각각 "탄핵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박 전 대통령이 구속재판을 받는 건 심하다고 생각한다", "불구속 재판이 원칙인데 두 전직 대통령을 모두 구속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홍문종 의원이 비박계 의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해 접점을 찾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오마이뉴스


한 편의 '소극'(笑劇)을 보는 것 같다. 김무성·권성동 의원이 누구던가.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태와 박 전 대통령의 헌정질서 유린을 막지 못한 것을 사죄하며 탄핵에 앞장섰던 장본인들이 아니던가. 박근혜 사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현 한국당)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무너진 보수를 재건하겠다며 바른정당을 창당시켰던 주역들이 아닌가 말이다. 


그들의 마음이 "박근혜 정부 이름으로 대통령 헌법위반과 국정농단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 여러분께 사죄하며 용서를 바란다"(2017년 1월 24일 바른정당 창당대회, 김무성 의원), "그들은 공적으로 행사되어야 할 권력을 남용하고 특권계급 행사를 하면서, 민주주의를 희롱하고 법과 정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2017년 2월 27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 권성동 의원)는 발언 속에 절절히 녹아있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들이 구속수사가 부당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불구속 재판을 입에 담고 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또 없다. 

탄핵에 앞장섰던 두 사람이 '박 전 대통령 불구속 재판 결의안'을 거론한 배경은 최근의 한국당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원내대표 선거와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국당 물밑에서는 계파간 치열한 기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4선의 나경원·유기준, 3선의 김학용·김영우 의원이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원내대표 경선은 차기 당권의 향방을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세 결집을 위한 단일화가 변수로 떠오르고 있지만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은 비박계의 대표주자격인 김학용 의원과 잔류파인 나경원 의원의 2파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친박계가 암묵적으로 나경원 의원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관건은 중립지대에 머물고 있는 의원들의 표심이다. 친박계와 비박계의 세가 엇비슷한 상황에서 원내대표 경선의 향배는 결국 중립지대 의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평가다. 

김무성 의원 등 비박계가 '박 전 대통령 불구속 재판 결의서'를 추진하려는 것은 이같은 상황을 염두해 둔 포석으로 보인다. 비박계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탄핵 찬성과 보수 분열의 책임론을 희석시키는 한편,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로 중립지대의 표심을 끌어모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비박계의 의도는 친박계의 반발에 부딪혔다. 회동에 참석했던 홍문종 의원은 탄핵에 찬성한 비박계 의원들의 사과가 먼저라며 제안을 일축했다. 친박계 좌장으로 지난 6월 한국당을 탈당한 서청원 의원(무소속)은 페이스북에 "정치를 오랫동안 해왔지만 이런 후안무치한 일은 처음"이라며 "복당한 사람들은 국민에 대해 사과하고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나서 다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맹비난을 퍼붓기까지 했다.   

'박 전 대통령 불구속 재판 결의안' 해프닝이 시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친박계와 비박계 사이의 간극이 재확인됐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사과하라"는 친박계와 "그럴 수 없다"는 비박계는 비유하자면 물과 기름이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해묵은 갈등이 1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친박학살', '친이학살'과 같은 살벌한 계파싸움이 펼쳐지는가 하면, 국정농단과 탄핵 과정에서는 끝내 갈라서는 파국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세력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반쪽이기는 하지만 다시 하나가 됐다.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사이이지만 그들은 어떨 수 없이 한 배를 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몸집을 키우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뼛속 깊이 체감하고 있는 탓이다. 그런 면에서 '반문연대, '보수대통합', '제3지대' 등은 결집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비전과 가치가 달라도, 이전투구의 계파 싸움이 끊이질 않아도 함께 할 수 있는 이유다.

저들의 기묘한 동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더 볼 일 없다는 듯 박 터지게 싸우고 등을 돌렸다가도 어느새 다시 모여 대여투쟁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바른미래당 탈당파 역시 원대복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조만간 '완전체'로 다시 재결합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당 지지율은 최근 오름새로 돌아서 탄핵 이전의 수준을 회복했다. 당을 떠났던 이들도 하나 둘 다시 모여들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바른정당 의원 12명이 깜짝 복당한 데 이어, 2017년 11월에는 김무성 의원 등 8명이 돌아왔다. 지방선거에선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슬그머니 복귀하더니, 최근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입당했다. 그런데 가만, 이 모습 어딘가 대단히 낯이 익다. 한국당에게서 낯설지 않은 향기가 난다.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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