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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이 이뤄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대법원이 22일 양승태 대법원 당시 '재판거래' 등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판사 13명의 이름을 공개해 주목된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6월 1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고등법원 부장판사급 4명, 지방법원 부장판사급 7명, 평판사 2명 등 총 13명을 법관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바 있다.
당시 김 대법원장은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고 징계절차에 회부했다"며 "관여 정도와 담당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 징계절차가 끝날 때까지 일부 대상자는 재판 업무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심의기일을 열었으나 징계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대법원은 다음달 3일 3차 심의기일을 열어 이들에 대한 징계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방침이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법관들에 대한 탄핵 여부는 정국을 뜨겁게 하는 쟁점 중의 하나다. 이와 관련 탄핵소추가 진행질 경우 그 대상은 징계 절차에 올라있는 법관들을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법관 탄핵소추를 논의 중인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이들 13명에서 가감해 탄핵소추 대상자를 선정하는 실무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안팎에서도 법관 탄핵 요구는 뜨겁다. 앞서 19일 각급 법원의 대표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격론 끝에 "우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해 정부 관계자가 재판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해 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해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절차 진행에 관해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는 의견서를 채택했다.
22일에는 김호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태훈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법학자와 변호사 총 631명이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설치와 법관 탄핵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국회에 전달했다. 이들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더이상 위헌 논란에 발목잡혀서는 안 된다"며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법관으로서의 기본적 신뢰를 저버린 핵심 법관에 대한 신속한 탄핵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법농단 연루 의혹에 휩싸인 법관들에 대한 탄핵 요구가 거세지면서 세간의 이목은 국회가 실제 탄핵 소추에 나설 것인지에 집중되고 있다.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의원 3분의 1 이상의 찬성으로 발의되고, 재적의원 과반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물리적으로 더불어민주당(129석) 단독으로 탄핵소추안 발의가 가능하며, 평화당(14석)과 정의당(5석), 범여권 성향 무소속 의원들과 문희상 국회의장을 더하면 의결 요건까지 갖출 수 있다.
그러나 현실론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대 의사가 명확한 가운데 바른미래당 역시 법관 탄핵에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인민재판식 마녀사냥으로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는 일은 대단히 적절치 않다"고 강하게 비판했고,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역시 "검찰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고, 탄핵 대상을 국회가 특정하기도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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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탄핵을 적극 검토 중인 민주당도 내부적으로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탄핵안 제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보수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탄핵소추를 감행해야 하는 부담이 만만찮은 데다가, 탄핵안을 발의한다 해도 본회의 통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부는 물론이고 법관 탄핵소추 찬성을 당론으로 정한 평화당 안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상규 한국당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여 위원장은 국회의 법관 탄핵소추가 발의되면 소추위원장을 맡게 된다. 탄핵소추 절차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불분명한 가운데,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해도 법관 탄핵을 반대하는 여 위원장이 검사 역할을 해야 하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법농단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도 불구하고 법관 탄핵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탄핵을 둘러싼 정치공방이 불가피하겠지만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 것이라는 관측이다.
만약 실제로 이와 같이 상황이 전개된다면 비극도 이런 비극이 또 없다. 천인공노할 사법농단 사태가 몰고온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대법원 자체 조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혐의를 입증할 정황 증거들은 이미 차고도 넘칠만큼 드러난 상황이다.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는 징계 대상에 올라있는 법관들의 재판개입 행태가 적나라하게 적시돼 있다.
특별재판부 설치 요구에 기름을 부은 법원의 낯뜨거운 '제 식구 감싸기'는 또 어떤가. 사법농단의 진원지인 법원행정처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관련 자료의 제출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며 수사 방해 의혹에 휩싸였다. 그런가 하면 영장전담판사들은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된 압수수색 영장을 줄줄이 기각시키며 '방탄사법부'라는 오명까지 받았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이 빼돌린 대법원 재판기록 수만 건이 파기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법원의 행태가 대개 이랬다. 극에 달해 있는 사법불신 풍조는 사법부 스스로 초래한 셈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다.
법관 탄핵소추의 필요성에 의견을 모은 법관회의의 결정이 '만시지탄'에 가까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용기있는 결단에 찬사를 보내기에는 법원의 낯뜨거운 행태가 사회 일반의 상식을 이미 한참을 뛰어넘었다. 그런 면에서 사법권력을 농단한 법관에 대한 탄핵은 시대적 과제인 사법개혁의 정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통제를 위해서라도 사법농단에 가담한 법관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들에 대한 탄핵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공을 넘겨받은 국회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실제 탄핵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 해도) 그것이 끝은 아닐 터다. 법관 탄핵이 가로막히게 되면 사법부는 지금보다 더욱 곤궁한 처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는 입법부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국회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국가기관이 설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미 우리는 2016년 겨울 이것을 뜨겁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적폐청산, 사회개혁을 위한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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