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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순례 3개월, 박순자 6개월..황당하고 요상한 한국당 징계안

ⓒ 오마이뉴스

 

해당행위. 정당의 당원이 소속 정당에 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근래 들어 정치권에 해당행위란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특히 오늘 소개할 이 정당의 경우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해당행위와 관련해 여러모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막말과 망언, 사퇴거부 등 징계 사유도 참 가지가지다. 모두 눈치챘겠지만, 자유한국당 얘기다.

한국당 중앙윤리위원회가 23일 전체회의를 열고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직 사퇴를 거부하고 있는 박순자 의원에 대한 6개월 당원권 정지 징계안을 확정했다. 이번 징계로 박순자 의원은 내년 1월 말까지 당원권을 행사할 수 없게 돼 총선 공천 과정에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당 윤리위의 징계는 경고·당원권 정지·탈당 권유·제명 등으로, 이중 '당원권 정지'와 '제명'은 중징계로 분류된다.

한국당은 작년 7월 의원총회에서 20대 국회 후반기 국토위·예결위·외교통일위·복지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등 5개 상임위 위원장을 의원들이 1년씩 번갈아 맡기로 잠정적으로 합의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당은 지난 5일 열린 의총에서 해당 상임위원장 교체 작업에 착수했다. 원만하게 진행되는가 싶던 의총은 그러나 국토위에서 암초를 만났다. 박순자 의원이 위원장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박순자 의원은 이날 의총에서 입장문을 내고 "남은 위원장 임기를 이어받기로 한 홍문표 의원이 이미 한국당 몫의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지냈기 때문에 애초부터 상임위원장 대상이 아니다"라며 "당시 원내지도부와 국토위원회 상임위원장을 1년씩 나누는 데에 합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순자 의원이 버티기에 들어가자 한국당 분위기는 일순간에 뒤숭숭해졌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10일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 부분은 명백히 당의 기강에 관한 문제"라며 "당에서 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 절차에 착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박맹우 사무총장 역시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박 의원의 행태는) 21대 총선을 앞둔 중차대한 시점에 당내 갈등을 초래하고, 민심을 이탈시키는 심각한 해당행위"라며 징계요청서를 당 윤리위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순자 의원에 대한 윤리위 회부는 의총이 끝난지 닷새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윤리위의 징계 결정도 2주 만에 발빠르게 매듭져졌다. 한국당이 그만큼 박순자 의원의 버티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순자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는 5·18 망언 징계와는 확연히 대비돼 주목된다. 한국당은 지난 2월 8일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공동주최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서 불거진 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으로 크게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당시 공청회에서는 "종북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김순례 의원), "논리적으로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이종명 의원), "5·18 문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 된다"(김진태 의원) 등의 망언 릴레이가 펼쳐져 공분을 샀다.

그러나 당 안팎에 휘몰아친 엄청난 후폭풍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의 징계 절차는 이번과는 아주 달랐다. 당시 한국당은 전당대회에 출마했다는 이유로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해서는 징계를 유예하고, 이종명 의원만 제명하는 반쪽짜리 징계 결정을 내려 눈총을 받았다.

각계각층의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고, 5·18 망언 3인에 대한 의원직 제명을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치는가 하면, 급기야 당 지지율까지 쭉쭉 떨어지는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민심과 동떨어지는 징계안으로 불난 데 부채질을 한 것이다.

전당대회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당은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차일피일 징계를 미루다 4월 19일이 돼서야 '당원권 3개월 정지'(김순례 의원)와 '경고'(김진태) 처분을 내려 빈축을 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다가오자 마지못해 내린 여론 무마용 징계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제명' 처리된 이종명 의원의 경우는 더 황당하다. 말이 제명이지 이종명 의원에 대한 '제명'은 아직까지 확정된 것이 아니다. 한국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의원 제명은 의원총회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종명 의원에 대한 '제명안'은 아직 한국당 의총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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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5·18 망언으로 희생자와 유족, 시민에게 크나큰 상처를 안긴 세 사람에 대한 징계는 별 것(?) 아닌 것이 됐다. 3개월 당원권 정지가 풀린 김순례 의원은 최근 최고위원에 복귀했다. 경고 처분을 받았던 김진태 의원은 징계가 무색하게 특유의 걸죽한 입담을 과시하며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제명 처분을 받은 이종명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여전히 한국당 소속이다.

한국당 윤리위 규정 제20조는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하였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규칙을 위반하여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하였을 때', '정당한 이유 없이 당명에 불복하고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당의 위신을 훼손하였을 때' 징계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를 근거로 보더라도 5·18 망언과 국토위원장 버티기 중 무엇이 더 중차대한 윤리 위반인지는 어렵지 않게 가려낼 수 있다. 한국당 윤리위 규정에 따르면, 5.18 망언은 '당에 극히 유해'할 뿐 아니라, '그 결과로 민심의 이탈'을 초래한 심각한 해당 행위다. 당 지도부의 지시에 불복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윤리위 규정에 명시된 징계 사유의 순서만 보더라도 확연해진다.

더욱이 전자는 역사적·법적 평가가 명확히 내려진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부정하며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사건이고, 후자는 당 내부에서 벌어진 소위 '밥그릇 싸움'이다. 굳이 징계의 '경중'을 따져 볼 필요조차 없는, 일반인의 상식으로 보면 너무나 명확한 사안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달리 생각하는 모양이다.  반헌법적·반민주적 행태로 당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민심을 심각하게 이탈시킨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보다 지도부의 지시를 거부한 박순자 의원의 행위가 더 심각하다고 간주하는 것 같다.

5·18 망언 이후 한국당 윤리위가 김진태·김순례 의원의 징계를 확정하기까지 무려 71일이 소요됐다. 반면 지도부 지침에 반발해 국토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는 박순자 의원의 경우 의총 이후 딱 18일이 걸렸을 뿐이다. 그것도 김순례 의원이 받았던 3개월보다 두 배나 많은 6개월의 중징계다.

참으로 요상한 징계다. 광주의 희생으로 쌓아올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던 한국당이 지도부 방침을 따르지 않는 인사에게는 정치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엄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고개가 절로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르다. 한국당의 징계에는 확실히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이 '특별함'이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박순자 의원 징계 확정 소식이 알려지자 소셜네트워크 등에서는 징계 수위의 형평성을 지적하는 의견과 함께 한국당 지도부의 이중적 행태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뜨겁게 분출되고 있다. 

당을 민심과 이탈시키는 행위는 정작 누가 하고 있나.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당신이 한국당 당원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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