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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민이 박근혜에게 분노하는 진짜 이유

ⓒ 오마이뉴스


지난 14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는 '세월호 7시간 의혹'의 진실 규명에 촛점이 맞춰질 것이란 기대가 많았다. 이날 청문회에 청와대 의료진을 포함해 의료관련 증인들이 대거 참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문회 이후 대통령의 당일 행적을 둘러싼 궁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의혹만 더 커졌다.

이날 특위위원들의 질의는 대부분 대통령의 멍 자국과 '필러', '태반주사' 등 미용 시술 여부에 집중됐다.  대통령의 주치의를 비롯한 증인들 역시 한결 같이 참사 당일 미용 시술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증인들의 진술을 뒤집을만한 결정적 증거 역시 나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정작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세월호 7시간 의혹'은 밝혀지지 않았고, 대통령의 당일 행적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해명과 의료진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미용 주사나 시술을 받았을 것이란 의혹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미용 시술을 위한 마취 등의 상황이 아니라면 대통령의 행태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며 30여 차례의 보고와 지시를 내렸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근무하면서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명으로는 중대본에서 대통령이 보여준 횡설수설을 납득시키지 못한다. 국민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와중에 대통령이 관저에만 머물렀던 까닭과 대책회의는 고사하고 대면보고조차 없었던 이유 역시 설명하지 못한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참사 당일 대통령의 육성과 모습이 철저히 베일에 쌓여있는 탓이다. 마치 유령처럼 그 어디에서도 대통령의 목소리와 모습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국민은 속시원히 해명하라는데 억지와 궤변으로 사태의 본질을 비켜가고 있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대통령의 대리인단이 헌재에 제출한 탄핵심판 답변서야말로 보편적 상식을 비웃는 억지와 궤변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최근 공개된 답변서에는 '피청구인은 세월호 사고 당시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해경, 안보실 등 유관기관 등을 통해 피해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였고, 대규모 인명 피해 정황이 드러나자 신속하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가 현장 지휘하였는바, 피청구인이 생명권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였다'고 적시돼 있다.


만일 세월호 유가족이 이 답변서를 봤다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리라. 당시 대통령은 집무실 근처에는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은 채 숙소인 관저에 틀어박혀 있었다. 정상 근무 운운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며 후안무치하기 그지없다.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중대본 방문 준비 지시를 내린 시각은 오후 3시였다. 그로부터 대통령이 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중대본에  나타나기까지 2시간 15분이 더 소요됐다. 수백명 국민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절체절명의 시기에 머리 손질을 했다는 20분을 제외하면 대통령의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비정상', '무능', '태만', '직무유기'로 일관했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이것이  '정상', '최선', '신속', '노력'으로 치환될 수 있다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오죽하면 대통령의 묘연한 행적과 관련된 별의별 루머가 저잣거리를 돌아다닐까. 정상근무 여부는 고사하고 당일의 행적조차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마당에 저와 같은 뻔뻔한 답변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JTBC 뉴스>는 어제(19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대통령이 얼굴에 피부 시술을 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세월호 참사 닷새 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대통령의 얼굴 턱 부분이 부어오른 흔적과 함께 주사바늘 자국과 선명한 멍 자국을 확인한 것이다. 이 사진을 본 성형외과 전문의는 "나이가 들어감으로써 윤곽선이 울퉁불퉁해지는 걸 매끈하게 하기 위해서, 튀어나온 부분을 줄이기 위한 시술로 판단된다"는 의학적 소견을 나타냈다.

이날 <JTBC 뉴스>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대통령이 피부 시술을 받아온 정황이 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한 달 전인 2014년 3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규제개혁 위원회 당시의 대통령 얼굴 사진에서 총 네 곳의 주사바늘 자국과 멍 자국을 발견한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권영대 전문의는 이를 두고 '필러 시술'에 의한 자국일 것으로 분석했다. 이밖에도 <JTBC 뉴스>는 세월호 참사 약 한달 뒤인  2014년 5월 13일 국무회의 당시 대통령 얼굴의 멍 자국 의혹도 보도했다. 이 내용은 이미 지난 3차 청문회에서 제기된 바 있다.


이처럼 <JTBC 뉴스>의 보도는 대통령이 주기적으로 미용 시술을 받아온 정황을 담고 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전후로 미용 시술을 받은 의혹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구조에 최선을 다했다는 대통령과 "참사 당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가운데 적어도 구조의 골든 타임으로 불리던 그 시기에 피부 미용 시술을 받았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JTBC 뉴스>의 보도. 이 부조리극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참담하고 부끄럽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도 정책 결정과정에서 오판을 할 수도 있고, 그릇된 신념 때문에 사회를 혼란에 빠트릴 수도 있다. 무능할 수도, 심지어 부도덕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 헌정사는 대통령의 과오와 무능, 부도덕으로 얼룩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이전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무능과 부도덕은 물론이고 인간 본연의 인성마저 의심받는 탓이다.

유시민 작가는 지난 15일 <썰전>의 한 줄 논평에서 맹자의 '무수오지심 비인야(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를 인용했다.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그가 무능하기 때문도, 부도덕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위정자의 무능과 부도덕보다 더 무섭고 위험한 것은 실로 따로 있다. '무수오지심 비인야'. 아직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 모르는 대통령을 향한 국민적 분노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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