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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새누리 분당? 친박계나 비박계나 결국 '도긴개긴'

새누리당이 결국 쪼개지긴 쪼개질 모양이다. 비박계의 '유승민 비대위원장' 제의를 정우택 원내대표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비박계는 친박계가 이 제안을 거부하면 분당도 불사하겠다 공언해온 터였다. 비박계의 입장을 정우택 원내대표에게 전달한 정병국 의원은 "한두 명이 나가면 탈당이지만 집단이 당을 갈라치기 하면 분당"이라며 친박계를 압박했다.


그러나 정우택 원내대표는 비박계의 제안에 난색을 표했다. 그는 "유 의원은 우리 입장에선 반란군의 수괴"라며 "유 의원이 비대위원장이 되면 당이 풍비박산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애시당초 친박계가 눈엣가시 같은 '유승민 비대위원장' 제의를, 그것도 전권을 달라는 제의를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해 당내 패권을 장악한 친박계가 비박계의 눈치를 볼 이유가 전혀 없는 까닭이다.

최후통첩이나 다름없던 '유승민 비대위원장' 카드가 무산됨으로써 비박계의 동반 탈당은 이제 기정사실이 됐다. 결별이 임박한 가운데 관심은 이제 탈당 규모에 쏠린다. 비박계를 이끌고 있는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은 20일 오후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동반 탈당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 근본적인 상황 변화가 없다면 같이 탈당하겠다고 의견을 모은 것이다.


집단 탈당의 최대 변수였던 유승민 의원이 탈당 결심을 굳히자 정치권에서는 비박계의 탈당 규모가 최소 20명에서 최대 40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만약 탈당 규모가 40명에 육박한다면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넘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제3지대론(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주류인 친박계와 친문계에 대항하는 중도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을 주도할 수도 있다. 정치권이 비박계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다.



ⓒ 오마이뉴스



분당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일각에서는 '정말 새누리당이 쪼개질까'라는 의구심이 표출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위기의 순간 다시 결집하는 새누리당의 복원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너 죽고 너 살자'식의 극심한 계파 갈등과 반목에도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봉합에 성공해왔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친박계와 친이계의 피 터지는 골육상쟁에도 당을 깨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2008년 총선 당시 친이계에 의한 친박계 공천학살, 와신상담했던 친박계의 2012년 총선에서의 복수혈전, 2016년 총선 당시 친박계가 주도한 공천 파동과 그로 인한 총선 패배의 후유증에도 다시 의기투합했던 그들이었다. 이처럼 그들은 갈라설 듯 하면서도 다시 합치기를 여러차례 반복해왔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새누리당의 봉합술은 그들의 태생적 정치 환경에서 기인한다. 새누리당은 패권적 지역주의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정당이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는 한 지역 기반이 탄탄한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정당이다. 그런 까닭에 공천 비리, 성추문, 각종 불법비리, 목불인견의 패권 싸움에도 다수당은 언제나 새누리당의 차지였다.


그러나 고인 물은 반드시 썩게 되는 법이다. 별 다른 노력 없이도 연전연승, 승승장구해온 새누리당은 '쇄신과 개혁', '당내 민주화' 같은 시대적 담론과는 완전히 담을 쌓게 된다. 그리고 이는 새누리당이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정치 결사체가 아닌 권력과 기득권 수호를 위한 이익집단으로 변질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친박계야말로  새누리당의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근한 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은 이를 방조한 새누리당, 그 중에서도 친박계의 무한 책임을 추궁했다.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의 공범이었던 그들을 향해 '새누리당의 해체'와 친박 지도부의 '정계 은퇴'를 강력히 촉구한 것이다. 보수언론들 역시 친박계의 책임론을 부각시키며 최소한 지도부의 조건없는 2선 후퇴와 재창당 수준의 당 혁신을 주문했다.

그러나 친박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쇄신과 혁신, 자성과 환골탈태를 원하는 민심과는 유리된 채 '도로 친박당'이 되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친박 정우택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이 그 명백한 증좌다. 국민은 '새누리당 해체'를 포함해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데, 친박계는 '박근혜의 아바타' 역할을 포기하지 않겠다 외치고 있는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 자신들이 출범시킨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마저 당권을 거머쥐자 주저없이 해체시켜 버리는 그들이다. 시쳇말로 답이 없는 정치집단이다.


ⓒ 오마이뉴스


집단 탈당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비박계 역시 친박계와 큰 차이는 없다. 그들은 다만 친박계와 달리 정치적 형세판단에 능했을 뿐이다. 촛불에 담겨있는 민의를 재빨리 간파해 그 흐름에 편승했을 뿐, 그들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공범인 새누리당의 또 다른 한 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냉정히 말해 비박계의 반란은 자발적 의지였다기보다는 촛불민심에 등 떠밀린 결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박근혜 정부의 권위적 국정운영이 이어지며 민주주의와 시민권이 후퇴하고 있을 때, 새누리당이 구태와 낡은 관성을 답습하며 대한민국 정치의 저렴화를 부추기고 있을 때, 비박계는 침묵하거나 동조하면서 그 수혜를 입고 있었을 뿐이었다. 국정원 사건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와 헌정질서가 뿌리채 뜯겨져 나간 것도, 세월호 참사로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가치가 무참히 짓밟힌 것도 비박계의 방조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졸지에 친박계의 대항마가 되어버린 비박계의 '혁신과 '개혁' 외침이 공허해 보이는 이유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정우택 의원은 당선 소감에서 "개헌 정국을 이끌어서 내년에 좌파정권, 진보좌파가 집권하는 것을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막아내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아찔하다. 그는 개헌을 집권을 위한 하나의 수단쯤으로 여기고 있다. 이것이 집권당 원내대표의 무시무시한 인식이다. 그런데 좌파에게 정권을 내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비단 정우택 원내대표 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당권을 놓고 다퉜던 비박계 원내대표 후보 나경원 의원도 같은 입장이다. 비박계의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 역시 진보좌파의 집권을 막기위해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의 한사람이다. 


진보좌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친박계 정우택 원내대표와 비박계를 이끄는 김무성 의원, 그리고 좌파에게 정권을 내줘서는 안 된다는 비박계 나경원 의원의 인식은 이처럼 큰 차이가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보수가 집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저 둘은 궤를 같이 한다. 이 모습은 집권을 위해서, 권력과 기득권을 위해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잡았던 새누리당의 과거와 정확히 일치한다. 


정당의 궁극적 목적이 집권에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집권은 정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비전과 가치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집권이 절대 목적이 되는 순간 그 과정에 정당치 못한 방법들이 동원되는 것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오직 집권만이 목적인 정당이 어떤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게 되는지, 그로 인해 국가와 국민에게 어떤 해악을 미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새누리당이다. 구태정치의 상징이 되어버린 친박계나 그 꼬리표를 벗어보려 애쓰는 비박계나 '그 나물에 그 밥'이요, '도긴개긴'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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