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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게임 끝났다", 정두언의 폭탄선언이 의미하는 것

'역시나'였다. 적반하장과 언어도단, 어불성설과 후안무치로 가득했던 3분이었다. 자기 변명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정작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각종 의혹에 대해선 일언반구 해명조차 없었다. 지난해 11월 12일 바레인 출국 당시와 판박이였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이내 사라지는 것도 여지 없었다. 17일 카메라 앞에 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그랬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의혹 수사와 다스(DAS) 실소유주 의혹 수사 등으로 코너에 몰린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날 오후 5시 30분 서울 삼성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발표된 입장문에서 이 전 대통령은 검찰수사를 "정치공작"이자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했다. 검찰 수사가 턱밑까지 이른 만큼 '정치보복 프레임'을 가동시켜 정쟁으로 몰고가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이 전 대통령은 측근이었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의 구속을 의식한 듯, "4대강 살리기와 자원외교, 제2롯데월드 등 여러 건의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함께 일했던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는 없었다"며 정권의 도덕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당시 검찰이 관련 수사를 했지만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당시 검찰 수사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봐주기', '꼬리 짜르기' 수사라는 비판과 함께 공정성 시비가 끊이질 않았던 이유다. 실제 4대강 사업의 경우, 검찰은 업체 간 담합비리 의혹만 수사했을 뿐 정작 중요한 정경유착 등 권력형 비리 의혹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자원외교는 수사 중 터진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주객이 전도된 채 용두사미로 끝이 났다. 그런가 하면 제2롯데월드 특혜 의혹 수사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저축은행 비리로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SLS 이국철 회장 로비 사건으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파이시티 사업 인허가 청탁으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구속되는 등 실세들의 부정·비리 의혹도 차고 넘쳤다. 따라서 권력형 비리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나 마찬가지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정권을 가리켜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비아냥과 조롱이 터져 나왔을까. 

이날 이 전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책임을 물어 달라"며 최종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역사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러나 참담함을 느끼는 것은 '그'가 아니다. 헌법질서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짓뭉개고도 잘못과 반성은커녕 외려 떳떳하다고 목소리를 드높이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이다.

오마이뉴스



이 전 대통령에게 드리워진 범죄 혐의는 일일히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여론조작, 다스 횡령 의혹, BBK 주가조작 사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박원순 서울시장 사찰 사건,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국정원 특활비 수수 의혹, 제2롯데월드 특혜 의혹, 4자방 비리 의혹 등 드러난 것만 해도 실로 어마어마하다. 수 십년 동안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민주적 풍토를 일순간에 권위주의 시대로 퇴행시킨 책임도 막중하다 할 것이다. 국가의 품격과 국민의 자존감을 처참하게 짓밟은 박근혜 국정농단의 씨앗이 이명박 정권에서 잉태됐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찬성하고 있는 것도,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터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여전히 딴 세상에 살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70%가 넘는 국민들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민 운운하는 모습은 군색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그가 말한 국민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강력 반발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는 막바지로 향하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엎지러진 물이요, 터진 둑이라는 시각이 파다하다. 저지른 범죄 혐의가 워낙 방대한 데다가, 국민 여론 역시 완전히 돌아선 탓이다. 측근들로부터 불리한 진술과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도 이 전 대통령을 암울하게 만든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비롯해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김주성 전 국정원 기조실장,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김성우 전 다스 사장 등 측근들의 증언이 약속이나 한듯 잇따르고 있다.

그 중 특히 주목해야 할 인물은 김 전 부속실장이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부터 자금 관리를 도맡아 해오던 최측근 인사다. 그런 그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게 1억원을 받아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2011년 10월 이 전 대통령의 미국 순방 직전 국정원 특활비를 달러로 환전해 전달했다는 증언까지 했다. 이는 국정원 특활비 시스템에 대해 아는 바 없다던 이 전 대통령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와 관련, 한때 이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정두언 전 의원은 김 전 부속실장이 이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키맨'이자 '스모킹건' 같은 인물이라고 주장해 화제다. 오랫동안 이 전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자금 관리를 해왔던 김 전 부속실장이 돈의 출처와 사용 내역 등을 상세하게 알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 전 의원의 말대로라면 김 전 부속실장이 구속되지 않은 것이 '플리바게닝'(수사 기관이 자기 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의 범죄를 증언하면 그 대가로 처벌을 경감해주는 제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정 전 의원은 17일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해 2012년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전했다. 김 전 실장이 청와대에서 내쳐진 뒤 구속됐고, 이 과정에서 심적 고초를 겪던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이 전 대통령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정 전 의원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정 전 의원은 김 전 부속실장이 이 전 대통령의 돈 문제와 관련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만큼 "게임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김 전 부속실장이 자금 문제와 관련해 BBK 사건부터 다스 의혹까지 꽤뚫고 있는 이상,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뜻일 테다. 카메라 앞에 선 이 전 대통령은 연신 기침을 해댔다. 정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원래 기관지가 안 좋다면서 많이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의 심경이 좌불안석일 거라는 귀뜸이다. 그 말 그대로다. 검찰의 칼 끝이 바로 눈 앞이다. 이 전 대통령을 궁지로 내모는 측근들의 폭로도 이어지고 있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자업자득. 출구가 없는 막다른 길에 내몰리도록 만든 건, 다름 아닌 'MB'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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