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댓글에 무척 관심이 많았어요. 이런 댓글부대가 탄생하기 전에, 그 행정관 사무실이 있잖아요. 그런데 대통령이 내려와 가지고, '이 기사 댓글이 왜 이러냐고', 그리고 '여기 댓글 왜 안다냐고'. 이거 직접 들은 얘기예요, 9년 전에. 대통령의 댓글에 대한 관심, 이게 결국 댓글부대 탄생의 배경이었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권 당시 자행된 댓글 공작 사건은 정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빗나간 '댓글 사랑'이 잉태한 비극이었을까. 지난 8월 9일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어준 공장장은 댓글 부대가 탄생하게 된 근거를 저와 같이 추론했다. 애초부터 댓글에 관심이 많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부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자 인터넷 심리전 강화 전략을 수립하고 본격적으로 댓글 공작에 나섰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 이명박 정권이 인터넷 심리전에 쏟아부은 노력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이명박 정권은 국정원과 군을 여론조작의 전진기지로 삼아 대대적인 사이버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를 위해 조직 확대 개편, 인력 충원, 예산 투입 등 물심양면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국정원 심리전단을 국정원 3차장 산하의 독립부서로 편제시켰고, 심리전단의 사이버팀을 확대 개편하는 등 부서의 역량 강화에 집중했다.
국정원과 함께 댓글 공작의 양대 축이었던 군 역시 지난 2010년 1월 국군사이버사령부를 창설하며 여론 공작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군은 '503단'으로 알려진 군사이버심리단을 통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인터넷 커뮤니티, 소셜네트워크 등에 정부여당을 옹호하고 야당을 비판하는 댓글 공작을 펼쳤다. 대북심리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이버사가 실제로는 자국민을 상대로 '대남심리전'을 전개한 셈이다.
이명박 정권이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등 국가정보기관을 동원해 여론 조작과 정치 공작을 펴고 있다는 의혹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공공연하게 떠돌던 이야기였다. 이 흉흉한 소문이 구체화된 건 지난 2012년 대선 직전 터진 이른바 '십알단 사건'과 '국정원 댓글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은 세간에 퍼져있던 국정원의 불법 정치개입 의혹을 수면 위로 부각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이 두 사건은 엄청난 파장과 후폭풍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야무야' 처리되고 말았다. 십알단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를 위한 불법선거운동을 벌여온 의혹을 받았다.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선관위에 적발된 오피스텔에서 박근혜 후보 명의의 임명장이 발견되는가 하면, 박근혜 후보 캠프의 'SNS 미디어 본부장'이라 적혀있는 십알단 운영자 윤정훈 목사의 명함과 새누리당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전략이 담긴 문서 등도 함께 발견됐다.
그런가 하면 윤정훈 목사와 국정원이 트위터 계정을 통해 같은 글을 수십 건씩 리트윗한 사실과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의 계정 일부가 십일단 활동에 사용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것들은 십알단이 박근혜 후보를 위한 불법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당시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 및 국정원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정황 증거다. 그러나 검찰은 십알단과 새누리당·국정원 사이의 관계를 끝내 밝혀내지 못했고, 결국 이 사건은 무수한 논란만 남긴 채 윤정훈 목사의 개인적 일탈로 일단락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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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 사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경찰은 대선을 불과 3일 앞두고 납득할 수 없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해 논란을 자초했다. 부실·축소 수사에 이은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결과적으로 박근혜 후보의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검찰 역시 편파·봐주기 수사로 일관하며 국정원 댓글 사건의 실체적 진상을 규명하는 데 실패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이후 진상규명을 위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었음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의혹은 차고 넘쳤으되, 실체를 규명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대로 묻힐 것 같았던 국정원과 사이버사 댓글 공작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국정원과 군이 각각 '적폐청산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댓글 공작의 실체를 재조사하기 시작하면서 감추어졌던 검은 치부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국정원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사이버 외곽팀'이라는 민간인 댓글 부대를 만들어 선거 여론을 조작하고 민의를 왜곡했던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는가 하면, 국정원 심리전단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박원순 서울시장 음해 공작을 펼쳐왔던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던 사이버사의 댓글 공작도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국방부가 지난 10월 1일 밝힌 '사이버사 댓글사건 재조사 TF' 중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이버사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정치 댓글 공작을 진행하며 청와대에 관련 사실을 보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박근혜 정권 당시 군 수사당국의 수사 결과와 상충하는 내용이다. 당시 군은 진상조사 결과 사이버사의 총선·대선 개입은 없었으며, 관련 사실이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된 적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방부의 재조사 결과 이는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관진 전 장관이 사이버사 댓글 공작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정황이 드러났고,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국방부 장관 서명이 들어가 있는 사이버사 댓글 공작 문건이 공개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두 차례에 걸쳐 사이버사 군무원 증원을 직접 지시한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이는 그동안 철저하게 가려져 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댓글 공작 개입 정황을 강력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댓글 공작 개입을 입증하는 구체적 진술이 김관진 전 장관의 입에서 나왔다. 7일 검찰에 소환된 김관진 전 장관이 사이버사 활동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다고 실토한 것이다. 이미 사이버사 활동 내역과 인력 증원 등의 세부 사항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지시받은 정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된 데 이어, 김관진 전 장관의 진술까지 추가로 확보됨으로써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이제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국기를 문란시킨 댓글 공작의 정점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터다. 그동안 수많은 정황 증거에도 불구하고 실체를 규명하기 어려웠던 국정원과 사이버사의 댓글 공작 전모가 마침내 백일 하에 드러나게 될 모양이다. '역시나'였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그리 날 일이 없지 않은가. 그깟 댓글이 뭐라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댓글 사랑'은 결국 파국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칼로 흥한 자, 아니 댓글로 흥한 자 댓글로 망한다.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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