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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호랑이 등에 올라 탄 윤석열, 그가 명심해야 할 것

ⓒ 오마이뉴스

 

'騎虎之勢'(기호지세).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듯한 기세로, 도중에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처지가 딱 이렇지 않을까.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하명수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9일 송철호 울산시장과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한병도 전 정무수석 등 13명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무더기 기소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나머지 관련자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수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소환조사를 받은 이광철 민정비서관과 30일 검찰에 출석할 예정인 임종석 전 비서실장 역시 수사선상에 올라있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윤 총장과 청와대의 대립이 점입가경이다. 이번 기소는 윤 총장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보도과 검찰 등에 따르면, 이날 윤 총장은 구본선 대검찰청 차장과 배용원 대검 공공수사부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2차장, 김태은 공공수사2부장 등이 참석한 주례보고에서 이들에 대한 기소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 지검장이 참석자 중 유일하게 기소 반대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서 윤 총장은 지난해 10월 17일 열린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제 승인과 결심 없이는 할 수 없다"며 조 전 장관 수사를 직접 지휘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검찰이 무더기 기소 결정을 내린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은 원래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등이 연루된 지역토착비리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 사건은 김 전 시장 측근과 형제의 비리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의 부실수사, 지역 토착세력과의 유착 의혹,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불거진 검·경 갈등 등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이 사건의 본질을 '선거개입·하명수사'라 규정한 검찰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다.

실제 김 전 시장 측근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부실수사와 강압수사 정황이 복수의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이와 관련 김기현 전 시장 동생과 '30억 불법 용역계약'을 맺었던 울산 건설업자 김흥태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김 전 시장 측근비리 사건을 검찰이 이미 2년 전부터 정치적 목적으로 수사해 왔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경찰이 김 전 시장 관련 사건 수사에 착수한 2018년부터 검찰이 송철호 울산시장과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을 타깃으로 한 수사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고발인인 김씨를 별건수사로 구속한 뒤, 송시장과 황 청장과의 관계, 그리고 이들과 관련된 비리를 진술하도록 회유하고 협박했다는 내용이다.

이날 기소된 황운하 대전경찰청장(전 울산경찰청장) 역시 지난해 12월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사안의 본질은 김기현 전 시장의 형제, 그리고 비서실장의 부패비리"라며 "이에 대한 경찰의 세 갈래 수사 중 한 건이 청와대로부터 경찰청 본청을 거쳐 울산청으로 이첩된 범죄첩보였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하명수사니 선거개입수사니 하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검찰을 꼬집은 바 있다.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의 또 다른 축인 고래고기 환부사건 역시 검찰의 부실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16년 5월 울산경찰은 밍크고래 불법포획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시가 40억 원 가량의 밍크고래 27톤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압수한 27톤의 고래고기 중 21톤을 업자에게 되돌려줬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불법고래고기를 유통시킨 업주와 그들의 뒤를 봐준 검찰 출신 변호사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시민단체에 의해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발당했던 수사 담당검사가 그 무렵 돌연 해외로 연수를 떠나면서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이와 관련 검찰은 당담검사의 해외연수는 1년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수사에 진착이 없자 해양환경단체인 '핫핑크돌핀스'는 2018년 1월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울산검찰청 소속 검사의 고래고기 무단환부 사건에 대해 울산지검이 경찰의 수사를 방해하거나, 검찰이 진실을 밝힐 의지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며 청원을 올렸다. 이에 특별감찰단원을 울산에 내려보내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해명이다.

그러나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정보 수집 및 수사 점검 등의 활동을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는 명백한 '선거개입·하명수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애초 김 전 시장 측근비리 수사와 고래고기 환부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찰의 부실·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 1년 8개월이 넘게 묵혀두었던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시켰다는 점 등 청와대를 향한 검찰 수사에 여러 뒷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검찰은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와 관련해 기소권과 수사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린 법원으로부터는 급기야 "검찰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는 의미심장한 질책까지 받고 있는 마당이다. 표창장 위조 혐의로 정 교수를 재판에 넘길 때부터 터져나오기 시작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 행태에 대한 지적인 것이다.

물론 수사를 시작한 이상, 그리고 혐의를 발견한 이상 검찰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호랑이(살아있는 권력) 등에 올라 탄 윤 총장의 심경과 의지가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법대로, 원칙대로"를 강조해 온 검찰 수사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일관성과 형평성이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펼쳐지고 있는 검찰 수사가 과연 그러한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표창장 위조 혐의로 정 교수를 전격 기소한 검찰이 공문서 위조 사건 무마 의혹과 관련해 고발된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김주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황철규 부산고검장, 조기룡 청주지검 차장검사 등 전·현직 검찰 고위 간부들에 대해서는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 '인디언 기우제 같다'는 비판이 나올 만큼 조 전 장관 일가와 주변을 샅샅이 털었던 검찰이지만 비슷한 의혹으로 고발당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대한 수사에서는 지극히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의 발단이 된 김 전 시장 측근비리 수사와 고래고기 환부사건 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은 조 전 장관에 대해 뇌물수수·위조공문서행사·허위작성공문서행사·위계공무집행방해·업무방해·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부정청탁및금품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위반·공직자윤리법위반·증거위조교사 등 무려 11개의 혐의를 적용시켰지만, 이는 권력형 비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사력을 총동원해 4개월 넘게 총력전을 펼친 결과치고는 초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가뜩이나 검찰 수사와 관련해 갖은 말들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과 맞물려 검찰 수사의 시점과 내용, 방향 등에서 여러 해석을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검찰을 향한 의혹 어린 시선은 조 전 장관 수사가 일단락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는 조 전 장관 일가 의혹과 앞서 살펴본 사건들과의 형평성, 그리고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는 검찰의 이중적 행태가 만들어낸 합리적인 의심일 터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건 시민이다. 그 시민들의 눈길이 지금, 검찰로 향하고 있다. 윤 총장은 이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검찰의 이율배반적 행태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검찰의 '선택적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