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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고래고기 사건'은 어떻게 '하명수사' 의혹으로 둔갑했나

ⓒ 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이야기의 시작에는 울산 고래 고기 사건이 있었습니다."

28일 방송된 <PD수첩> '울산 검경내전'편은 그렇게 시작했다. '고래 고기 환부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은 왜 경찰이 압수한 고래 고기를 피의자인 유통업자에게 돌려주었을까. <PD수첩>은 이 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사건은 2016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울산 중부경찰서는 한 유통업자로부터 불법포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래 고기 27톤을 압수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담당했던 황 모 검사는 압수된 27톤의 고기 중 21톤(경찰 추산 약 30억 원)을 한 달만에 피의자에게 되돌려준다.

"당황스러웠죠. 저희들은 최소한 유전자 검사가 나온 이후에 환부를 해도 괜찮은데 왜 이렇게 급하게 했나."

울산 중부경찰서 서성주 경위는 검찰의 고래 고기 환부를 아주 의아스럽다고 술회했다. 이유가 있었다. 경찰은 당시 압수한 고래 고기에 대해 DNA 검사를 의뢰한 상태였다. 통상 고래 고기 샘플은 기존에 보관된 DNA와 일치하지 않을 경우 불법포획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황 검사는 DNA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압수한 고래 고기 21톤을 피의자인 유통업자에게 되돌려줬다. 고래 고기는 DNA 성분 검사를 진행했던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의 검사 결과 대부분 불법포획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의 환부조치로 경찰의 수사를 받던 피의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누리게 된 셈이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경찰은 이 과정에 검찰의 봐주기 수사가 있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당시 사건을 수임했던 피의자 측 한 모 변호사가 2013년까지 울산지검에서 환경, 해양 담당 검사로 일했던 전관으로 알려지면서 이른바 '전관특혜'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한 변호사에 대한 사무실, 차량, 통신, 계좌 등에 대한 압수수색 신청을 검찰이 대부분 기각하면서 이 의구심은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이후 경찰 수사는 사건 담당검사가 1년간 해외연수를 떠나면서 답보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검사에 대한 수사가 불발에 그친 거죠.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겁니다. 검사는 형사사법제도의 대단히 중요한 한 축을 담담하고 있거든요. 누구보다 현재의 사법질서를 존중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사건을 지휘했던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은 담당검사의 해외연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시 검찰은 고래 고기를 돌려준 이유에 대해 "불법포획 등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담담검사의 해외연수 또한 예정돼 있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반면 경찰에 대해서는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원칙과 절차대로 고래 고기를 돌려준 것인데 경찰이 과잉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DNA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에 고래 고기를 돌려주었다는 점, 사건 담당검사의 직속상관인 부장검사와 피의자측 변호인이 대학동문이라는 점, 검찰이 변호사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 대부분을 기각시킨 점,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발된 담담검사가 수사도중 해외연수를 떠난 점 등 석연찮은 점이 한 둘이 아니다. 

 

ⓒ 뉴스1



한편 고래 고기 환부사건으로 검경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던 2018년 초, 울산지방경찰청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형제 비리 의혹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이 사건은 고래 고기 환부사건과 함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과 깊숙이 연관돼 있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울산 지역 건설업자인 김흥태 씨는 김 전 시장의 동생과 아파트 시행권을 넘겨받는 대가로 30억 원을 지불하는, 이른바 '이면계약'을 체결했다. 김 씨의 주장에 따르면, 2014년 제6회 지방선거를 약 3개월 앞두고 당선이 유력한 김 전 시장이 도움을 줄 수 있다며 동생이 먼저 제안해 왔다는 것이다.

"형이 시장이 될 껀데, 저희 형이 시장이 되면 (아파트 사업권을) 정리할 수 있는데. 그러면 그렇게 할래? 그럼 내가 나하고 그렇게 할 수 있나. 형하고 의논해라. 너희 형이 그렇게 한다면 내가 그렇게 하지. 형하고 의논했대요. 내가 지하고 무슨 그런 약속을 해서 30억 원을 준다고 합니까. 지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원래 2007년 울산 북구에 아파트를 건설할 계획이었던 김 씨는 당시 시공사의 부도로 자금난에 빠지면서 사업계획 승인을 잃은 상태였다. 해당 아파트의 시행권은 2012년 다른 곳으로 넘어갔고, 김 씨는 30억 원의 웃돈을 주고 시행권을 되찾아오려 했다. 김 전 시장의 동생이 김씨에게 접근한 시점이 바로 그 무렵이다.

"내가 30억 원을 주고 (사업시행권을) 인수한다는 얘기가 건너간 거예요. 이 말이. '형님 우리도 선거비용 많이 드는데, 이왕 주는 거 우리 주는 게 안 맞겠습니까?'. 이 말을 들어보니까 맞는 거예요. '저희 형이 시장이 되면 허가 어차피 안 되는 거 안 해주면 되는 거고'. 저하고 선거 전에는 '참OO' 식당에서 점심 두 세번 정도 했을 거예요. 제가 그러면 어떻게 할래 약정서라도 만들어야 하니까. '인허가나 이런 것도 넣을까요, 형님?'(이라고 물어보길래) 그건 서로 문제가 되니까 빼자고 했어요."

이와 관련 경찰은 김 전 시장의 동생이 아파트 분양 용역 계약을 할 능력이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전 시장의 동생은 '2005년 경부터 직업이 없었고, 건축 관련 자격증이나 관련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용역 계약은 성사됐지만 이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김 전 시장의 동생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결국 김 씨는 아파트 시행권을 얻지 못했다. 2018년 1월 정식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청탁이 있었다는 관련자 증언과 함께 증거를 확보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울산지검에 송치했다. 하지만 울산지검은 2019년 4월 해당 사건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리고 만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는 증인의 진술 번복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앞서 경찰조사에서 일관된 진술을 보였던 핵심 증인 2명이 검찰 조사에서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검찰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와 관련 전직 판사였던 신중권 변호사는 "처음에 진술하는 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라며 "법원에 갔다면 결과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진술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진술을 번복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다.

이후 사건은 급반전된다. 되레 김 씨가 부정청탁 교사 및 공갈, 협박, 청부수사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김 전 시장 형제를 고발했던 김 씨는 졸지에 검찰의 수사를 받는 입장이 됐다. 김 씨는 이 과정에서 검찰이 김 씨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금전 피해 여부를 추궁하면서 자신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도록 종용했다는 주장을 폈다.

"검찰은 김흥태를 거의 사기꾼으로 (몰았다). 나 말고도 (김흥태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한테 돈을 빌렸다고 얘기를 하면서, 나에게 ‘(김흥태가) 빚이 많아 (빌려 준) 돈은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이야기는) ‘김흥태가 기소됐을 때 같이 고발, 고소하는 게 맞지 않느냐’ 이런 내용이었다. (검찰에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된다’고도 했다. 내가 (김흥태를) 고소해야 된다고."

김 씨의 지인인 강석주 씨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역시 <PD수첩>이 제기한 의혹과 일치했다. 강 씨는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도 검찰이 "김흥태에 대해서 천지 사기꾼이고 빚이 엄청 많은데 고소해라"고 종용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강 씨는 "자기들이 시킨 데로 안 하면 고성을 지르기도 하고 책상을 두드리기도 했다"라며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 씨와 지인들은 조사 당시 검찰이 황 전 청장과 김 씨의 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했다고 주장했다. 고래 고기 사건 수사 당시 검찰과 갈등을 겪었던 황 전 청장은 김 전 시장 측근 비리 의혹을 지휘했던 검찰 저격수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이와 관련 울산지검은 황 전 청장을 조사했다는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는 서면 답변을 <PD수첩> 측에 보냈다.)

"김흥태는 타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김흥태를 불쏘시개, 마중물로 해서 황운하 쪽으로 확대하는 게 목표였어요."

김 씨의 지인으로 검찰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이영민 씨는 당시를 저렇게 회상했다. 그 무렵은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조정 문제로 검경 사이의 신경전이 아주 뜨겁던 시기였다. 고래 고기 환부사건 당시 검찰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던 황 전 청장이 평소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강하게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김 씨와 지인들의 주장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김 씨가 사업권을 따내려 했던 울산시 북구의 아파트 인허가 과정에는 수상한 돈거래 정황도 드러난다. 김 씨가 사업권을 얻으려 했던 아파트 인허가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 전 시장의 형과 동생의 계좌에 2억 2천만 원이 돈이 입금된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김 전 시장의 형이 사업수익의 50%를 받는 조건으로 김 씨가 아닌 다른 시행사를 밀어줬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는 관련자 진술까지 확보했다.

당시 해당 지역은 목표인구 초과로 울산시청 도시계획과로부터 사업 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 사업이 김 전 시장 취임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PD수첩> 측의 설명이다. 시행사가 이례적으로 울산시 측에 인구계획을 상향조정해 달라고 요청을 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사업 승인허가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과정에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수사하기 위해 시행사에 대한 계좌추적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에 의해 기각당했다. 수사 기일을 2개월 연장해 달라는 건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결국 불기소 처분을 내리며 수사를 일단락시킨다.

"강백신 검사도 그때 당시에 이거 문제가 있다고 자료를 보여주셨어요. 저렇게 많다면서. '조급해 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분명히 사건 (조사) 합니다. 이거 진짜 울산 복마전입니다'."

김 씨는 울산 북구 아파트 인허가 의혹 수사에 대해 2016년 당시 울산지검의 강백심 검사 측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강 검사가 국정농단 특검검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수사는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PD수첩> 측은 내사 과정 확인을 위해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 검사에게 취재를 요청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고래 고기 환부사건과 김 전 시장 형제 비리 의혹의 실체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 측 주장과 검찰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 그 사이 울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겨간 이 사건은 현재 청와대의 '선거개입·하명수사' 논란으로 비화됐다.

사실 <PD수첩>이 조명한 고래 고기 환부사건과 김 전 시장 형제 비리 의혹 사건은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된 내용이다. <PD수첩>은 이날 방송에서 세간에 파다하게 퍼져있는 검찰의 '부실·봐주기 수사' 의혹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준 것 뿐이다.

그럼에도 방송을 보는 내내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검찰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어땠을까. 정치공방이 뜨거운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은 어쩌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긴 '이야기의 시작에 검찰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