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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부당한 지시 거부, 항명으로 몰아가는 언론..'언론개혁'이 필요한 이유

ⓒ 중앙일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기소 경위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보고하기 전, 추미애 법무부장관에게 먼저 보고한 것을 두고 언론과 검찰 내부로부터 강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특히나 언론은 (예상을 전혀 비켜나지 않고) 이를 '윤석열 패싱', 다시 말해 이 지검장이 윤 총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며 '항명'으로 몰아가는 모양새다. 최 비서관을 기소하라는 윤 총장의 지시를 이 지검장이 (지휘 체계를 무시하고) 세 차례나 묵살했다는 거다.

그러나 이번 논란의 포인트는 '윤석열 패싱' 혹은 '항명'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앞서 이 지검장이 윤 총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그 속에 (언론이 부추기고 있는) 이번 논란(?)의 핵심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인턴증명서를 허위발급한 혐의를 받고있는 최 비서관에 대한 기소를 단 한 차례의 소환조사도 없이, 그것도 피의자 신분 전환도 안 된 상태에서 전격 감행했다. 조국 장관 인사청문회 도중 정경심 교수를 기소했던 방식 그대로다.

검찰의 의도는 일단 기소부터 해놓고 별건 수사 등을 통해 혐의를 찾겠다는 속셈이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선기소-후수사' 행태는, '조국 사태'를 통해 그 폐해가 드러난 것처럼, 대단히 잘못된 수사 관행이자 사라져야 할 대표적 구습으로 손꼽힌다. 

이 지검장이 윤 총장의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기소에 앞서 충분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상급자인 윤 총장의 명시적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자, 그럼 이쯤에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상급자가 부당한 지시를 내릴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따르거나, 거부하거나. 윤 총장의 지시에 따라 기소를 전결한 송경호 3차장검사와 고형곤 반부패수사2부장검사는 전자를 택했고, 이 지검장은 후자를 택했다. 언론은 이를 윤 총장과 이 지검장, 검찰과 청와대의 대결 구도로 몰아간다. 청와대와 교감한 이 지검장이 항명을 했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이번 논란의 핵심은 이 지검장의 지시 거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윤 총장의 지시가 온당했느냐에 있다. 이미 피의자 소환조사 없이 이뤄진 정 교수 기소로 검찰의 '기소편의주의'에 대한 비판이 뜨겁게 분출된 바 있다. 비단 정 교수의 경우만 아니라 검찰의 기소 독점과 일방적 기소편의주의의 폐해는 일일히 열거하기가 벅찰 지경이다. 

정치검찰의 전유물인 기소편의주의는 사라져야 할 낡은 유물이다. 절차와 과정은 생략한 채, 검찰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기소와 불기소가 결정되고, 그래서 있는 죄는 덮고 없는 죄도 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비근한 예가 조국 사태와 김학의 사건일 것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일본제국주의의 '생체 실험', 크메르 루주의 '킬링필드' 등은 모두 상급자의 잘못된 명령에 복종했던 이들의 맹종이 만들어 낸 비극이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조작된 수많은 용공조작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나쁜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건 아주 잘못된 태도다. 만약 그랬다면 이 사회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 나는 죄가 없다"고 항변하는 제2, 제3의 '이근안'으로 넘쳐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항명이 아니라 부당한 지시에 대한 거부다. 씁쓸한 건, 이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이 없다는 것이다. 이 나라 언론의 현주소가 이 모양 이 꼴이다. 검찰개혁 못지 않게 언론개혁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