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에게는 기득권 정당, 특권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2017년 12월 14일 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온 김성태 전 원내대표의 모두 발언을 보자.
김 전 원내대표는 이날 "그 동안 금수저, 기득권, 웰빙, 대기업, 가진 자들의 정당으로 인식된 한국당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서민, 노동자, 농민이 함께 어울어져서 잘사는 대민을 위해 함께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농단과 탄핵사태를 거치며 당시 한국당은 풍전등화나 다름 없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었다. 민심은 돌아섰고, 당은 사분오열됐다. 개혁의 바로미터인 인적청산과 당 혁신작업도 지지부진에 빠졌다.
얼마 남지 않은 지방선거를 위해 당을 환골탈태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안팎으로 빗발쳤다. 김 전 원내대표의 일성은 이런 가운데 터져나왔다. 한국당에 투영돼있는 기득권 특권 정당의 이미지를 탈피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과 간절함의 발로였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김 원내대표의 다짐은 공염불이 됐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과감한 인적쇄신과 노선 재정립 등 특단의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당은 그렇게 하질 못했다. 정책 개발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정부여당의 실책과 실정에 편승해 반사 이득을 얻으려 했다.
물론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좌파독재", "경제파탄" 등 이념과 경제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극우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전방위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외연확장에 반드시 필요한 합리적 보수층과 무당층을 끌어안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의 불공정·특권 문제를 정조준한 '조국 사태'는 한국당에게는 중요한 반전의 계기가 됐다. 대중은, 특히 젊은 세대는 '조국'이 불을 지핀 계급 담론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뜨겁게 분노했다.
정부·여당을 향한 비판 여론이 불처럼 솟구쳤다. 한국당도 손바람을 냈다. 그 결과 더불어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는 턱밑까지 좁혀졌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절치부심해오던 한국당으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그러나 한국당의 오름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하자 지지율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국갤럽이 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전국 1000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3.1%포인트, 95% 신뢰수준)에 따르면,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40%), 무당층(25%), 한국당(23%), 정의당 (6%), 바른미래당(5%), 우리공화당(1%), 민주평화당(0.2%) 순으로 나타났다.
전주 대비 민주당은 3%포인트 상승했고, 한국당은 3%포인트 하락했다. 두 당의 지지율 격차는 17%포인트로, 지난주(11%포인트)보다 6%포인트나 벌어졌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당의 지지율이 조 전 장관 임명 전 수준으로 다시 돌아간 것은 '조국사태'로 돌아선 민심을 그들이 끌어안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당의 지지율이 다시 곤두박질 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 답을 앞서 김 전 원내대표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김 전 대표는 한국당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미지를 털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완전히 새롭게 재탄생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조 전 장관이 사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당내 '조국 TF'에 표창장을 수여했다. 패스트트랙 수사 대상 의원들에 대해서는 공천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했다가 당 안팎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당원조차 암담함 느꼈다는 한국당의 표창장 수여식'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모든 사태에 웃고 즐기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한국당 내에서는 웃음꽃이 피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조국 사태로 대통령과 야당 지지율은 떨어졌지만 한국당의 지지율은 사실상 제자리라고 한다. 중도층이 여당 지지에서 이탈해도 한국당으로는 가지 않는다"며 "이 현실에서 반성하고 자성하면서 뼈를 깎는 각오를 다지기는커녕 유치한 행태로 국민 혀를 차게 한다"고 비판했다.
나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 수사 대상 의원들에게 내년 총선에서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고 한 것 역시 뭇매를 맞았다. 나 원내대표에게 공천에 개입할 권한이 없는 데다, 국회법 위반으로 검찰수사 대상에 오른 의원들에게 가산점을 주겠다는 발상이 법치주의에 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최근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국당 인재 영입 논란 역시 같은 맥락일 터다. 황교안 대표가 '삼고초려'를 해가면서 영입에 공을 들인 박찬주 예비역 육군대장이 '공관병 갑질 논란'에 이어 '삼청교육대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박 전 대장은 황 전 대표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영입하려 했던 '귀한 몸'이다. 그러나 그런 그가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박 전 대장은 지난 2017년 공관병에게 골프공 줍기, 감 따기 등을 지시해 갑질 의혹에 휘말린 바 있다. 갑질 의혹과 관련해 박 전 대장은 검찰로부터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그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하다.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공관병에게 골프공 줍기와 감 따기 등을 지시한 사실을 일부 인정했던 박 전 대장은 갑질 의혹 의혹을 제기했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향해 "삼청교육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등 외려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가 제시한' 공공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갑질은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우월적 지위에서 비롯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해 상대방에게 행하는 부당한 요구나 처우를 의미한다'고 돼 있다.
그에 따르면, 공관병에게 부대활동과 무관한 골프공 줍기, 감 따기 등을 지시한 박 전 대장의 행위는 명백한 '갑질'에 해당된다. 박 전 대장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공관병에게 사적인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전 대장은 자신의 행위를 갑질로 인식하지 않는다. 되레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향에 "공관에 있는 감을 공관병이 따야지 그럼 누가 따느냐"고 반문한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의 행위가 갑질인지 아닌지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삼청교육대 발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권위의식과 특권의식은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닌다. 군사독재시절의 문화와 풍토, 군 조직 특유의 폐쇄적 특성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반인권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삼청교육대를 소환한 것만 보더라도 그의 인식은 보편적 정서와는 사뭇 동떨어져 있다.
황 대표는 이와 같은 과거지향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인사를 '인재 영입 1호'라는 의미까지 부여해가며 귀하게 모시려 했다.
특권, 권위, 특혜, 반칙, 불공정 문제는 과거 한국당을 비판할 때 자주 따라붙던 의제들이다. 그런데 조국 사태 당시 같은 이슈들로 정부여당에 맹공을 펴던 한국당이 과거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간의 시선이 싸늘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국사태로 민심이 요동치고 그 여세를 몰아 한국당이 정부·여당에 총공세를 펼칠 때 당 일각에서는 조국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한국당을 향한 비호감도가 여전히 높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민심의 요구에 당이 제대로 부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서였다.
그 우려가 점점 현실이 돼가는 모양새다. 조국 TF 표창장 논란을 시작으로 패스트트랙 공천 가산점 논란, 그리고 인재 영입 논란에 이르기까지 한국당을 곤욕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연거푸 펼쳐지고 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일련의 흐름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시민들은 정의와 공정을 드높이고, 특권과 반칙을 깨뜨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당은 과연 그럴 준비가 돼있는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인마 전두환을 기억하는 방법 (9) | 2019.11.09 |
---|---|
보수통합? 인적혁신? 한국당 초선들 참, 구질구질합니다 (3) | 2019.11.08 |
만약 황교안이 꿈꾸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8) | 2019.11.05 |
다음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폭망'해야 하는 이유 (5) | 2019.11.01 |
거짓말 일삼는 한국당..총선에서 반드시 응징해야 (4) | 2019.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