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안마다 충돌하며 물과 기름처럼 엇박자를 내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장면이 포착됐다. 속도를 내고 있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 움직임에 이구동성으로 비판적 목소리를 내면서다.
2일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은 새 대한민국을 원하는데 아직 정치 기술적으로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 혼사를 얘기한다. 국민은 이를 구태정치라 찍어버렸다. 나는 그런 '야바위' 자체에 흥미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양당의 합당 시도를 지방선거를 앞둔 인위적 정계개편이라 평가절하한 것이다.
3일은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이날 홍 대표는 한국당의 자체 인터넷 방송 '민경욱의 파워토크'에 출연해 "국민들은 여당이냐, 야당이냐를 논하는 것이지, 위장 야당이나 중간지대의 당에는 표가 없다"며 "구멍가게 두 개를 합쳐봤자 슈퍼마켓이 안 된다. 두 당이 통합을 해 본들 시너지 효과도 없을 뿐더러 지방선거의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중도보수의 이념 지향만으로는 존립하기 어려운 정치 현실을 빗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달 31일 통합 추진의 분수령이었던 국민의당 전당원투표 결과, 선거인단 26만 436명 중 5만9911명이 참여해 74.6%의 찬성으로 안철수 대표에 대한 재신임이 이뤄진 바 있다. 이에 국민의당 통합찬성파는 3일 바른정당과 통합추진협의체(통추협)를 공식 출범시키며 본격적인 통합 행보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비판은 이런 가운데 나왔다. 합당으로 인한 컨벤션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경우 민심이 요동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제히 견제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한국당 내부에서는 '국민-바른 통합신당'(가칭)의 합당을 선거를 앞둔 야합이라 폄하하면서도 경계수위를 바짝 높이는 모양새다. 통합신당의 지지율이 한국당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조사되는 등 보수층의 표심을 흔들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통합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민의당내 합당 찬성파들은 양당의 비판에 태연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 대표는 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앙당 시무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추 대표의 '야바위' 발언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다. 안 대표는 "가장 두려워하고 우려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른 당 내부 일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연 뒤, "그런 것을 통해 우리가 가는 방향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고 응수했다.
장진영 최고위원 역시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 양당이 새해 이벤트라도 되는 양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신당에 대해 막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다"면서 "이는 두 당이 통합신당을 두려워한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밝혔다. 이어 "두 당의 신경질이 우리에게는 새해 덕담처럼 들린다"고 맞받아쳤다.
합당 찬성파의 입장은 이처럼 확고부동하다. 누가 뭐라하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통합신당의 합당 행보는 매우 가파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미 합당의 교섭창구가 될 통추협을 출범시키고 2월 내 합당을 목표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돌아가는 형세만 보면 두 당의 합당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외부의 비판에 연연하지 않고 통합에 매진하겠다는 국민의당내 합당 찬성파의 행보와는 달리, 실제 두 당이 합당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합당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장미빛 전망이 있는가 하면 실제 합당 효과는 미비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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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을 추진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현재의 상태로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보수 분열로는 필패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통합신당 창당에 이은 중도보수 세력 규합으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심산이다.
문제는 합당의 시너지 효과를 반감시키는 불안 요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먼저 합당에 반대하는 반대파들의 합당 저지 움직임이 가열차다. 3일 오후 합당 반대파 모임인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운동본부)는 국회에서 별도의 모임을 갖고 전당대회 개최 저지와 반대파 주도의 신당 창당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박지원·정동영·유성엽·이상돈·최경환 의원 등 11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는 독자적인 개혁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된 것으로 알려졌다.
운동본부의 대변인 격인 최 의원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개혁신당 문제에 대해 참석자 11명이 다 동의했고 참석하지 않은 분들에게 이런 논의들을 전달해 최종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당대회를 통합 합당 저지에 전력을 추진하면서도 동시에 개혁신당 창당 추진을 검토하자는 논의를 나눴다"고 부연 설명했다. 최 의원에 따르면 개혁신당에 합류할 의원들의 숫자는 2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이 분당을 하게 되면 합당의 효과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건 불문가지다. '1+1'이 '2'가 아닌 도로 '1'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합당 찬성파를 고무시켰던 여론조사의 '허수'가 바로 이 부분이다. 해당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이탈 세력을 배제하지 않은 당대당 완전 통합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분당이나 합당 과정의 불협화음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에 지지율의 변동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바른정당의 내부 사정도 무시 못할 변수다. 보수를 지향하는 바른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이 국민의당과 부딪힐 가능성이 상존하는 탓이다. 두 당이 대북관과 안보관에 있어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안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내놓은 것만 보더라도 이는 명확해진다.
지방선거와 관련해 한국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도 두 사람의 입장은 판이하게 다르다. "자유한국당과 능력으로 경쟁해 압도해야 한다"(안 대표), "그 가능성을 열어뒀다"(유 대표)는 시각에서 드러나듯 극명한 온도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합당 과정이나 합당 이후 언제든 정치 노선이나 철학, 정책 결정 등 각론 등에서 극심한 내부 갈등이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새정치'를 표방해 온 안 대표의 말 바꾸기에 대한 피로감, 수구·냉전적인 안보관은 물론 적폐청산의 당위마저 외면하고 있는 유 대표의 시대 인식, 바른정당 의원들의 추가 탈당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두 당이 합당에 이르기까지는 갈 길이 아직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설령 우여곡절 끝에 합당에 성공한다 해도 앞서 살펴본 불안 요인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밖에도 중도보수를 지향하는 제3정당이 성공한 전례가 없다는 점, 전통적으로 국민들은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에 비판적이라는 점 등도 통합신당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또 다른 변수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요, 심산유곡이다. 합당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민의당이 앞 길은, 여전히 짙은 '안개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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