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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탄핵 반대 집회, 그 배후 역시 김기춘?

ⓒ 오마이뉴스


대한민국판 '분서갱유' 사건이라 불리우는 '블랙리스트' 파동. 얼마 전 이 문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구속됐다. 그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박정희 장기독재의 기틀을 마련했던 유신헌법 제정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 탓이다. 공안검사 출신인 김 전 비서실장에게  '공안의 달인'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이 따라붙는 것도 그런 연유다.


'초원복집 사건' 역시 '김기춘'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사건 중의 하나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우리가 남이가'를 대유행시킨 주역이 바로 그였다. 92년 대선을 앞두고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야권후보에 대한 비방과 날조를 모의하는 등 관권선거를 획책한 중심에 김기춘 전 실장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독재시대와 권의주의 시대를 거치며 수많은 시민들을 탄압하고, 권모술수와 중상모략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장본인으로 손꼽힌다. 그런 그를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여름 비서실장으로 전격 등용시킨다. 5·16 쿠데타와 유신이 매도당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박 대통령과 유신독재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던 올드보이의 재결합은 당시 수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본디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법이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몰이해로 가득한 두 사람이 권력의 중추에 있는 이상 박근혜 정권의 국정 운영을 예측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국정원 불법대선 개입 사건의 여파로 정권이 위기에 처해지자 그들은 공안정국을 조성해 비판세력에게 재갈을 물렸다.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가 위축됐고, 자기 검열의 시대가 도래했다. 유신 부활에 대한 우려가 나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유신독재시대를 관통해온 두 사람이 권위주의에 기대는 것은 당연했다. 권위주의는 우월적 지위를 통해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는 행태다. 독단과 독선에 의한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전횡이 바로 권위주의다.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군중 동원이 일상화된다. 극강의 권위주의가 활개치던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시절을 그 비근한 예다. 당시 국가는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정치 행사가 있는 곳마다 관변단체들을 동원시켜 세를 과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과정에 불법과 부정이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녔다. 



ⓒ 오마이뉴스



동원에 있어서라면 권위주의를 부활시킨 박근혜 정권 역시 뒤지지 않는다. 23일 청와대가 세월호특별법 반대 집회와 국정교과서 찬성 집회 등 친정부 집회에 대한민국 최대규모의 보수우익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을 동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24일에는 김기춘 전 실장의 지시로 전경련의 자금을 지원받은 극우보수단체들이 박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여론을 왜곡하고 조작하기 위해 청와대가 보수우익단체를 동원했고, 그 영향이 탄핵 반대 집회로 이어지고 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는 말 그대로다. 정권과 체제 유지를 위해 관변 단체들을 불법 동원했던 유신독재세력과 마찬가지로 유신의 후예들 역시 똑같은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이 모습은 40여년 전 권력과 돈으로 사람들을 동원하고 그들을 꼭두각시로 내세워 민의를 왜곡했던 당시의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배운대로, 가장 익숙하고 편한 방식대로 국가를 통치하고 있었던 셈이다. 


권위주의가 기승을 부릴수록 그에 비례해 아스팔트 우파들의 폭력성 역시 극대화된다. 최근 탄핵 반대 집회에서 등장하는 구호들은 하나같이 살벌하다못해 섬뜩한 것들 일색이다.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주장이 나오고, "빨갱이들은 걸리는 대로 다 죽여야 한다", "촛불반란군들을 다 죽여야 한다" 등의 극단적인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


극단적 폭력과 광기의 궁극은 무엇일까. 저들의 세계에서는 자신들과 생각이 같은지의 여부로 사람의 목숨을 재단한다. 그 모습 그 어디에도 공존과 화합, 배려와 공감은 찾아볼 수 없다. 상대에 대한 혐오와 부정, 대립과 배척을 통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강제하는 야만적 폭력과 폭거만이 도드라져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흑백 논리와 이분법적 사고로 사람의 목숨을 재단하는 사회. 영락없는 '괴물'들의 세계다.


"한 놈은 악이란다. 그 놈은 화, 질투, 욕심, 오만, 열등감, 거짓, 헛된 자존심, 우월감이며 그리고 네 자아란다. "그리고 다른 놈은 선인데, 그 놈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겸손, 친절, 자비, 공감, 정의이며 그리고 바로 믿음이지."

"똑같은 싸움이 네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모두의 내면에서도 마찬가지야."

"할아버지 둘 중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기지."

북미 원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오는 늑대에 관한 이야기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 기저에는 대중의 증오와 적개심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해온 무도한 권력이 있다. 적어도 미래의 세상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하고 차별하는 곳이 아니었으면 한다. 사람이 살 곳은 '인간'의 세계이지 '괴물'의 세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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