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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명박 치켜세운 반기문, 초록은 동색인가?

ⓒ 오마이뉴스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전직 대통령과 전직 유엔사무총장의 면담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덕담이 오고갔고, 서로의 업적을 칭송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반 전 총장은 "이 대통령이 재임 중에 녹색성장 정책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해오신 점을 잘 알고 있고 감사드린다"며 이 대통령을 한껏 치켜세웠다.

의아했다. 반 전 총장의 발언이 녹색성장이라면 화학적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국민정서와는 상충되는데다, 필자가 알고 있는 사실과도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은 정말 칭송받을 만한 것이었을까. 국제사회의 기후변화협약에 걸맞는 정책이었을까. 반 전 총장의 인식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녹색성장은 잘 알려진 대로 이명박 정부의 핵심 아젠다이자 캐치프레이즈였다. 전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자, 세계의 흐름에 발맞춰 이산화탄소의 사용을 줄이고 대신 녹색 기술과 청정 에너지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자 목표였다.

국제사회의 흐름에 맞춰 정부가 새로운 비전과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녹색성장의 핵심은 고유가에 따른 에너지 문제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대체 에너지 개발을 통한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해 지속가능한 발전계획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정책 운영은 그것과는 정반대로 진행됐다. 이명박 정부가 맹목적으로 집착했던 4대강 사업과 원자력 발전만 살펴봐도 녹색성장의 오류와 한계는 명확히 드러난다. 


숱한 논란과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은 저탄소 녹색성장의 일환인 '기후변화 적응역량 강화사업' 차원에서 추진됐다. 4대강 사업과 '기후변화 적응역량 강화' 사이의 연관성 자체도 의문이지만, 이 사업에 '녹색성장'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것부터가 모순이자 자가당착이다. 친자연을 상징하는 '녹색'과 개발 담론인 '성장'을 가미해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만들어냈지만, 4대강 사업은 녹색성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개발정책이었을 뿐이다.

기가 막힌 것은 그 개발이 '난개발'이었다는 점이다. 녹색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생태계는 파괴됐고, 수질은 더없이 악화됐다. 그 결과 여름만 되면 4대강에 듣도 보도 못한 괴생명체가 출몰하고, 녹조가 창궐한다. 물고기가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떠오르는가 하면, 물에서는 참을 수 없는 악취가 진동한다.

어디 이뿐인가. 정부가 호언장담했던 수십만개의 일자리는 낯뜨겁고 민망한 수준으로 밝혀졌고, 담합 비리 등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부정·비리도 여지없이 발생했다. 4대강 보의 안전 역시 꼬리표가 붙은 상태이며, 4대강의 유지관리비로 매년 수천억원의 국민혈세가 투입돼야 한다. 종합해보면 단군 이래 최악의 생태 파괴 사업이라 혹평 받고 있는 4대강 사업은 '녹색'은 물론 '성장'과도 전혀 무관한 사업임을 알 수 있다. 


ⓒ 오마이뉴스


이명박 정부는 원자력 발전 역시 녹색성장과 결부시켰다. 이명박 정부의 원자력 비중 확대 정책은 '탈석유·에너지 자립 강화'를 위한 핵심 전략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 역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겪에 지나지 않는다. 에너지 문제에 대처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에너지 절약과 수요 관리를 통해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석 연료를 대체할 새로운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이같은 세계적 흐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원전 비중 확대가 대표적이다. 원자력은 사고의 위험성, 방사능 유출, 핵 폐기물 등의 문제가 상존하고 있어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에너지다. 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한 국가들 중 녹색성장을 추진하면서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늘리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히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확인됐듯 원자력 발전이 인간과 환경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잠재적 '흉기'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세계가 원전 감축과 폐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에너지 문제 해결을 원전의 확대에서 찾았다. 지난 2008년 8월27일 발표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는 오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추가로 증축하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 이미 원전을 대신할 대체에너지(태양력,  풍력, 수소에너지 등) 개발에 힘쓰고 있었던 독일,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대책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녹색성장 정책은 청정 친환경 대체 에너지 개발을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해 지구 온난화를 막아내자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조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2013년 12월 발표된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은 늘고 에너지 사용 효율은 오히려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 11월5일 르 몽드는 '기후변화 문제에 한 입으로 두 말하는 한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4대강 사업을 '환경 재앙'이라 비판했고, 이명박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에 형편 없었던 '불량 학생'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은 인간과 자연의 생태적 공존을 지향하는 미래지향적 관점이 아니라 성장지상주의자였던 이 전 대통령의 신념에 따라 졸속적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녹색성장 정책이 에너지 문제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행했음은 물론 고용창출과 경제적 효과 면에서도 미흡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와 같은 국내외의 평가는 이 전 대통령이 녹색성장 정책을 통해 기후변화에 잘 대응해왔다는 반 전 총장의 평가를 무색하게 만든다.

반 전 총장의 캠프 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이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채워져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당도 세력도, 조직도 없는 그로서는 이 전 대통령 측의 도움이 절실한 입장이다. 반 전 총장의 이 전 대통령 치켜세우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반 전 총장이 사실관계를 왜곡·호도하고 있다는 점이며, 그 기저에 비루한 정치공학적 셈법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 전 총장에게는 '기름 뱀장어'라는 별칭이 따라 다닌다. 그만큼 처세에 능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걸맞는 철학과 소신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다.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일성에서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 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확고한 소신과 신념 없이 정치적 유불리를 따라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정치가 교체해야 할 구태 중의 구태다. 정치 교체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말 대로라면 그부터가 '교체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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